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세 신설을 논의하자는 주장도 그렇다.
이미 정부는 남북 화해와 경제협력을 통해 평화를 증진하고 남북 공동 발전을 도모하여 통일시대의 기반을 쌓아 나가고자 매년 1조원이 넘는 남북협력기금을 국회로부터 승인받아 놓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지출되는 일종의 통일비용이라 할 수 있는 이 기금을 2008년 18.1%, 2009년 8.6%밖에 지출하지 않았다. 순수사업비 1조1200억원이 책정된 올해는 6월 말까지 334억원밖에 쓰지 않았다.
통일의 초석이 될 통일부의 대북 협력사업은 사실상 올스톱 상태이다. 민간의 기금 사용 요청은 번번이 기각되고 있다. 대북정책이 대결 일변도로 질주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듯 이미 조성된 남북협력기금조차 쓸 생각을 하지 않는 정부가 통일세 운운하니 황당한 느낌이다.
통일에 임박해서 통일비용을 지출하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나 평소에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통일의 여건을 조성해가면 훨씬 적게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남한 주도의 통일 정세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남북협력기금은 궁극적으로 이를 위해 조성된다.
물론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에 대비하기 위해서 통일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주장에는 북한이 붕괴하면 남한이 흡수통일을 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그럴까?
북한이 붕괴하더라도 110만명의 북한군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고, 해체되더라도 그 엄청난 무기를 손에 쥔 무장집단이나 사람들은 존재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국군이나 미군을 투입한 북한 상황 관리는 북한이 원치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 주민이나 새로이 할거하는 북한 신지도층 인사들의 생각이다.
그들이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대남 의존 심리나 신뢰가 있을 때만 남한의 북한 상황 관리가 가능하다. 이는 꾸준한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협력이 누적되어야 가능하다.
지금처럼 남북 대결상태가 지속되고 북한 주민의 대남 적대의식이 고조되어 있는 상태라면 자기 체제가 붕괴되었다고 남한을 쳐다볼 리가 없다. 대신 그들은 중국을 쳐다볼 것이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한다고 해서 북한을 속국으로 만들 의도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요청하면 그 전략적 위상을 고려하여 북한의 안정화와 새로운 체제 수립을 위해 적극 지원할 것이다. 대결적인 남북관계가 이를 쉽게 할 것이다.
결국 북한이 중국 동북의 네번째 성처럼 되는 상황은 중국의 의지보다는 북한의 대남 불신이 그들을 그 방향으로 몰아가면서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대북 대결정책을 구사하는 한, 북한 붕괴에 대비해 통일세를 거둔다 해도 쓸 일이 없음을 시사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미래학자가 아니다.
지난 재임 2년6개월 동안 남북협력기금을 10%도 쓰지 않았으면서 통일세를 말하는 것은 현재를 책임지지 않으려 하면서 미래를 대비하자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에 필요한 것은 통일세 논의가 아니라, 막대한 분단비용이 드는 적대적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평화와 협력의 대북정책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그것이 통일비용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이 정책전환을 통해서 국회에서 마련해준 남북협력기금을 제대로 쓰는 것이 우선이다. 그 뒤 더 필요하면 남북협력기금을 크게 늘리든지 통일세를 논의하든지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통일세 논의, 왜 적절하지 않나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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