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문화충격 1 [은행(수협) 창구에서 공과금(지로) 수납을 거부하다]

道雨 2008. 8. 28. 17:00

 

 

 

        문화충격 1

                   - 은행(수협) 창구에서 공과금(지로) 수납을 거부하다



오늘(2008년 8월 28일) 낮에 수협에 공과금 등을 납부하러 갔다가 문화적 충격을 겪었다. 다름이 아니라 수협의 창구에서 공과금 및 지로용지에 의한 수납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수협 내에 자동화기기가 한 대 들여져있는데, 현금 납부는 안 되고, 수협의 통장이 개설되어 있는 경우(통장을 휴대하고, 납부할 금액 이상으로 잔고가 있는 경우)에만 납부가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수협에 계좌가 개설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공과금 납부를 하지 못하고 도로 나와야만 했다.


황당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어쩔 수 없이 올라오는 길에, 혹시나 하고 자동화기기가 설치되어있는 부산은행 무인점포에 들어가 보았다. 편의점이나 은행에서 공과금을 자동화기기가 수납하기도 한다는 것은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인점의 자동화기기를 보니 공과금 수납 버튼이 표시되어 있었다. 부산은행은 계좌가 개설되어 있고 현금카드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다행이다 싶었다.

카드를 넣고 기기를 작동하는데 무슨 번호를 입력하는 것이 너무 많게 느껴졌다. 몇 개의 지로용지(공과금 납부고지서 등)를 이렇게 버튼을 누르며 해결하려고 하니 아득하니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다행히(?) 기기 작동 중 이상이 생겼는지, 유인 점포에 문의하라는 자막이 나오더니, 자동화기기를 통한 납부도 허사가 되었다. 이제는 할 수없이 통장을 들고 은행에 가야되겠거니 생각하고 돌아왔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납부서와 지로용지 등을 찬찬히 살펴보니, 인터넷 뱅킹으로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인터넷 뱅킹을 하고 있기에, 은행 홈페이지를 통해 여기저기 살펴보고 시도한 끝에 인터넷 뱅킹으로 해결할 수가 있었고, 세무관계 서류제출을 위해 납부확인서도 출력하였다.

 

이제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얻었다. 지로용지(고지서)를 들고 은행에 가지 않아도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로 해결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자동이체를 할 수도 있겠으나, 일부 자동이체를 하지 않는 것들도, 은행(수협)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새로운 지식을 얻었고, 그 방법까지 터득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뭔가 씁쓸한 마음이 가셔지지 않는다. 이제 은행(수협) 창구에는 공과금(지로) 등을 수납하기 위한 인력은 필요하지 않을테니, 일자리가 더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은행으로서는 인건비를 많이 줄일 수 있겠지만, 자동화기기나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봄에는 수협에 동전을 많이 들고 오신 분(나도 아는 사람이다)이 지폐로 바꿔주지 않는다고 수협 직원과 실랑이를 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동전을 세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동전을 바꾸는 날짜도 매월 일정기간 정해놓고, 그 기간이 아니면 바꿔주지 않는 것이었다.

정부에서는 동전 모으기 등을 하고 있지만, 정작 은행(수협 등) 창구에서는 동전을 들고 가면 푸대접을 받게 되니, 동전 모으기가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하다.


이번의 지로나 공과금 납부만 해도, 지금까지 은행직원이 해 오던 일(공과금 수납, 지로 수납과 관련된 일)을 기계가 하고, 그 만큼 고객들이 더 많은 수고(자동화기기, 컴퓨터, 프린터 조작 등)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은행 직원들은 편하게 되겠지만, 고객들은 앞으로 자동화기기와 씨름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이미 컴퓨터를 늘 만지고 사는 사람이고, 인터넷 뱅킹을 하고 있기에 큰 어려움 없이 해결되었지만, 눈도 어둡고 손놀림도 원활하지 않은 노인분들은 퍽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에게 통장(비밀번호 포함)을 맡기기 불안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니, 몸이 불편하더라도 직접 자동화기기가 있는 은행까지 발걸음을 해야만 할 것이다.


자동화라는 것은 편리함과 경제성(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자동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자동화가 작동되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수기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도 생각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수협에서는 이번 달에 처음 시도하는 일인데도, 자동화가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시스템은 가동하지 않는 듯 여겨졌다. 자동화기기 앞에서 기기 사용을 도와주는 직원은 있었지만, 통장 없이 현금을 들고 온 사람들은 헛걸음을 하고 돌아가야만 되었다.


작금의 은행들의 행태를 볼 때, 경제성(효율성)에 집착한 나머지, 인간적 측면인 취약 계층에 대한 배려나, 편안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지금의 노인들의 모습은, 훗날 내 자신의 모습이 될 것이다. 오늘의 문화적 충격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