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퍼주는게 행복? MB ‘정신적 승리법’
그런데 국내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재협상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이 명백한데도 우리 정부는 ‘윈윈 협상’이었다며 이를 환영하고 있다.
불리한 협상이었음을 알면서도 국내 정치용으로 그러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도 있다. 앞으로 국회 비준 동의를 받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그다지 손해 보지 않았다는 점을 역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정부 반응을 보면 이 정도의 결과에 정말로 만족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김종훈 협상 대표는 “우리의 일방적 양보라는 일부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대통령도 “이번 합의는 양국의 이익을 서로 균형 있게 반영”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마치 상대에게 뺨을 얻어맞고도 “이 정도야 맞을 만해서 맞은 것인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미국 앞에만 서면 나타나는 이 대통령의 이런 행태는 하루이틀 된 게 아니다.
취임 뒤 첫 방미에 나선 이 대통령은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캠프데이비드 별장회담’ 직전인 2008년 4월18일, 미국 상공회의소 주최 ‘최고경영자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자랑스럽게 전했다.
국내 축산농가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국민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을 포기하면서도 너무나 당당했다. 한-미 에프티에이 비준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을 위해서라면 미국 쪽이 간절히 원하는 쇠고기 시장 개방 요구쯤은 기꺼이 들어줘도 된다는 자세였다.
우리 군대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시점을 연기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주권 국가로서 자국 군대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6·25 전시 상황에서 미국에 넘겨준 전작권을 2012년 4월 찾아오기로 돼 있었는데,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환수 시점을 2015월 12월로 늦췄다. 그것도 미국을 겨우 설득해서.
전작권 환수 시점을 연기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누군가 부담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건 우리가 일정 부분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가며 우리의 군사주권을 계속 미국 손에 넘기면서도 이를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환영하는 이 정권의 사고 구조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정권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뒤집으면 종속 심화)를 위해서라면 우리 식탁뿐 아니라 경제나 안보까지도 미국에 떠넘길 준비가 돼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미국으로부터 아무리 불리한 대우를 받거나 손해를 봐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의식 구조가 굳어진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에 익숙해 있다. 미국 사대주의와 노예근성이 몸에 밴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국 작가 루쉰의 대표작인 <아큐(Q)정전>의 주인공 아큐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를 기만하면서 살아가는 날품팔이다. 자기 손으로 자기 뺨을 때리고도, 때린 것은 자기고 맞은 것은 다른 사람이라며 의기양양해한다.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는 ‘정신적 승리법’이다.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임을 당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목이 잘리는 일도 없으리란 법이 없다’고 자위한다. 결국 아큐는 마을 사람들의 조롱 속에 비참한 생을 마감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점점 아큐를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기 바란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twin86@hani.co.kr >
'아Q' 닮아가는 MB
정석구 기자
»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시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보무능 이은 외교무능…국민 신뢰 추락 (0) | 2010.12.07 |
---|---|
피가로의 결혼 (0) | 2010.12.07 |
조폭과 가장 (0) | 2010.12.07 |
군·인·수·출 (0) | 2010.12.01 |
호민관의 죽음은 독재를 불렀다 (0) | 2010.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