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조폭과 가장

道雨 2010. 12. 7. 12:17

 

 

 

                 조폭과 가장

진중권. 서울대학교 미학 학사·석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철학 박사과정. 전 중앙대학교 문과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재벌 2세 최철원은 자본주의적 근대에도 도달하지 못한 대한민국 경제의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와 사용자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동등한 인격으로서 서로 노동력을 거래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최철원과 노동자의 관계는 정확히 신분제 폐지 이전의 상전-하인 관계와 다르지 않았다.
최철원은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에 상전이 하인을 때리면서 돈을 준 적이 있냐고. 적어도 나는 폭행을 하며 한 대에 백만원씩 쳐주었고, 이것이야말로 근대적 계약이 아니겠냐고. 심지어 나중에는 맷값을 한 대에 삼백만원씩 파격적으로 인상해주었다고. 이것이야말로 근대적 의미의 계약이 아니겠냐고.

 

하지만 근대법은 구타를 계약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아가 폭행이 가해지는 위압적 분위기에서 행해진 계약은 그 어떤 것이라도 효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아직 반상의 차별이 있던 시대를 사는 이는 좀 특별한 교육환경에서 시대의 변화를 몸으로 배우고 나와, 두부 먹고 새사람 될 필요가 있다.

 

다중의 위력으로 한 개인을 잡아놓고 범행을 도왔다는 점에서 그 회사의 임원들 역시 공범으로 보인다.

그중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천만원어치 맞지도 않았다.”

그래서 거스름돈 달란 얘긴가?

이 말로써 모멸당하는 것은 휴머니티 그 자체다. 이 얼빠진 이들의 입도 두부로 하얗게 정화될 필요가 있다.

 

 

가족을 먹여살리려면 어떤 굴욕이라도 참아야 한다는 게 대한민국 가장들의 평균적 정서다. 그래서 아비는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그 일을 끝까지 혼자 간직하려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차라리 함께 굶어죽을지언정, 대한민국의 어느 딸, 어느 아내가 제 아비가 자기들 때문에 그런 모멸을 참기를 바라겠는가?

 

최철원 일당이 계산하지 못했던 것은 가족애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평균적 아비들이 가족을 위해서라면 자존심 따위는 내다버릴 정도로 비루한 존재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가족의 사랑은 차라리 함께 밥을 굶을지언정 아비의 마지막 자존심만은 세워주어야 한다고 믿을 정도는 된다.

 

돈이 없어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열심히 일해 하나의 가정을 일군 것은 위대한 업적이다. 이 업적이 누군가에게는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부모 잘 만나 은수저를 입으로 몇 벌씩 쳐물고 태어난 것 외에는 딱히 잘난 게 없어 뵈는 허접한 금전 깡패에게 능멸당할 게 못 된다.

 

듣자 하니 이게 한두 번이 아니란다. 그전에도 직원들 데려다가 얼차려를 주고 골프채로 폭행을 가하는가 하면, 사냥개를 데려다가 여직원을 협박한 일도 있었단다.

황당한 것은 그런 그가 제 모교에는 15억원이라는 거금을 기탁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고 한다. 이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모교에 거금을 기부하는 장한 CEO 동문’은 그가 사회라는 가장무도회에서 쓰고 싶어하는 가면이었을 게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을 한 그 가면 아래로 드러난 것은 볼기 맞은 가장들의 살과 피가 튄 괴물의 얼굴.

그 돈을 어디에 쓸까?

그 학교에 ‘기부는 사람이 한 것만 받는다’는 최소한의 도덕은 있을까?

 

아무튼 이왕 기부한 돈이니 교육적 목적에, 즉 잘못 가르쳐 내보낸 동문을 재교육하는 데에 쓰는 게 어떨까? 마침 현장의 임직원들은 흥미롭게도 맷값을 ‘파이트머니’라 불렀단다. 그 돈을 K1에 ‘파이트머니’로 기부해 밥 샙이나 효도르한테 이들의 교육을 맡기는 거다. 한 대에 백만원이니까, 15억이면 1500대, 보스와 부하들 모두 두루 정신차릴 만큼 맞을 액수는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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