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은 참으로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경력을 보면 어쩌면 그는 그가 말한 세계 속에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한국 최고 학부인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미국의 하버드 법대에서 공부를 하고 만 40살 이전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학력과 권력에 약한 한국 풍토에서 주변에서 그를 어떻게 대접했고 또 그가 어떤 대접을 받고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낯부끄러운 발언이 그가 살아온 삶과 세계를 말해주기에 그가 우리 사회의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비극이다. 더욱이 그런 가치관을 지니고 세상을 살아가는 국회의원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야당을 지지하고 현 정권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은 모두 북으로 가 김정일 밑에서 어버이 수령을 하면서 살라’는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발언은, 한 나라의 장관이 하기에는 실소가 나올 만큼 유치하다. 일전에 법무부 장관을 했던 국회의원에게마저 적대적인 막말을 했을 때도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후 외무고시에 합격해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외교가에서 뼈가 굵은 그가 이 정도 수준일 것으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유연한 사고와 대처능력이 요구되는 외교관임에도 그토록 편협한 시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가 외교계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그가 수장으로 있는 우리 외교 현실이 얼마나 국제적으로 낙후되어 있을지 짐작하게 한다.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으면서도 민주주의의 좋은 점을 누리고 있다.
생각해보면 국민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대통령마저 미국 쇠고기 완전 개방을 졸속결정한 후,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
삶의 질보다는 물질 추구의 삶을 반영한 시각이고, 생산성과 효율의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발언이다.
이런 시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은 짧은 시간 내에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위해서 주위와 경쟁하며, 나와 다른 상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는 삶을 강요했던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가난했던 우리 사회의 급속한 근대화로 인한 집단이기적 모습이기에, 이들 고위 공직자들의 발언을 들으면서 이들이 살아온 삶과 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하여 연민의 마음마저 든다.
한편, 이런 이들에 의해 짧은 기간에 잘살게 된 점도 있으니 이런 삶도 충분히 인정해줄 점은 있다.
그러나 이제 양보다는 삶의 질을 생각하는 사회로 전환이 필요하기에, 이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빨리 사라져야 한다.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사적 욕망을 채우거나, 다양성을 무시하며 민간사찰이나 하는 낡은 세계가 사라져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민주적 삶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영국에 저항하며 후에 미국 2대 대통령이 된 변호사 존 애덤스가, 보스턴 학살사건에서 진실과 인권을 위해 자신이 반대하던 영국군 피고인들을 변호했다.
볼테르는 ‘나는 당신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의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런 세계관을 지닌 성숙한 이들이 우리 사회의 고위 공직자가 되기에는, 적색론으로 무장하고 과도하게 적대적인 집단의 세계가 너무 굳건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곧 사라질 환영임을 믿는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
공직자 발언으로 본 슬픈 자화상
»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