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증세없이 미국 재건 없다' 슈퍼부자들 위기감 발동

道雨 2011. 8. 18. 11:57

 

 

 

'증세없이 미국 재건 없다' 슈퍼부자들 위기감 발동
 

 

미 부자들 ‘감세 철회’ 지지 왜
부시 감세정책뒤 재정적자

 

 

 

미국이 심각한 재정적자에 허덕이면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주장하는 ‘부자 증세’가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여론 변화를 경계하듯, ‘감세’를 주장하는 티파티 소속이자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인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은 16일(현지시각) 버핏을 겨냥해 “세금은 이미 충분히 높다. 당신이 인상적 한마디를 남기려 다른 사람들에게 세금을 높여야 한다고 요구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슈퍼부자는 버핏 혼자가 아니다.

버핏의 14일 <뉴욕 타임스> 기고에 ‘헤지펀드 대부’ 조지 소로스도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지난해 11월에는 ‘재정강화를 지지하는 애국적 백만장자들’이라는 단체를 통해 백만장자 45명이 감세조처 중단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인터넷매체 <데일리비스트>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시엔엔>(CNN) 설립자 테드 터너 등 12명을 증세 주장을 해온 부자들로 최근 꼽았다.

 

 

미국에서 부자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증세를 요구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조지 부시 행정부의 감세 정책에 선이 닿는다.

부시 행정부는 집권 당시 ‘따뜻한 보수주의’를 구호로 내걸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부자들의 기부와 사회 환원을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를 공화당 기조인 감세 정책과 함께 들고나왔다. 감세를 하면,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주장이었다. 결과는 심각한 재정적자, 복지 파탄, 사상 최대 빈부격차로 귀결됐다.

 

미국 시민단체들의 조사 내용을 보면, 부시 감세조처로 연소득 4만~5만달러의 중산층 가구는 세후소득이 2.2% 늘었고, 연소득 100만달러 이상의 부자들은 세후소득이 6.2% 늘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감세 정책으로 중산층은 1인당 연간 860달러(92만원), 부자들은 12만8832달러(1억3808만원)를 더 얻었다.

버핏 회장은 지난해 11월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부자들은 늘 ‘(가진 사람이) 더 많이 쓰면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돈이)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난 10년간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더 많은 일자리와 저소득층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뉴햄프셔주 콩코드시 주의회 앞에서 ‘슈퍼 부자에게 세금을 물려라. 경제가 도랑에 빠졌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콩코드/AP 뉴시스

또다른 이유는 심각한 재정적자에 대한 실질적 위기감이다.

심각한 재정적자 타개책으론 현재 공화당이 주장하는 재정 감축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증세가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미국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지난 4월 <뉴욕 타임스>와 <시비에스>(CBS)의 여론조사에서 연소득 25만달러 이상 가구에 부과되는 연방정부 세금을 2013년부터 올리는 방안에 72%가 찬성 의사를 밝혔다. 심지어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도 55%가 부자 증세를 원했다.

 

이런 요구를 부자들이 마냥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특히 자본주의 역사가 깊은 미국에서 부자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만큼 사회적 존경을 받는 데도 가치를 둔다. 부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안 낸다는 국민들의 인식은 이런 기반을 흔드는 셈이다.

 

또 소비가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미국에서는 내수경기가 가라앉으면, 기업 매출감소, 주가하락 등으로 부자들의 소득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내수가 가라앉아도 대기업 수익은 계속 늘어나는 한국 등 수출중심국과는 구조가 다르다.

 

물론 미국에서도 여전히 다수의 부자들은 증세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공화당이 악착같이 감세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도 기업이나 부자들의 로비가 배경이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도 이날 버핏의 ‘부자 증세’ 주장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보도하는 등 여론 물꼬를 돌리려 애썼다.

부자 증세 논란이 미국에서 ‘태풍의 눈’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

 

 

 

 

 

 

  청와대 ‘감세 철회 검토하고 있지 않다’ 소극적
 

 

MB정부 핵심 철학 ‘감세’
공생발전 위해 철회 필요
버릴까? 말까? 딜레마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생 발전’을 새로운 국정 기조로 제시하면서 감세 철회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생 발전과 재정 균형의 논리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감세 철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생 발전과 관련해 “대기업에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졌다. 사회적 책임의 무게가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특히 2013년까지 균형 재정을 달성하겠다고 했다.

이에 정부는 당장 내년 예산안부터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예산안 및 세제 개편안을 마련해 다음달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대기업의 책임, 균형 재정이라는 말이 맞물리면서 당장 여론의 관심은 감세 철회 문제로 옮아갔다. 균형 재정과 감세는 아무래도 모순적인 조합인 까닭이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직접 공생 발전을 제시했고, 대기업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강해져 있다.

 

 

청와대는 감세 철회 가능성을 일단 부인하고 나섰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7일 “균형 재정 달성의 방법에 감세 철회만 있는 건 아니다”라며 “감세 철회를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소극적인 것은 감세 정책이 현 정부 ‘철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현 정부는 감세를 통해 기업의 투자가 늘고 이것이 일자리와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그렸다”며 “감세가 기업 투자로 이어지지 않아 대기업 쪽에 불만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감세 기조를 되돌릴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감세 기조를 철회하면 ‘이명박 정부와 이전 정부의 차이는 뭐냐’라는 얘기가 나온다”고도 했다. 감세가 정권의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말이다.

감세를 철회하면 정국 주도권을 한꺼번에 잃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이 관계자는 “감세 철회만 똑 떼어내 실무적으로 처리하면 좋겠지만, 다른 모든 쟁점이 이에 끌려 들어가면서 청와대의 힘이 급격히 빠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감세 기조를 그냥 끌고 갈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게 청와대의 고민이다.

공생 발전이라는 화두를 던졌는데,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또 야당뿐 아니라 여당마저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 문제 처리를 장담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6월 의원총회를 열어 감세 철회를 사실상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다. 퇴로 또는 우회로가 없다는 말이다.

김성식 한나라당 정책위 부의장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조세권은 국회에 있다”며 “한나라당은 추가 감세를 철회하고 3년 동안 15조원의 세수 감소를 막음으로써 재정 건전성도 튼튼히 하고 민생과 인적 투자와 복지에 대한 예산도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를 직접 챙기는 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는 “그런 어려운 문제는 묻지 말라”며 즉답을 피했다.

 

<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

 

 

 

 

*** 이명박 정부 들어서 2008년 실시한 부자감세 조처로, 이 대통령 재임 5년간 총 96조원, 그리고 그 뒤에도 매년 25조원(이상 2008년 불변가격)의 감세 혜택이 부유층에게는 계속되고 있다.

 

*** 4대강 사업 시작 전에는 4대강 하천관리비용으로 매년 약 250억원이 들어갔는데, 총 22조원의 예산을 투입한 4대강 사업 이후로는 관리비용(이자비용 4천억원 포함)이 이전의 40배인 약 1조원(최소 7천억원)이 매년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