일상생활

아들의 아르바이트

道雨 2007. 9. 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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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아르바이트


 지금부터 열흘 쯤 전에 작은 아들(범진)이 거제도로 떠났다. 85년생이니 지금 우리 나이로 23살이다. 거제도에 있는 삼성중공업에 취업(비록 보조적인 일자리지만)이 되어 일을 하러 간 것이다. 아직 학생 신분이니, 정식으로 일을 할 계제는 아닌데, 한 학기를 쉬게 되니 학비를 벌어보자고 간 것이다.

  동의대 한의예과에 재학 중인 범진이는, 지난 학기(예과 2학년 1학기)에 성적 미달로 유급을 당하여, 한 학기를 쉬고 내년에 다시 1학기부터 다녀야하기 때문에, 6개월은 쉬어야 한다.

  성적미달로 유급을 당했으니 쉬는 기간 동안에 한의학과 관련된 기초분야의 공부를 하면 좋겠는데, 제 생각에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학비를 축냈으니, 내년도 등록금이라도 벌어보고자 한 것이다. 누가 소개한 것도 아니고, 인터넷을 통해서 제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가니 대견스럽기도 하다.

  내가 용돈을 넉넉하게 주지 못하니, 그동안 과외 아르바이트를 두 군데나 하느라 학업에도 지장을 주어, 결국 유급에까지 이르렀으니 내 책임 또한 크다고 할 것이다.

  아들이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왔는데, 이번에 거제도까지 가서 일을 한다고 하니, 뭔가 새삼스런 느낌이 들기에 아들이 지금까지 해온 아르바이트에 대해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범진이가 해온 아르바이트


1. 광고물 돌리기

2. 노천카페(포장마차) 서빙

3. 맥도날드 주방보조

4. 양산의 차량 부속품 제조업체 직공

5. 서울 목동 현대백화점 음반, cd 판매점 점원(판매직)

6. 입시학원 보조교사

7. 중고등학생 과외 

8. 영화촬영장 엑스트라

9.  거제도 삼성중공업 생산직 보조 



  ‘광고물 돌리기’는 하루나 이틀짜리 초단기 아르바이트이다. ‘상가로’같은 광고물 책자를 돌리는 일이다. 큰 아들 친구가 이러한 일을 주문받으면, 보통 슈팅(아들이 속한 축구클럽 이름) 멤버들이 여러 명 동원되어 하루나 이틀 만에 끝내곤 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한 것으로 기억된다.

  

‘노천카페 서빙’은 범진이가 부산대학교(생명과학부)를 한 학기  다니다가 휴학한 이후 행한 아르바이트이다. 해운대의 파라다이스 호텔 근처의 어느 세차장 사장이 세차장 자리에 노천카페를 차렸는데, 범진이는 이곳에서 서빙 일을 했다.

주간에는 세차장으로, 야간에는 노천카페(카페라고는 해도 술과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판다고 했다)를 했는데, 해수욕장 개장기간(2개월)동안만 일시적으로 야간에 카페를 부업으로 하는 것이었다.

범진이는 야간에 밤새워 서빙일을 해야만 했는데, 두 달 동안(그것도 야간 밤샘) 일하고도 보수를 하나도 받지 못하였다. 사장이 나중에 주겠다고 말만 하고는 계속 미루는 것이었다.

노천카페를 차렸던 세차장 사장도 사업이 잘 안되니까 세차장까지도 그만두었다고 한다. 결국 지금까지도 범진이는 두달 동안의 야간 아르바이트 보수를 받지 못하고 포기해야만 했다.

 

휴학 기간 중에 ‘맥도날드 주방 보조’일도 했다. 해운대의 ‘스펀지’ 건물에 있는 맥도날드 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특이하게도 서빙이 아니고, 주방에서 햄버거 만드는 보조 일을 했다고 한다. 아마 햄버거는 질리도록 먹었을 것이다.

  

범진이 친구가 소개해서 양산에 있는 자동차 부속품 제조회사에는 수개월 동안을 다녔다. 새벽에 원동IC 입구까지 가서는 회사로 가는 차를 편승해서 출퇴근 하였다. 내가 새벽에 몇 번 원동까지 태워다주기도 했고, 출퇴근이 어려우니 야간잔업도 하면서 친구와 함께 아예 회사에서 자기도 하였는데, 때로는 보일러실에서 혼자 잠을 자기도 했다고 한다. 혼자서 숙소도 아니고 보일러실에서 자려니 외롭거나 무섭지도 않았겠는가?

  

휴학하고 군대에 가기 전에 이것저것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중에 서울에서도 몇 개월(4개월인가?)을 보냈다. 서울 목동에 있는 현대백화점의 음반매장에서 판매원으로 근무했다. 그 곳에 근무할 때는 서울의 큰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출퇴근을 했다. 지금도 가끔 형수님은 범진이가 그곳에서 지낼 때 얘기를 하시곤 한다. 알뜰하게 살림꾼이라면서...

서울에서 지내고 일하면서 번 돈으로 고성능의 디지털카메라를 사서는 사진찍는 것을 취미로 삼기도 하였다. 요즘도 집안에 행사(명절, 생신 등)가 있을 때는 범진이도 카메라 챙기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다. 범진이가 일하던 곳에서 커다란 고급 CD장식장을 선물로 주어서, 부산까지 가져와서는, 지금까지 방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에서 일하던 중에 부산에 내려와 나와 함께 다대포 마라톤 풀코스를 뛰기도 하였다. 연습도 제대로 못 한데다가 당일 새벽에 내려와서 참가했다가 결국 낙오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걸어서 끝까지 들어오기는 했다.

