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신문 2010. 5. 15 사설
유엔특별보고관 사찰 의혹, 한점 의혹 없이 밝혀야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 침해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방한중인 프랑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미행을 당한 것 같다고 외교통상부에 문제를 제기한 사실이 그제 밝혀졌다.
라뤼 특별보고관은 지난 6일 천영우 외교통상부 제2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의혹을 제기하고, 자신의 동정을 캠코더로 촬영하던 승용차의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인터넷 언론인 <민중의 소리>는 국가정보원 관계자를 통해 당시 현장에 있던 승용차가 국정원 차량임을 확인했다며, 국정원이 라뤼 보고관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그제 보도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그 차량이 국정원 소속이 아니라고 부인했으며, 경찰 쪽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보고관 일행에 따르면, 라뤼 보고관이 4일 방한해 서울 명동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을 때 검은색 승용차 안에서 캠코더로 일행을 촬영하는 사람을 일행 중 한 사람이 목격했다.
이 유엔 직원은 다음날에도 비슷한 차량이 계속 보고관 일행을 따라붙고 있음을 확인하고 보고관에게 알렸다고 한다. 누군가가 보고관 일행을 미행·사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정원과 경찰이 연루 의혹을 부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들이 정말 무관하다면 누가 왜 이런 일을 했는지 명백히 밝혀냄으로써 의혹을 씻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국가기관이 유엔 특별보고관을 미행까지 하는 나라로 지목돼 국제적 망신을 자초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차원의 반성도 필요하다.
정부는 라뤼 보고관의 방한을 놓고 마뜩지 않은 태도로 일관했다. 통상 보고관이 요청하는 모든 관계 당사자와의 면담이 가능해야 함에도 정부는 시늉만 냈다.
대통령과 검찰총장,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과의 면담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겨우 만난 것이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차관이었다. 국정원도 면담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라뤼 보고관은 “정부의 의지가 없으면 그 나라의 인권이 보장될 수 없는 것”이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대통령은 품격 있는 나라를 말한다. 하지만 자국민의 인권을 살피러 온 유엔 관리를 따돌리고 사찰 의혹까지 받으면서 어떻게 국격을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관련 자료
국정원, 유엔보고관 사찰했다
- 미행 차량의 소유주 주소지 국정원 부지로 확인
국가정보원이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을 미행, 사찰한 사실이 16일 본보 취재결과 확인됐다.
라뤼 보고관은 4일 서울 명동의 한 호텔 정문 앞에 세워진 은색 승용차 안에서 자신들을 캠코더로 찍고 있는 사람을 발견, 이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라뤼 보고관은 6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천영우 외교부 2차관을 만나 "누군가 미행을 하는 것 같다"고 항의했다.
외교부가 진상 파악에 나섰지만 국정원, 경찰 등은 자신들과 관계 없는 일이라고 공식 부인했다.
↑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 라뤼 일행을 미행, 캠코더로 촬영한 차량과 이 차량의 등록지인 서울 서초구 ㅇㅇ동 부지를 둘러싼 철조망. 천주교인권위원회 제공. 허정헌 기자
↑ 라뤼 일행을 미행, 캠코더로 촬영한 차량과 이 차량의 등록지인 서울 서초구 ㅇㅇ동 부지를 둘러싼 철조망. 천주교인권위원회 제공. 허정헌 기자
본보는 라뤼 일행이 찍은 사진 속 차량의 소유주가 서울 서초구 OO동 '*****'인 것을 확인했다.
사진 속 차량의 종류는 은색 옵티마 리갈, 차량번호는 '** O 6976'이었다. 가운데 글자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앞 뒤 숫자는 비교적 또렷했다.
차량 소유주의 주소지는 국가정보원 소유 땅으로 철조망이 굳게 둘러쳐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은 법인등기도 없이 차량만 십여 대가 등록된 유령회사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정원 관계자는 "당초 라뤼가 제시한 차량번호 2개 정도를 확인해봤는데 국정원 소유 차량이 아니었다. 사실을 통보한 뒤로 라뤼 쪽에서 특별한 문제제기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차량 소유주 회사가 왜 국정원 부지에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회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다.
