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소신 | |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비전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꾸준한 실천이 있어야 지도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각자 평가는 엇갈리겠지만,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오랜 기간 군사독재 반대 투쟁을 벌였으며, 김대중 대통령 역시 여러차례 수감되면서도 민주주의와 남북 평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사랑과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늘 온몸을 던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가? 그가 소신 있는 행보를 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과 버스중앙차로제를 도입하면서 ‘뚝심’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생태주의나 환경중시라는 철학에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청계천에 너무 많은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이나 역사 유적을 제대로 복원하지 않은 것 등을 보면 환경이나 공동체 삶에 대한 감수성은 부족해 보인다.
이 대통령의 소신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대통령이 되고 나서부터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많은 논란을 거쳐 만든 세종시법에 대해 수도분할 반대라는 ‘소신’을 들이댔다. 그저께 국회에서 수정안이 폐기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정안의 본회의 재부의를 통한 역사적 심판론을 고집했다. 4대강 사업 밀어붙이기도 나름대로 고집스런 ‘소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소신은 다른 지도자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전 지도자들은 어려움과 불이익이 있더라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은 데 비해 이 대통령은 그때그때 편의에 따라 말을 바꿨다. 세종시의 뿌리인 수도 이전에 대해 서울시장 시절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다”고 해놓고는 막상 대통령 후보가 돼서는 원안대로 세종시를 추진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그러고는 지난해 9월 정운찬 국무총리를 앞세워 다시 뒤집었다. 4대강 사업도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거센 반대를 피하기 위해 이름만 바꾼 것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나중에 보에 갑문을 설치하고 경북 문경에 터널만 뚫으면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대운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운하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떳떳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 소신의 변형이다. 이는 이 대통령의 소신 행보가 국민의 신뢰도를 증가시키기는커녕 불신만 초래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소신을 숨기고 굴절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국가운영을 하면서 대통령 개인의 견해를 국민 합의보다 앞세우고 있는 점이다. 세종시 수정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세종시는 탄생 때부터 국토 균형발전과 행정 비효율이라는 장단점을 함께 안고 있었다. 애초 노무현 정부에서 수도 이전을 추진하다가 극심한 논란과 사회적 대립 끝에 국회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라는 형태로 국민적 타협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해가 다른 국민들이 한발씩 물러서서 양보하고 절충한 결과다. 세종시를 수정하겠다는 것은 이러한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는 비민주적 처사였다.
4대강에 대해서는 사회적 타협조차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관련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는 했지만, 여당의 다수 의석을 이용한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에 불과하다. 민주당 등 야당은 예나 지금이나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다. 국민 여론도 반대가 훨씬 높다. 이 점에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의 상당수가 동의했던 세종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지도자가 소신과 철학을 가지는 것은 미덕일 수 있지만, 국민 뜻을 거스른 채 관철하려 해서는 안 된다. 세종시 파동에서 보듯 그것은 독선, 즉 민주주의에 대한 해악이기 때문이다. 교훈은 세종시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4대강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소신’을 거두고 국민적 합의를 찾아야 한다.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phillkim@hani.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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