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없이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 의견, 주장 따위를 아무런 억압 없이 외부에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여당의 자세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가상현실을 실감나게 한다.
참여연대가 천안함과 관련해 정부와 다른 의견을 유엔에 제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백주에 테러에 가까운 봉변을 당하는데 국무를 총괄한다는 총리란 이는 시민단체를 향해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간다’고 혀를 차고, 여당 대변인은 ‘매국행위고 이적행위이므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살벌하게 박자를 맞춘다. 시민단체의 입장에서 우리는 이런 의견과 의문이 있다고 표현했을 뿐이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한 시민이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의 비비케이 관련 동영상을 링크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사찰을 받아 당사자의 표현에 의하면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을 뿐인데 공권력이 동원돼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모욕한 것이다.
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한 정부여당의 불관용과 위협은 토털사커를 표방하는 압박축구보다 더 전방위적이고 가열차다. 오죽하면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처럼 보수적인 논객까지 그런 정부여당의 행태에 짜증을 내겠는가.
그제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세종시 수정안은 진작에 해당 상임위에서 부결돼 폐기됐지만, 국회 표결로 기록에 남기겠다는 일부 여당의원들의 집요함으로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 사안이다.
그와 관련해 김대중 고문은 ‘내 말에 찬동하지 않는 사람들 이름을 적어 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힐난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가 국민의 기본권인 이유는 그것이 공기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국익을 앞세우며 한 개인의 생각, 의견, 주장을 억압하는 것은 공기 없이 ‘대충 잘’ 살아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누구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정신분석 치료 과정에는 단 하나의 규정만 있다. 상담실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떠오른 모든 생각이나 느낌, 감정을 빼놓지 말고 모두 언어화하는 것, 그것이 자유연상이다.
상상 속에서는 부모에게 발길질을 할 수도 있고 정적을 죽일 수도 있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이상, 마음속 어떤 이야기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용납할 수 없고 비합리적이라 여겨서 꾹꾹 눌러만 두면 그 생각이나 감정은 여러 형태로 변환되어 현실에서 부적절한 행동으로 표출된다. 억압이 심해 표현하지 못하면 사람은 심리적으로 점점 충동적이고 원시적인 영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표현의 자유란 건강하고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심리적 공기와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국가를 대상으로, 개인의 영역에서나 적용될 법한 자유연상을 들먹이면 어쩌느냐고 윽박지르고 싶다면 무지하다. 국가는, 너무나 당연하게 국민이란 개인의 총합이기 때문에 그렇다.
양천서 고문 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이유로든 수사 과정에서 고문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치의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지당한 말씀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유로든 국민 개개인이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또한 용납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그처럼 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
'시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고석에 서서 반성 좀 하세요 (0) | 2010.07.07 |
---|---|
봉공수법(奉公守法) (0) | 2010.07.01 |
대통령의 소신 (0) | 2010.07.01 |
공무원과 ‘송백장청’ (0) | 2010.07.01 |
기다림의 소중함 (0) | 2010.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