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시청권 침해하는 ‘대통령 방송’ | |
이번 설 연휴 전날에도 ‘대통령 방송’이 있었다. <한국방송> <문화방송> <에스비에스>에다가 보도전문채널인 <와이티엔>까지 동시생중계를 했다니 주요 방송들이 모두 중계한 셈이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티브이 대담은 주로 명절을 끼고 이루어졌다. 2008년에 있었던 한국방송 주관의 ‘질문있습니다’는 추석 직전인 9월9일에, 2009년 에스비에스의 대통령과의 원탁회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는 설 직후인 1월30일에, 그리고 작년에 있었던 한국방송 ‘아침마당-대통령 부부의 사람 사는 이야기’는 추석 연휴 첫날인 9월20일에 방송됐다. 2009년 11월 문화방송 주관의 ‘대통령과의 대화’만이 예외였다.
티브이를 통한 ‘대통령 방송’이 주로 설이나 추석을 전후해서 이루어진 것을 보면, 명절을 맞아 대통령이 국민에게 덕담을 하는 형식을 취한 셈이다. 잘 아다시피 엠비정부 내내 예민하고도 복잡한 국정 현안들이 끊이지를 않았다. 무거운 쟁점들이 산재해 있는데, ‘대통령 방송’은 민심이 좀 누그러지는 명절 때를 잡아 이루어진 것이다. 2008년 9월에는 미국 쇠고기 수입과 촛불 정국에서, 2009년 1월에는 4대강 논란과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 같은 해 11월에는 세종시 논란 와중에서 방송 대담이 이루어졌다. 그때마다 ‘대통령 방송’에 대한 여야의 평가는 갈렸지만, 대개는 대통령의 일방적인 변명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의 대화’를 빙자한 ‘대통령 방송’은 더욱 독단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대통령의 일방적인 홍보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얘기다. 2008년 9월과 2009년 1월의 대담 때만 해도 비교적 다양한 시각의 패널들이 출연했고 다소 긴장된 가운데서 그나마 어느 정도는 균형된 질의응답이 진행되는 듯하더니, 2009년 11월 세종시 논란 와중에 있었던 ‘대통령과의 대화’ 때는 아예 패널 구성에서부터 균형을 깨고 세종시 원안 수정 쪽으로 밀어붙이는 홍보성 대담 방송을 강행했다. 그것도 국내 지상파방송을 포함해 35개 방송사를 망라해서 동시 중계방송을 했으니 한국을 제외한 주요 20개국(G20)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 설 직전의 ‘대통령과의 대화’ 방송은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청와대가 모든 것을 기획·연출하고, 방송사는 단순 생중계를 한 것에 불과했으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또다른 기록을 세운 셈이다. 더군다나 상업방송인 에스비에스가 하는 대통령 대담 프로를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이 단순 생중계를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민의 편에 서서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고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기본사명으로 해야 할 공영방송은 이미 이 땅에서 사라졌다는 얘기다.
방송을 단순한 대국민 홍보 도구나 여론 조작의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정권에는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을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정권에 휘둘리는 방송으로서는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기 어렵다.
많은 반대가 있었음에도 이 대통령은 이미 2008년 10월부터 지금까지 60여 차례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해오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유독 명절 때가 되면 주요 방송을 틀어쥐고 ‘대화’가 아닌 정권 홍보와 변명을 덕담 삼아 하고 있다.
앞으로는 그렇게 국민의 시청권을 맘대로 침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물론 이를 관용하는 방송사 책임이 더 클 것이다.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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