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9월11일, 해군 상륙함이 부산항을 떠났다. 제1이동외과병원 요원 130명, 태권도 교관단 10명 등 국군 장병 140명이 탔다. 베트남 전쟁터로 향하는 한국군의 첫 해외 파병이다.
이후 한국군은 1973년까지 8년간 연인원 약 31만3천 명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전사자는 4960명, 부상자는 1만962명이다.
11월3일 현재, 국군은 2007년 7월 레바논에 파견된 동명부대 소속 359명을 비롯해 14개국에 1196명이 파견돼 있다.
끼워팔기식 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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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익을 내세운 아랍에미리트 파병안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6월15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한국군 ‘오쉬노’ 부대 선발대가 아프간 지방재건팀을 경호하기 위해 출국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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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파병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의 용병’으로 대리전을 치른다는 반대론과, 한국 경제성장의 종잣돈을 벌어 ‘국익’에 기여한다는 찬성론이 부딪쳤다.
지금 다시 국익을 앞세운 파병이 논란이다.
정부는 한국형 원전을 도입하는 아랍에미리트(UAE)에 내년 1월부터 2년간 특전사 병력 150명을 파견하는 안을 지난 11월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대테러팀·특수전팀·고공팀 등이 아부다비 알아인에 있는 특수전 학교로 파병돼 교육·훈련 임무를 맡는다.
정부는 ‘새로운 개념의 파병’이라고 강조한다. 창군 이래 최초로 비분쟁 지역에 국익을 위해 파병한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군사협력과 국익 창출을 목적으로 파견하는 새로운 파병”이라고 설명했다.
파병의 이점으로
△원전 수주 등 국가 차원의 경제협력 확대에 긍정적 역할
△방산·군수 수출협력 확대를 위한 유리한 여건 조성
△중동지역 방산수출 전진기지로 활용 등을 들고 있다.
윤원식 국방부 공보관은 16일 “대한민국 국민이 복된 삶을 살고 국위를 선양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런 국익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제전쟁’ 시대에 국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파병을 포함한 국가 총력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1월11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정미경 의원은 “월남전에 파병한 이유는 국익을 위해서다. 이번도 마찬가지”라고 파병안을 지지했다.
박창권 한국국방연구원 정책기획실장도 “현 세기는 이념전쟁이 끝나고 각국이 실리주의 정책을 펴는 시기”라며 “UAE 파병도 국익에 기여하는 군사외교의 하나”라고 ‘새로운 평화지역 파병모델’을 강조했다.
국익을 위해 첫해 140억원, 다음해부터 80억원으로 추정되는 비용도 한국이 부담한다.
하지만 파병계획을 철회하라는 요구가 거세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1월10일 “파병이 원전 수주의 전제조건이었다면 국가적 망신이자 제국주의적·구시대적 발상으로, UAE 파병을 절대 반대한다”며 “장기적 국익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 데서 시작된다”고 비판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12일 “돈을 벌기 위한 파병은 헌법상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파병이 국익이라는데 야당 등은 오히려 국익에 손해라며 맞서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11월4일 논평에서 파병이 국익이 아니라 ‘군의 이익’이라고 비판했다.
비분쟁 지역 파병은 군사력을 팽창시키려는 의도인 만큼, 파병계획을 철회하고 원전 수출과 파병 사이에 비밀합의 밀약이 있었는지 해명하라고 촉구했다.
박정은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파병은 원전 수주의 대가거나 해외 진출을 통해 군의 덩치를 키우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군의 이익을 국익으로 포장한 것”이라며 “모호하고 검증되지 않은 국익을 내세워 모든 것을 합리화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 안전’과 ‘국토 방위’ ‘국제 평화’를 목적으로 존재하는 국군 본연의 임무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파병 반대 진영은 비전투 지역 파병이 ‘끼워팔기식 파병’의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번이 국익을 앞세운 비분쟁 지역의 첫 파병이기 때문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11월11일 국회에 출석해, UAE 파병은 원자력발전소 수출과 관련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며 “작년에 원전 수주를 위해 노력하면서 정부의 거의 모든 부서가 협력했는데 그 과정에서 (파병) 거론이 있었다”고 밝혔다.
아랍 부족장의 힘, 자원과 군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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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군 해외 파병 현황.(11월3일 현재, 괄호 안 단위: 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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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을 둘러싼 견해차는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지난 11월8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성인남녀 1천여 명에게 전화조사를 한 뒤 14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6.8%가 UAE 파병에 찬성했고 34.85%는 반대했다.
반대자 가운데 41.3%가 ‘군인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꼽았다. 이어 ‘원자력발전소 수주의 대가로 파병한다는 생각 때문’(27.6%), ‘어떤 이유로도 해외에 군인을 파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19.2%), ‘국익 차원에서 이익이 크지 않을 것’(8.3%)이라는 순이었다.
반면 긍정적 응답은 ‘UAE와 국방 분야 협력의 계기’(52.9%), ‘UAE와 경제협력 계기’(52.6%), ‘중동지역 방산수출 계기’(52.4%), ‘군 전투력 향상 기여’(43.6%) 등의 이유를 들었다. 국익에 기여하기 때문에 찬성한다는 대답이다.
사실 냉정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국익이라는 논리 앞에 도덕과 윤리가 설 자리는 거의 없다. 결국 UAE 파병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논란은 박정은 참여연대 정책실장의 말처럼 “무엇이 국익이냐는 가치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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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에미리트(UAE) 7개 토호국 및 파병 예정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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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파병 절차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논란을 키운다. 정부가 국무회의 의결 일주일 전에 파병계획을 발표하고, 양해각서(MOU)는 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은 채 국회에 파병을 동의해달라는 것을 두고 비판을 받고 있다.
