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송백장청’ | |
한자로 나무 가운데 공(公)자가 들어 있는 것은 오직 소나무 송(松)뿐이다. 공은 벼슬을 의미하니 ‘나무의 공작’인 셈이다.
중국 진시황제가 태산에서 갑자기 비를 만났을 때 피하게 해준 고마운 나무에게 공작 벼슬을 내린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또 변함없이 푸른 특성 때문에 사심이 없고 널리(公) 쓰인다 해서 ‘공’자를 썼다는 해석도 있다.
다산 정약용은 ‘충식송(蟲食松)이라는 시에서 “대궐 명당 낡아서 무너질 때 긴 들보 큰 기둥 되어 종실을 떠받들고, 섬 오랑캐 왜적이 달려들 때 네 몸은 큰 배 거북선 되어 선봉을 꺾었느니”라고 소나무를 읊었다.
소나무와 흔히 짝을 이루는 게 잣나무다. 한자로는 백(柏 또는 栢)으로 쓴다. 그러나 한자 ‘백’은 애초 잣나무가 아니라 측백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관리들의 비리를 조사하는 어사대(御史臺)를 백대(柏臺) 백서(柏署) 백부(柏府) 등으로 불렀고, 조선시대 사헌부의 별칭도 ‘백부’였다. 중국의 측백나무가 잣나무로 둔갑한 것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측백나무를 표현하는 과정의 어려움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강판권 <나무열전>)
최근 행정안전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보낸 친필휘호 송백장청(松栢長靑)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층 로비에 건다고 밝혔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오래도록 푸르다’는 뜻으로, 공직자들이 한결같고 청렴한 자세로 봉사해달라는 의미가 담겼다는 게 행안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요즘 모양새를 보면 송백은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추위가 닥치면 송백의 푸름을 안다’는 말보다는 오히려 ‘바람에 나부끼는 버드나무’인 풍전세류(風前細柳)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특히 예전의 ‘어사대’ 격인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불법 민간인 사찰까지 저지르는 마당이고 보면 잣나무는 더욱 안 어울린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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