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있는 노인에게는 무임승차가 굳이 필요치 않다는 생각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제도를 고치는 건 번거로움만 많고 실익이 별로 없다. 노인의 소득을 조사해서 부자를 고르는 작업에는 만만치 않은 행정비용이 든다.
시민을 자격자와 무자격자로 나누는 것 자체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그러니 노인들을 성가시게 하여 거리 나들이를 줄이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할 짓이 못 된다.
더욱이 부유층 노인에게 전철 승차가 그리 기꺼운 여가활동도 아닐 터이니, 부유층을 제외한들 비용 절감 효과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모든 노인에게 보편적으로 무임승차 지원을 하는 것이 맞다. 물론 노인을 위해 제대로 된 복지서비스를 늘리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무임승차 제도나 무상급식, 기초노령연금을 과잉복지라고 한 총리의 발언으로 보편적 복지 논쟁이 다시 일고 있다.
복지 분야에서는 저소득층에만 급여를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보다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급여를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를 선호한다.
선별적 복지는 수혜자와 비수혜자를 나누어 시민의 연대의식을 훼손하고, 수혜자는 종종 사회적 낙인을 겪는다.
받는 자와 주는 자가 나뉘는 복지제도에 대해서는 국민의 정치적 지지도 약해지기 쉽다. 그래서 복지 확장을 바라는 진보·개혁진영에서는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고, 보편 복지를 정치 연합의 기치로 삼자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10여년 사이 늘어난 복지제도 중에는 빈곤층을 돕는 선별 복지가 큰 몫을 차지한다. 그간의 노력으로 급한 불을 끈 마당에, 복지를 보편적으로 늘려 서민과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걸 막는 데 힘쓸 때가 되었다.
생계 지원도 넓히고, 영유아 보육과 급식 지원, 사회서비스도 늘릴 때다. 하지만 보편 복지에는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복지 재원 총량을 늘려나가면서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편적 복지를 옹호하는 진보세력은 다수 국민의 복지 향상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우월성을 지닌다. 그러나 재원에 대한 고려 없이 보편 복지의 즉각적인 실행만을 앞세워 현실을 무시한다는 비판이 없지 않다. 전면적인 무상급식론이 학교급식만을 바라보는 좁은 시각에 갇혀 학교 밖 결식 아동이나 노인 급식 문제를 나중 일로 돌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계, 주거, 보육 등 지역사회의 다른 복지 욕구도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반면에 보수세력은 단계적 무상급식론으로 진보세력의 이런 허점을 공격하였다. 여권은 부자를 제외한 70% 복지를 내세워 서민의 대변자 연하며, 부자 감세라는 자신들의 원죄를 가리는 성과도 거두고 있다.
1970년대 이래로 우리의 복지제도는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지금까지 사회보험 제도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노동자 등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상위 50% 계층에게 주로 혜택을 주었다. 최근에 하위 10% 미만의 빈곤층 지원이 약간 늘었을 뿐이다.
나머지 40% 정도의 서민과 중산층은 여전히 복지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다. 따라서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는 길에서 지금의 과제는 서민 지원을 늘리는 것에 있다.
보편 복지냐 70% 복지냐를 논란하는 건 과녁을 한참 벗어난 짓이다. 부자 감세에 맞선 서민 복지 확대, 여기에 힘을 모아야 한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보편적 복지
»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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