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현병철 위원장은 지난해 7월 바로 그런 논란과 우려 속에 취임했다.
민법을 전공한 법학자였지만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이 전혀 없어 ‘인권 문외한’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였다.
출발 시점의 그런 우려와 비판은 현재, 전무후무한 인권위원장 사퇴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40여개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점거 농성으로, 전직 국가인권위원들은 기자회견으로, 41명의 야당 의원들은 성명서로, 언론인과 인권운동가들은 글과 인터뷰를 통해 그가 인권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경력과 배경을 문제 삼아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진보, 보수 따위의 이념이나 정치적 이유가 개입되었다면 이렇듯 사퇴 요구가 전방위적이고 한목소리일 수는 없다.
인권위원회 수장으로서 그동안 그가 보인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기이한 행태들이 주된 이유다. 인권위 내부 관계자조차 현병철 위원장 취임 후 인권위가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길을 걸었다고 한탄한다.
인권위의 탄생 이유와 존립 근거가 의견 표명이나 권고임에도 현 위원장은 사회적 논란을 가중시키는 사안이나 현 정부에 부담이 되는 권고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이 있는 듯하다. 소리 안 나는 오디오처럼 침묵 모드로 일관한다.
인권위의 두 가지 본질적 가치인 독립성과 합의제 운영도 헌신짝 취급한다.
상임위원들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그 권한을 축소하여 인권위를 사실상 위원장 1인 체제로 전환하는 안건을 제출하여 상임위원들의 동반사퇴를 유도한다.
직원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위원장이란 사람은 국회에 가서 인권위가 행정부 소속 기관이라고 발언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그런 행태의 백미는 용산참사와 관련해 법원에 의견 표명을 하기 위해 열린 인권위원회 회의 자리에서 그가 했다는 말과 행동이다.
의견 표명 찬성 쪽으로 결론이 나려 하자 ‘독재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의사봉을 두드려 일방적으로 폐회를 선언했다나.
젊은 표현을 빌리자면 이게 뭥미?
인권의 개념을 제대로 알려준다며 뺨 때리면서 가르치려 드는 꼴이다.
인권위원은 철저하게 인권적으로만 생각하면 된다는 인권위 관계자의 말은 백번 옳다. 자신을 임명한 주체를 대변하거나 판결에 영향을 끼칠까를 주제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나 국가정보원 같은 정부 조직의 수장이 하는 역할을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 같다. 임명권자가 같은 사람이니 조직의 궁극적 역할도 똑같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권위 최고 책임자로서 이럴 수는 없다.
예산이 많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조직이 아님에도 이 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이 한목소리로 개념을 상실한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현실이 어떤 측면에서 나는 반갑다. 인권위가 가진 사회적 허파로서의 중요한 속기능을 알고 있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증거여서 그렇다.
하지만 대한민국 인권의 척도를 높이기 위한 첫째 과제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사퇴여야 한다는 현실은 착잡하다.
인권위원회는 이상적이든 현실적이든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문제제기를 한다. 정부가 그 권고를 수용할지 말지의 여부는 정부의 성숙 정도에 달려 있다고 들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병철 위원장이 사퇴 권고를 받아들일지 말지 또한 본인과 임명권자의 성숙 정도에 달려 있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이 당연하고 천부적인 인권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이해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이가 인권위원장이라는 건 비극적 코미디다.
인권을 공기와 똑같은 것이라고 알고 있으며 그러므로 인권이 법 위에 있다고 믿는 많은 국민들은 이렇게 인사할 수밖에 없다.
굿바이, 현병철.
굿바이, 현병철
»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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