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싸울 힘은 있는가?

道雨 2010. 12. 1. 11:49

 

 

 

             싸울 힘은 있는가? 
‘좌파’ 대통령 노무현이 자주국방과 작전통제권을 중요시한 이유
 
» 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11월29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단호한 응징’을 강조했다.

 

앙다문 입술은 결기를 드러내 보이기에 충분했으나, 기자의 입가에서는 “그럴 힘이 있기는 한 거야”라는 쓴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이 대통령이 지난 6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전시작전통제권 연기를 받아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의 군 통솔권을 다른 나라 대통령에게 내주며 짓는 함박웃음과, 복수를 다짐하는 결연한 눈빛은 좀체 어울리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또 1·21 청와대 습격사태와 아웅산 테러를 얘기하며 “참고 또 참아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인내했다’기보다는 보복할 권한과 능력이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1·21 사태의 경우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는 말에 격분한 박 대통령은 “평양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였지만, 당시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던 미국으로서는 또하나의 전쟁을 한반도에서 시작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북한의 무모한 도발도 제2, 제3의 베트남전을 만들어 ‘미 제국주의’의 힘을 분산시키려는 목적이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그저 미군들 모르게 실미도에서 공작원을 훈련시켜 복수할 기회를 노려보는 수밖에 없었으나, 그마저도 방치하다가 대형사고가 나고 만다.

 

아웅산 테러 때도, 휴전선에 있는 육군 1군단과 6군단은 병사들을 완전무장시키고 북진할 준비를 마쳤으며, 육사 12기를 중심으로 하는 장교 집단은 ‘벌초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주석궁을 폭파하고 김일성을 암살한다는 작전을 세우고 모의훈련까지 마쳤다. 하지만 이것도 워커 대사를 비롯한 미국의 압력으로 주저앉고 만다.

 

 

연평도 도발에서도 우리의 처지는 그대로 드러난다.

23일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이 대통령은 “왜 대포만 쏘느냐. 출격한 전투기가 폭격을 하는 건 안 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권능이 우리에게는 없다. 한미연합사령관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확전 자제’라는 발언을 놓고 청와대가 오락가락한 것도, 자기결정권이 없는 우리 정부의 현주소가 반영된 듯하다.

 

 

이런 꼴이다 보니 시중에는 ‘엠비(MB)의 위기대응 3단계 전략’이라는 풍자가 나돈다.

“1단계, 태극기가 그려진 가죽점퍼를 입는다.

2단계, 지하벙커로 달려간다.

3단계, 오바마한테 전화한다.”

 

 

오해는 마시라. 피의 보복을 가해야 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문제는 미국의 도장을 받아야만, 군사적이든 외교적이든 대응을 할 수 있는 우리의 꼬락서니다.

이명박 정부는 그게 좋다고 작전통제권을 내주었다. 동네 친구들한테 얻어맞고는 형님 등 뒤에 숨어서 “저놈이야. 혼내 줘”라고 징징대는 응석받이가 연상될 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싸울 일도 아닌데, 보스들끼리의 영역 다툼 때문에 각목 들고 동원되는 행동대원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베이징까지 공격권에 둔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이 중국의 코앞에서 훈련중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쿠바가 한대 맞았다고 중국이 핵항모를 보내, 뉴욕 앞바다에서 군사훈련을 한다면 말이다.

 

두 강대국 사이의 긴장 격화는 먼 훗날의 일이라고 해도, 당장 눈앞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있다. 연평도 사태에 힘을 보태준 미국의 요구 수준은 더 높아질 것이고, 그걸 거부하기에는 우리 정부의 처지가 너무 옹색하다.


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민주평통 연설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

 

6분짜리니, 한번들 보시라.

 

‘좌파’ 대통령이 왜 그리 자주국방과 작전통제권을 중요시했는지 한번쯤 생각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