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망가지는 방송들 ⑵

道雨 2011. 8. 22. 13:04

 

 

 

                망가지는 방송들 ⑵
 

 

 

» 정연주 언론인
<문화방송>의 최승호 피디.

<피디수첩> 하면 그의 이름이 떠오를 정도로 눈부신 프로그램들을 만들었다.

‘스폰서 검사’의 실상을 폭로한 ‘검사와 스폰서’, 불방 사태 등 우여곡절 뒤 방송된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은 침묵과 왜곡, 정권 홍보 방송이 되어버린 환경에서도 치열하게 진실을 전한 작품이었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동아일보사 해직언론인 모임인 ‘동아투위’에서 주는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받았고, 한국피디연합회가 주는 최고의 상인 ‘한국 피디 대상’도 받았다.

 

그가 얼마 전 <한겨레>에 ‘김재철 사장 사표 파동이 남긴 교훈’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이 글에서 그는 “김 사장이 지배하는 문화방송에서는 땡전뉴스 시대 뺨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 뒤, 그 사례들을 하나하나 적었다.

 

그 사례들을 보면 참 엽기적인 일들이 21세기 대명천지에 공영방송이라는 조직 안에서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령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 아이템에 대해 담당 부장이 ‘불가’라고 했는데, ‘청문회 이후에나 해야지 전에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단다.

4대강 아이템은 너무 자주 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담당 부장이 피디들 책상을 뒤지는 이른바 ‘사찰 논란’까지 일어난 모양이다.

<개그콘서트>의 ‘9시쯤 뉴스’에나 나옴직한 풍경들이다.

 

 

<한겨레>에 기고한 글 때문에 최승호 피디는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경위서 제출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서천 소가 웃을 일이다.

신문에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언론행위를 한 것을 두고, 명색이 언론기관이 이를 문제 삼다니, 참으로 괴이한 자기부정이다.

 

최승호 피디는 이번 기고문 사건 이전에 이미 혹독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이 다니는 소망교회를 취재하던 중 <피디수첩>에서 쫓겨나 비제작부서로 발령받았다. 야구장에서 펄펄 뛰는 4번 타자를 어느 날 아침 사무실 직원으로 앉혀버린 꼴이다.

최 피디 외에도 여러 피디들이 그렇게 제작 일선을 떠났다.

 

이런 일들은 <한국방송>에서도 이미 있었다.

김용진 기자는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방송의 과다한 홍보 방송을 비판한 글을 외부에 발표했는데, 그것이 취업규칙의 ‘성실과 품위 유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자 그는 “나치방송 또는 조선중앙방송에나 나올 법한 유형의 선전들이 국민의 소중한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 버젓이 방송되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들에 대해 아무런 말도 않고 지나가는 것이야말로 취업규칙의 ‘성실’과 ‘품위 유지’ 조항을 어기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방송의 탐사보도 팀장을 하면서 탐사보도 영역을 개척한 그는 이에 앞서 정권이 바뀌자마자 부산총국으로, 다시 1주일 뒤 울산국으로 유배를 당했다. 이런저런 사유로 징계와 지방 유배를 떠난 직원이 김용진 기자만이 아니다.

 

올해 초, 한국방송의 젊은 기자·피디들이 주축이 된 한국방송 새노조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망가져버린 방송의 현주소가 확연하게 보인다.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방송의 공정성이 악화되었다’는 답이 무려 94%에 이르고, ‘제작 자율성이 침해당했다’는 응답이 61%나 되었다.

제작 자율성 침해 유형으로는 ‘특정 아이템 취재·제작 강요’가 37.2%, ‘특정 아이템 배제 강요’가 33.1%, ‘특정 인물의 인터뷰·출연 강요’가 17.8%였다.

더욱 끔찍한 것은 언론인 영혼의 죽음을 뜻하는 ‘자기검열’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79.6%나 되었다는 점이다.

 

최일선에서 취재하고 프로그램 만드는 젊은 기자·피디들의 가슴 아픈 자기고백이다.

<피디수첩>의 경우에서 보듯, 특정 아이템에 대한 강요와 지시는 매우 구체적이다. 군부독재 시절 ‘땡전 뉴스’ 만들 때 일상적으로 있었던 일인데, 그 암흑시대의 망령들이 다시 살아나 방송가를 뒤덮고 있다.

 


이렇게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이 망가지기 경쟁을 하는 동안, 조·중·동 종합편성 채널은 온갖 특혜 속에서 프로그램, 광고시장, 방송인력시장을 황폐화시키는 과정에 이미 들어섰다.

 

민주주의의 토양인 언론은 이렇게 초토화되어 가고 있다.