  

서울에서 수개월을 생활하고 다시 부산에 내려왔는데, 군대 입대를 보류하고 한 번 더 대학입시 공부를 하겠다고 한다. 목표는 체육교육학과(서울대, 부산대)로서 체육교사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해운대에 있는 입시학원(성문학원) 종합반에 등록하고 학원생활을 하였다.

체육교육학과는 실기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일요일에는 나와 함께 신도중학교에 가서 실기 연습도 하였다. 나는 주로 종목별 준비와 기록을 체크해주는 일을 했다. 여름에는 체육 실기학원도 한 달 다녔다.

모의고사에서는 비교적 성적이 잘 나와 서울대 체육교육과에도 가능한 상황이라서 주로 서울대 체육교육과의 실기종목 연습을 많이 하였다. 그중에 어려운 것은 뭐라고 해도 철봉이었다. 턱걸이도 부족하고, 차오르기나 흔들어오르기 등이 어려웠다. 구기종목이나 달리기 등은 대체로 잘 되고... 축구, 농구, 배구, 핸드볼 공 던지기, 등등...덕분에 일요일에는 나도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수능시험을 매우 잘 봐서(상위 0.4%에 해당) 서울대 체육교육과는 포기하고, 동의대 한의예과를 지원하여 합격되었다. 한의예과에 합격되니 성문학원 홍보자료에 사진과 함께 소감도 실리기도 하였다.

  

성문학원 동기생들과 함께 성문학원의 자율학습 보조교사로 잠시 일하기도 하였고, 학원의 담임을 하셨던 선생님께서 과외자리까지도 소개해 주셨다.

  범진이는 부산대학교에 다닐 때도 중학생 과외를 했고, 동의대 한의예과를 다니면서는 고등학생 2명에 대해 수학과목 과외를 했다. 축구를 너무 열심히 하고(두 군데 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시험 준비기간에도 민주항쟁배 축구대회에 참석하였다), 과외도 두 군데나 하느라 학교공부를 제대로 못하여 이번에 유급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정신을 제대로 못 차려 유급을 하니 정신무장도 할 겸, 군대에 다녀오는 것이 어떨까 얘기했지만, 범진이는 군대는 군의관으로 가려고 하니 나중에 갈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내가 전에 아들들과 식사할 때 군 문제에 관해 여러 번 한 얘기가 있기 때문이다.

큰 놈은 의대이고, 작은 놈은 한의대이니 둘 다 군 문제는 공중보건의나 군의관으로 갈 수가 있다. 나는 내가 장교출신이기도 해서 그렇지만, 공중보건의 보다는 군의관으로 가서 사병들을 지휘해보기도 하고 군사 훈련에도 참석하면서, 절제있는 생활, 인내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도 가져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곤 하였다.

  

어쨌든 유급을 당하여 반년의 시간 공백이 생겼고, 지금은 거제도(삼성중공업)에 가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참 지난 겨울방학 때는 창원까지 가서는 영화촬영장에 엑스트라로 밤새워 떨면서 일하기도 하였다.

  

  큰아들 공진이도 범진이 만큼 다양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광고물돌리기, 과외는 범진이와 같고, 영화관 아르바이트(매표소나 안내), 그리고 신문돌리기를 두 달 쯤 했다.

  내가 옆에서 보기에는 ‘신문돌리기’가 가장 힘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루라도 빠질 수가 없고, 더욱이 새벽에 두시 전에 나가야 하기에 어린 아이들에게는 보통 힘드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비라도 올 참이면 더 빨리 나가야 한다. 광고물 끼워 넣기도 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범진이는 참 다양하게 아르바이트를 했다. 의대, 법대는 대학원으로 바뀌는 추세이다. 이는 의료지식이나 기술 외에도 그만큼 전문적이거나 다양한 경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비록 지금은 학비나 용돈이 궁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기는 하지만, 인생의 전반적인 면에서, 특히 의사나 한의사로서 살아가는 데에는, 지금의 다양한 경험이 자신 뿐만 아니라 남을 이해하고 세상을 겪어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오늘 일요일이다. 범진이는 오늘 일요일인데도 회사에 나가 일했다고 한다.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 보면 범진이가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군대 가기 전에 고무장갑을 만드는 곳에서 두 달간 일한 것이 아르바이트의 전부다. 그 이후에는 군대생활, 그리고 학교 다니고(재학 중 아내가 문구점을 해서 일을 도와주기는 했다), 졸업해서 한의원 하는 것이 전부다.

타 분야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요즘 아이들의 이런 다양한 아르바이트경험은 인생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 믿는다.

  

  아들아 !

  지금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겠지만, 너 멋지게 산다. 열심히 살고, 건강하게 지내거라 !

그리고 더불어 옆에 책을 가까이하는 것도 잊지 말고...

  

  

오늘 일요일인데도 일했다니 피곤하겠구나. 좋은 꿈 꾸고 잘 자거라...

  

다음 주 일요일에는 벌초하러 간다. 그 때 봐야 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