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냉전 해체 20년, 거꾸로 가는 한반도

道雨 2010. 11. 30. 10:39

 

 

 

냉전 해체 20년, 거꾸로 가는 한반도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냉전 해체 20년이라는 세월이 부끄럽고 무색하기 그지없다.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은 그들의 막가파식 야만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북한군의 공격으로 희생된 젊은 장병들을 생각하면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의 처지이기에 더욱 가슴을 저민다.

 

이념의 시대는 갔고,
남북간 체제 대결도 의미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격차가 벌어진 시대에 살고 있건만 왜 우리의 삶은 이다지도 척박하고 불안정한 것인가?

 

 

북한이 극도로 호전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굳이 6·25 남침을 떠올리지 않아도 1968년과 1983년에 그들은 남한의 대통령을 살해하려고 시도한 집단이다.

그러나 그 호전성을 관리하고 완화시켜야 하는 일은 그렇게 해야 그나마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는 남한의 몫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북한과 7·4 남북공동성명을 합의했으며, 전두환 대통령도 비록 불임으로 끝났지만 아웅산 사건 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였다.

 

그들이 그 험악했던 상황에서 정치적 계산이나 영웅심리만으로 남북대화를 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입장에서 국민의 안녕과 평화, 통일에 대한 소명 등이 북한에 화해의 손을 내밀도록 했을 것이다.

이에 비추어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민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를 동안 끝 모르는 남북관계의 악화가 불행한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종이 도처에서 울렸지만, 정부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남북관계에 이렇게 전운이 감돈 적은 없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1990년대 이후 한반도 최대의 잠재적인 분쟁요인이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03년 6월에 서해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하여 북방한계선에서 남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지시하였다.

각고의 노력으로 서해상에서 북한의 새로운 해상경계선 주장을 일축하면서도 한 차례의 교전이나 사상자 없이 참여정부 5년을 보낼 수 있었다. 과시하기 위해서 밝히는 것이 아니라 “포용정책을 썼던 과거 정부에서도 북한이 도발하는 것은 똑같았다”는 주장이 옳지 않음을 말하기 위해서다.

현시점에서 전쟁을 통해 북한을 괴멸시키지 않는 한 북한의 도발을 근절할 만병통치약 같은 정책은 없다. 그래서 그들의 호전성을 감소시키고 도발의 빈도를 줄여가려 한 것이 포용정책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돈을 주고 평화를 샀다고.

이명박 정부가 남북협력기금 중 식량·비료 등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해 지난 2년간(2009∼2010년) 책정해 놓은 돈이 1조5000여억원이었다. 그런데 <2010 통일백서>를 보면 참여정부 5년간 북한에 인도적으로 지원한 것이 1조4000여억원어치이다. 현금은 화상상봉 시설비용 40만달러가 전부였다.

이것으로 평화가 유지된다면 왜 마다하겠는가? 우리의 불안해진 삶은 차치하고라도 천안함과 연평도 등에서 희생된 인명 피해와 물적 피해가 얼마인가?

 

 

공직을 물러난 직후인 2007년 어느 신문사 논설위원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한 분이 내게 북한을 믿느냐고 물었다. 알 만한 분이 당국자의 외교적 수사를 북한 신뢰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황당했다. 나는 북한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나는 북한을 믿지 않는다. 통일부 장관 시절 북한과 합의를 하고 회담장을 나서서 사무실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북한이 다른 핑계를 대서 합의를 깨거나 지체시키지 않게 할 방법부터 챙겼다.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의 길은 그만큼 멀고 험난하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자신의 안녕과 미래를 위해 가야 할 길이다. 그 노력은 북한을 위해서도 다른 나라를 위해서도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냉전 20년이 지난 오늘, 거꾸로 가는 한반도에서 그래도 우리는 평화와 통일의 희망을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립과 충돌로 얼룩진 조국을 다음 세대에까지 넘겨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