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순진했다. 국제사회가 ‘힘의 정치’이며 전쟁이 ‘외교의 연장’이란 시각은 책에서 수없이 읽었지만, 그해 3월20일 공격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유엔 결의도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무슨 근거로 이라크를 치겠냐고 믿었다.
그래서, 이라크는 어땠는가?
대량살상무기는 없었고, 이동식 생물무기 실험실도 없었고,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우라늄을 수입한 적도 없었고, 9·11 테러범이 프라하에서 이라크 정보기관을 만난 적도 없었고, 알카에다에 이라크가 화학무기 훈련을 제공한 적도 없었고….
나를 포함한 순진한 전세계인들은 ‘국제사회의 현실이 이런 것’이란 사실 하나는 미국으로부터 똑똑히 배웠다.
7년여가 흘러, 내달 말을 시한으로 미군은 이라크에서 전투병력을 완전히 철수할 예정이다. 한때 17만명이 넘던 전투병력 대신 5만명 수준의 훈련지원병들만을 남기기 위한 지상 최대의 철수작전이 마무리되어가는 중이다.
4500명에 가까운 미군 사망자와 10만명이 넘는 이라크 민간인 희생자, 7840억달러에 달하는 이라크전 비용은 깊은 트라우마이긴 하지만, 미국엔 잊을 수 있는 ‘과거’의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은 자생적 테러리스트라는, ‘미래’에도 남을 상흔의 씨앗을 뿌렸다.
최근 들어 미국에선 몇 주에 한 번씩 테러 혐의로 체포된 미국인들 기사가 나온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에만 19명의 미국인이 국제 테러 관련 사건으로 기소됐고 올해 들어선 그 수가 15명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실제 테러 계획을 실행해 체포되는 사례도 간혹 있지만, 이런 ‘테러리스트’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지하드(성전)를 꿈꾸거나 선동했다는 혐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 테러리스트로 불릴 만한 수준의 혐의인지 여부를 떠나서, 이렇게 자생적 테러를 꿈꾸는 이들의 바탕이 미국의 이라크·아프간전에 대한 ‘도덕적 분노’란 점은 미국에게 뼈아픈 일이다.
서구의 테러전문가들은 인터넷을 통한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의 민간인 희생 동영상 유포를 새로운 테러리즘의 가장 큰 배경으로 꼽는다.
영국 국내정보국(MI5) 국장이었던 매닝엄불러 또한 최근 이라크전 청문회에 나와 “우리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더해 이라크에 개입함으로써 이것을 이슬람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젊은 세대 일부를 과격화시켰다”고 말했다.
이제 자생적 테러에 대한 공포(실질적인 위협에 더해 미국이 ‘만들어내는’ 공포도 이 가운데엔 분명 있다) 속에, 미국에 남은 것은 통제불능할 정도로 비대해져 버린 정보기관의 괴물 같은 모습이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9·11 이후 미국 정부의 정보기구는 1271곳, 민간 정보기구는 1931곳까지 늘어났고, 일급 비밀 접근권을 가진 정보요원 수는 85만4000명으로 워싱턴 인구의 1.5배에 달한다.
활동이 중복되거나 쓸모없는 정보들이 넘쳐난다며, 신문은 “미국 전체를 일급 비밀국가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미국 정부”라고 결론을 내렸다.
저서 <콜로서스>에서 ‘선한 제국주의’가 가능함을 주장하는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 같은 이조차 “(미국식의) 자유를 행동에 옮기는 순간 자유가 전복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지적은 이라크나 아프간 내부만이 아니라 미국 내부에도 해당될 터. 미국은 ‘굿바이, 바그다드’를 말하고 싶어 하지만, 이 전쟁은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어버렸다.
굿바이, 바그다드
» 김영희 국제뉴스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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