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대통령은 “지난 20여년간 우리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고 인도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며 “그러나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핵개발과 천안함 폭침에 이은 연평도 포격이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마치 전임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이 오늘날 북한의 도발을 초래한 원인인 것처럼 모호하게 말을 흐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주요 대북 화해협력 조처들이 중단된 지 이미 세 해째다. 이 대통령의 언급은 현 정부가 한 일은 쏙 빼놓고 전임 정부들한테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점에서 비겁하고 부정직하다.
실제로 화해협력 정책이 펼쳐지던 시절에는 북한이 지금과 같은 무력도발을 자행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노무현 정부 5년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싸고 발생한 교전이나 사상자는 없었다.
수시로 이어진 북한군의 해안포 사격과 천안함 사건(북한의 소행으로 볼 경우), 그리고 이번 연평도 포격과 같은 고강도 도발은 현 정부 들어 나타난 새로운 유형이다.
결국 이 대통령의 담화는 전임 정부들이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해 북한의 위협을 관리해온 것과 달리 자신이 위협 관리에 실패한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북한의 위협을 어떤 방식으로 제어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해법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다만 “어떠한 위협과 도발에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용기”를 원론적으로 언급했을 따름이다. 이것은 천안함 사건 뒤 갖가지 대북 압박책을 동원한 까닭에 더 쓸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북한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표현도 6자회담에 비중을 두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해서 북한의 위협을 줄일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여러 압박책을 다 동원하고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기존 정책에 대한 성찰은 없고 새로운 대북정책 비전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안보위협이 해소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전임 정부들도 북한이 도발적인 집단임을 몰라서 화해협력 정책을 쓴 것은 아니었다. 이 대통령은 원론적 다짐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직시하기 바란다.
이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인정한 것은 당연하다. 다만 기왕에 책임을 인정한 만큼 지난 과정을 다시 살펴서 위기대응의 실책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
구체적으로는 국방부와 일선 부대를 탓하기 전에 대통령 자신과 청와대가 빚은 혼선부터 성찰하는 게 마땅하다. 가령 대통령이 포격 당일 확전 자제 지침을 내렸다가 같은 날 지침을 번복한 것은 위기상황에서 혼란을 부추긴 대표적인 사례다.
국방장관을 경질한 것으로 넘어갈 게 아니라 사태의 전말과 책임소재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
<한겨레신문 2010. 11. 30 사설>
대통령 담화,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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