구룡산 정상, 차량의 주소지 인근에서 만난 한 상인은 "여긴 국정원 땅이다. 괜히 기웃거리다 잡혀간다"며 철조망에 다가가는 기자를 만류했다. 이 상인은 "아침 저녁으로 한 번씩 국정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철조망 안쪽에서 순찰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라뤼는 15일 연세대 특강에서 "과테말라에서도 (미행, 감시 등)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내 조사활동을 위축시킬 수 없었다"며 "이번 일에 대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라뤼는 17일 출국 직전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원 사찰에 대한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유엔 인권위원회 이사국이고 사무총장까지 배출한 나라에서 특별보고관을 미행, 감시했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조사 이유와 책임자 등을 철저히 밝혀 유엔에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허정헌기자
유엔보고관, 한국정부 비협조…일찍 떠나고 싶었다
- "촛불집회 이후 2년간 표현의 자유 크게 위축
- 선거는 토론의 장, 4대강 등 비판 막는건 잘못"
- 프랑크 라뤼 유엔보고관 출국 기자회견
프랑크 라뤼(58)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17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촛불집회 이후 2년 동안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4대강 사업 비판과 무상급식 운동에 대한 선거관리위원회의 제재는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라뤼 보고관은 지난 4일부터 시작된 방한 조사 일정을 마치고 이날 오후 출국했으며, 출국 직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그동안의 조사 내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내년 6월까지 유엔인권이사회에 한국의 의사·표현의 자유 실태에 대한 공식 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라뤼 보고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 집회·시위의 자유
△ 인터넷 실명제
△ 국가의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 등
이명박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지적됐던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에 개선을 권고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가 퇴보한 대표적 사례로 정부에 비판적인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국가정보원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과, 광우병의 위험성을 보도한 < 문화방송 > '피디수첩' 제작진이 기소된 사건을 꼽았다. 또 그는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이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4대강 사업'과 무상급식 등 6·2 지방선거 쟁점과 관련해, 라뤼 보고관은 "정치에 관한 토론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 기간이 선거인데, 어떠한 선전이나 집회도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게다가 선거 시작 6개월 전부터 이를 금지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내년에 다시 방한해 권고사항이 잘 이행됐는지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라뤼 보고관은 자신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미행·사찰 논란에 대해 "매우 아쉽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정부의 제재가 없어야 한다"며 "다만 방한 기간 중 만난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정부가 자신의 조사 활동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인권단체들의 지적과 관련해선 "대통령, 국무총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국방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국정원장, 경찰청장 등과의 면담을 외교통상부에 요청했지만 한 건도 성사되지 않았다"며 "내가 아닌 다른 특별보고관이었다면 벌써 한국을 떠났을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손님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면 내가 손님과 대화를 하지, 주방장보고 손님과 대화하라고 시키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통상적인 특별보고관들의 방문에 비추어 대통령, 국무총리 면담 요구는 과도한 것"이라며 "그의 발언으로 정부가 특별보고관 활동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으로 비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한국, 말·글·집회의 자유 제한 놀랍다”
- 라 뤼 유엔 특별보고관 방한 결산 회견
17일 출국한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1년 뒤에 한국을 다시 찾겠다고 말했다. 얼마나 개선됐는지 점검하겠다는 뜻이다.
이날 출국 전 그의 기자회견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급격히 후퇴하고 있는 국내의 실상이 전방위적으로 소개됐다. 현 정부 출범 후 시민단체나 진보성향 지식인들이 제기한 문제와 일맥상통했다. 국내 표현의 자유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국제사회로 번지는 상황이다.
라 뤼 보고관은 이날 국가와 사법제도를 통한 표현의 자유 억압을 지적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 제약은 유엔의 시민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ICCPR)에 규정된 범위를 넘어서는 안되며 법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자의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통제해 온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라 뤼 보고관은 촛불집회 이후로 교통을 방해한다거나 폭력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등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집회·시위에 대해 사전 금지통고를 내리고 있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및 이적표현물 소지죄)가 모호하게 적용돼 아직도 처벌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도 개선을 권고했다.
그는 이어 표현의 자유의 다양성이 원활히 확보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민간기구라고는 하지만 위원장이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활동하는 등 사실상 정부에 비판적인 인터넷 글을 투명한 절차없이 삭제 권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병성 목사가 인터넷 게시판에 쓴 ‘쓰레기 시멘트’ 글과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의 보이콧 운동 게시물이 업무방해라는 이유로 삭제 권고받은 것을 예로 들었다.
대기업·신문사·외국자본 등이 방송에 진출하도록 개정된 방송법에 대해 “미디어 소유를 집중시켜 매체의 다양성을 침해하고 다양한 의견 표출 기회가 상실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개인적인 정치적 의사 표현이 금지돼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개인적이거나 근무 시간 이후의 의사표현은 특히 보장돼야 하며, 특정 노조원이라 하더라도 관계없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불온서적 반입 금지에 대해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지위가 군인으로서의 지위를 앞선다”며 “특정 책을 금지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비민주적인 처사”라고 말했다.
국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지만 아무런 제동장치가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특히 인권위가 주요 현안마다 ‘침묵’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출했다. 표현의 자유 논의에 이데올로기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라 뤼 보고관은 “상임위원 면담 요청이 성사가 안됐고, 뭔가 과거와는 다른 징조”라며 “인권위원 선정 절차가 공식적인 자문 절차도 없고 후보의 자질을 평가하는 과정도 없는 것은 개선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는 “한국이 국제적으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기술적 기량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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