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
대구 학술대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밀양 표충사 밑 식당가(송림정)에 들러 산채비빔밥에 동동주 한 사발로 알딸딸해진 가운데 표충사 경내를 간단히 둘러보고 왔습니다.
표충사를 둘러싼 산은 그대로인데, 오랜만에 가서 그런지 전각들이 예전과는 많이 다른 듯이 여겨지더군요.
유물관에 들어가서 국보인 청동은입사향완을 보고, 사명대사께서 입었었다는 다 해어진 금란가사를 본 것이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군요. 가운데는 선한 원장, 그 옆으로 유상 원장과 유상 가족.
* 청동은입사향완(靑銅銀入絲香琓) : 국보 제75호
크기 : 높이 27.5cm 구경 26.1cm
시대 : 고려시대
명문 : 大定十七年 丁酉陸月八日 法界生亡共增菩提之願以鑄成靑銅含銀香琓一副重八斤
印棟樑道人孝初通康柱等謹發至誠特造隨喜者 文.
이 향완(香琓)은 상연부(上緣部)의 넓은 변죽에 여섯자의 범자문(梵字文)을 일정한 간격으로 한자씩 상감(象嵌)하고 그 사이에는 서운문(瑞雲文)을 장식하고 있다.
몸체(火舍)의 바깥에는 한면에 한 개씩의 동심원(同心圓)을 그리고 그안에 한자씩의 범자문(梵字文)을 새겼으며, 높은 굽다리의 둘레에는 한 마리의 용(龍)을 상감하고, 몸체(火舍)의 아랫부분에는 중판연화(重瓣蓮華), 굽다리의 윗부분 이음새에는 여의두문(如意頭文)을 새겨넣어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장식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향완의 제작연대는 그 명문(銘文)에 의하면 일본 법륭사(法隆寺)에 있는 금산사(金山寺) 향로(香爐)보다 1년을 앞서 제작되어, 현존하는 고려황완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 금란가사(金蘭袈裟)ㆍ장삼(長衫) : 중요민속자료 제29호
사명대사 전용의 법의로 선조대왕의 하사품으로 전한다.
* 큰 백일홍(배롱나무)를 배경으로 유상 원장과 가족
*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이는 삼층석탑. 이 안에서 청동제 불상 등 많은 유물들이 나와서 유물관 안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 삼층석탑 안에서 출토된 청동제 불상.
* 삼층석탑일괄출토품(三層石塔一括出土品)
이 불상들은 1995년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을 해체 복원하던 중에 발견된 것들이다.
모두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청동에 금을 입힌 금동불(金銅佛)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 머리나 대좌ㆍ광배 등이 파손된 상태로 미루어 조선시대에 석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매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파손된 불상을 탑에 매납하는 행위는 예배의 기능을 다한 불신(佛身)을 부처님의 墓處에 안장하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추정된다.
* 석탑 뒤에 작은 석등이 가려져서 있는지도 몰랐다가 대광전 등 전각을 둘러보고 나올 때에야 봤어요.
* 표충사의 중심전각인 대광전. 진입로의 왼쪽편에서 남향을 하고 있어서, 건물의 크기가 크지 않았다면 중심전각인지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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