반면 윤원식 국방부 공보관은 “정책 추진 현안도 순서와 경중이 있는데, 천안함 정국과 국정감사 등의 일정을 따져 미루다가 이제 국민에게 발표하고 절차를 밟아가는 것”이라며 “불투명하다는 비난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UAE는 왜 파병을 요청했을까?
이번 파병은 UAE 정권 안보 지원의 성격이 짙다.
김태영 장관은 11월9일 언론사 논설위원 초청 간담회에서 UAE가 “정권 안보에 대한 부담을 강하게 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정권 안보적 차원에서, 자기와 가깝고 영토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외국군이 와주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아랍에미리트가 어디에 붙어 있냐” “두바이가 UAE 수도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UAE는 1971년 12월 영국에서 독립한 신생국가로, 7개 토호국(Emirates)이 연합한 나라다.
영국은 1650년께부터 아라비아반도에 영향력을 끼치면서 1892년 이후부터는 7개 토호국을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아부다비가 UAE 수도고, 두바이는 7개 토호국 가운데 하나다.
UAE는 ‘아이폰’을 쓰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도 아랍 전통의 부족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특정 부족만을 대표했던 부족장이 지금은 연합 부족으로 구성된 토호국을 통치하는 ‘셰이크’(sheikh)라는 사실이 차이다.
전통적으로 아랍 부족장의 힘은 두 가지에서 나온다. ‘자원’과 ‘군사력’이다.
셰이크는 권위의 상징인 자원의 자주성과 군대의 독립성을 강조해왔다. 특히 군대 또는 군사력은 통치의 핵심 축으로 인식돼왔다.
이 때문에 두바이가 군 통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UAE는 1997년에야 진정한 군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그나마 군사권력은 UAE 국토의 86.7%, 인구의 38%를 차지하는 아부다비와 인구의 30%, 영토의 5%를 점유한 두바이가 양분하고 있다.
특히 전체 인구나 군 구성에서 외국인 비율이 높은 게 UAE 통치자들의 불안 요인이다. 전체 인구 820만 명 가운데 자국민 비율은 20%를 밑돌고, UAE군의 30%는 외국인이 차지할 정도였다. UAE는 2006년 12월에야 처음으로 선거를 실시해 연방 평의회 의원 절반을 선출했고 그나마 자문 역할에 그칠만큼 통치자가 절대적 권력행사와 정권유지에 애착을 갖고 있다.
그런 체제에서 애국심과 소속감이 떨어지는 외국민의 비율이 과도한 것은 정권 안정에 불안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UAE 연방정부는 1983년 2년제 단기 사관학교를 설립해 순수 내국인 장교를 양성하고 있고, 걸프전 이후 외국인 용병을 자국민으로 대체하는 정책을 견지해 70%를 차지하던 외국인 용병을 30% 수준으로 낮춘 상태다.
정권 안보 차원에서 외국군 원해
박창권 실장은 “UAE군에는 인도나 파키스탄 등의 병사가 많이 섞여 있다. 군은 통합됐지만 자치 토호국의 통합된 국가로서 정체성과 군의 결속력이 약하다 보니 통합적 능력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며 “지역적 안정과 페르시아만의 안보적 특성 등을 고려해 한국군을 파병받아 군을 현대화하고 간부를 정예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UAE는 지금도 미국(1600여 명), 프랑스(500여 명), 오스트레일리아(400여 명) 등 10개 나라 3천여 명을 파병받아 교육·훈련 지원과 연합훈련을 받고 있다.
UAE는 특수부대원을 현재 5천 명 수준에서 1만 명으로 늘려 폭동과 테러리즘에 대처하고 있다. 실제로 1966년 아부다비의 통치가문 알나하얀 내에서 정권 찬탈이 벌어졌다.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이 친형이자 아부다비 통치자였던 셰이크 샤크버트에게서 통치권을 강탈당한 것이다. 1987년에는 7개 토호국 가운데 하나인 샤르자에서 쿠데타 시도가 일어나기도 했다.
국방부는 UAE 파병에 대해 “전투 위험이 전혀 없고 장병의 안전이 확보된” 비분쟁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전투가 아니라, 교육·훈련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장광일 국방부 정책실장은 “분쟁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기우”라고 밝혔다. 박창권 실장도 “관광 및 비즈니스 허브를 노리는 작은 나라가 분쟁을 바라겠나? 중동의 패권국가인 이란이 한국군 파병으로 위협을 느낀다는 것은 ‘오버’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란과 UAE 사이에 호르무즈 해협의 3개 섬을 둘러싼 영토 분쟁의 불씨가 살아 있다.
이란은 1971년 그레이터 툰부와 레스 툰브, 그리고 아부 무사 섬을 점령한다. 1992년에는 이들 섬을 방문하려면 이란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1996년에는 그레이터 툰브와 아부 무사에 각각 발전소와 공항을 세워 갈등이 격화된다.
UAE는 미국의 아프간전 배후 지원 기지 역할도 하고 있다.
비분쟁 지역에 살아 있는 분쟁의 불씨
베트남전에도 비전투 비둘기 부대가 먼저 파병된 뒤 청룡·맹호부대 등 전투부대 파병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11월15일 국회에 파병동의안을 제출해 국방위원회에서 심사가 진행 중이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국회 동의를 얻으면 파병이 이뤄진다.
‘새로운 파병’은 과연 국익을 얼마나 창출할 것인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