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국정농단과 엠비정권의 실패

道雨 2010. 7. 21. 16:41

 

 

 

           국정농단과 엠비정권의 실패
 
»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빙산의 일각이다.”
 

최근 불거진 비선조직의 국정농단과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국민 반응은 차갑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과 출신 지역 또는 대학이 같거나 대선 때 이 대통령 쪽에 이름을 걸친 사람들의 요직 진출은 눈부시다.

선진국민연대와 ‘영포라인’이 집중 거론되는 것은 이들이 그만큼 많은 권력을 행사하고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이다. 이 모든 일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어느 정권에서나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그 정도와 양상이 다르다. 민간기업의 인사에까지 개입하고 시민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것은 군사독재 때나 있었던 행태다.

자리·이권 챙기기가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비열한 공격과 동시에 진행된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보수권력이익집단의 연합체’라는 말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다.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현 집권세력의 기본 인식과 총체적인 정책기조를 함께 살펴봐야 할 까닭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는 단순·명료한 몇 가지 인식을 기초로 한다.

 

사회 분야에서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모든 문제의 책임을 ‘가상의 좌파’에게 돌리는 좌파책임론이다.

이 대통령은 촛불집회 이후 ‘이전 (좌파)정권의 뿌리가 너무 깊다’고 했다. 그 뒤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불법해임한 것을 비롯해 정부와 공기업, 국책연구소 등에서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졌다. 지금 논란 중인 방송계 블랙리스트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둘째는 강압적 법치론이다.

집권세력은 정권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법치라는 이름 아래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했다. 용산사태를 유발한 폭력진압과 노무현 전 대통령 등에 대한 강압적 수사, 인터넷 옥죄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셋째는 경쟁만능론이다. 국민의 관심이 높은 교육·복지 사안에서는 약육강식의 시장원리를 앞세운다. 그 결과 공적인 투자는 줄어들고 경쟁은 전쟁 수준으로 강화된다. 이에 맞서 공동체적 해결 방식을 앞세우는 주장에 대해서는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한다.

 

경제 분야에서 인식의 기본 틀은 ‘삽질경제’와 수출 대기업 중심론이다.

밀어붙이기식 4대강 사업과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단독사면이 이를 상징한다.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둔 정책기조는 두 가지 큰 문제를 낳고 있다.

하나는 양극화와 재정적자의 심화다. 국내 소비기반이 취약하다 보니 돈이 돌지 않고 전국 어디를 가봐도 경기 회복을 실감하는 곳이 없다.

다른 하나는 기업에 대한 권력의 입김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말뿐이고 사실상 관치경제에 가깝다.

 

안보·통일 분야의 기본 인식은 북한붕괴론과 미국중심주의다. 대북 압박과 남북관계 악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 한-미 군사훈련 강화와 대중국 마찰 등은 그 현실적 표현이다.

 

 

비선조직의 국정농단은 이런 구조의 교차점에 자리한다.

이들은 좌파책임론에 기대 민간인을 사찰하고 기업인을 괴롭히며, 관치경제 분위기를 타고 금융계와 기업에 자리를 요구한다. 법을 자의적으로 활용하는 강압적 법치론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합법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갖게 만든다.

아울러 약육강식의 윤리는 불법·탈법적 권력행사를 정당화하고, 대결 위주의 안보이데올로기는 냉전적·이분법적 행태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데 기여한다. 바로 현 집권세력의 인식과 정책 자체가 국정농단의 원인인 것이다.

 

 

시대의 역사는 그 시대 사람들의 문제 인식과 해결 노력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비선조직의 국정농단과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은, 지금의 집권세력이 기본 인식에서부터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권력 핵심층이 이들의 행태를 알면서도 사실상 방치한 것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면 국정농단 세력을 철저하게 도려내고 환골탈태하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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