 

 

< 정연주 언론인 >

 

 

 

 

 

                망가지는 방송들 ⑴
 

 

 

 

» 정연주 언론인
미국뉴스채널인 <시엔엔>(CNN)에 ‘크로스파이어’(Crossfire)라는 시사 대담 프로가 있었다.

황금시간대인 저녁 7시부터 매일 30분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크로스파이어’라는 이름 그대로 상대방에게 말로 ‘일제사격’을 가하는, 뜨겁고 치열한 논쟁이 주를 이뤘다.

 

프로그램 포맷은 ‘크로스파이어’ 하기 딱 좋은 그런 구성이었다. 진보와 보수의 대표 논객이 공동으로 사회를 보면서, 초대받은 인물을 놓고 좌우에서 질문을 쏘아대고, 서로간에도 한치의 양보 없이 말의 전쟁을 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진보와 보수의 논리와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시청자들은 이를 보며 자기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1982년부터 23년간 매일 저녁 전세계에 방영되었다.

 

 

그러니까 30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이런 포맷의 시사 대담 프로가 21세기 한국의 <문화방송>에서는 불가능하다.

최근 발동된 ‘긴급조치’ 때문이다.

‘개헌’ 소리만 해도 감옥에 집어넣던 유신 때의 긴급조치를 빼다 박은 이 심의규정에 따르면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유리 또는 불리하게 하는 발언이나 행위”를 하는 인물은 고정 출연자로 나올 수 없다.

 

놀랍다.

‘사회적 쟁점’에 대해 ‘자기 생각’이 없는 ‘무뇌아’들만 출연시켜 시사 토론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고, 이런 것을 규정이라고 만들어 시행하는 배짱도 놀랍고, 아무 문제 없이 잘 시행되리라 믿는 무모함은 더욱 놀랍다.

천치바보이거나, 국민을 졸로 보는 오만과 독선 외에 달리 설명이 안 된다.

 

더구나 이 ‘긴급조치’가 건강한 시민으로 자기 견해를 밝혀온 탤런트 김여진씨의 출연을 막기 위해 급조된 ‘김여진법’의 성격이라니, 이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의 뇌를 들여다보고 싶다.

 

 

옆집 <한국방송>도 매우 시끄럽다. 서로 망가지기 경쟁이라도 하는가 싶을 정도다.

그런데 한국방송에서 벌어지는 ‘도청 의혹’과, (어떤 경로로든) 입수된 녹취록을 한나라당 의원에게 건넨 ‘공작정치’ 사건은 방송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매우 엄중한 사건이다.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도청 의혹’과 관련하여 한국방송은 처음에는 ‘귀대기’ ‘벽치기’ 등 정상적인 취재행위라고 했다가, 시비가 계속되자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이른바 도청행위를 한 적은 없다”고 말을 바꾸더니(이 말은 ‘다른 형태의 도청’을 했다고 자인한 말이다), 그다음에는 ‘제3자의 도움’을 받았다고 다시 말을 엎었다.

이즈음 경찰 수사 대상이던 장아무개 기자의 노트북과 휴대전화가 참으로 우연하게도 사건 발생 직후 모두 분실되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런 종류의 사건이 거대 권력집단에서 발생했다면 한국방송은 뭉개고 그냥 있으라고 보도했을까, 아니면 스스로 신뢰성을 파괴하는 말바꾸기와 거짓말은 그만하고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했을까.

 

진실 추구가 언론의 생명이니 답은 자명하다.

그런데 지금 스스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이를 요구하는 내부 목소리까지 진압하는 데 급급하다.

한국방송 새노조가 진실을 밝히는 작업의 일환으로 사내 여론조사를 하자, 그게 회사의 명예를 손상하는 행위라며 처벌하겠다고 겁박하고 나섰다.

오죽했으면 지금처럼 험악한 분위기에서 젊은 기자 166명이 이름을 내걸고 저항의 깃발을 들었을까.

 

여기에다 ‘공작정치’ 의혹의 한쪽 자락을 쥐고 있는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면책특권’이라는 소가 웃을 소리를 하면서 뒤로 숨었다. 국민을 졸로 보는 오만방자한 태도다.


최근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후보자 지명, 유인촌 특보 임명에서 보듯, 제 주변 충성파 인사만 챙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방식이나, 4대강 속도전 같은 정책 추진을 보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자기 중심의 독선와 오만이 여전히 가득한 것 같다.

 

윗물이 이러니 그 아래 종속된 ‘특보 출신’ 사장이나 ‘큰집 가서 조인트 까였다’는 사장이나 하는 짓이 다 그렇고 그렇다.

 

공영방송은 이렇게 망가지고 있는데, 이제 곧 족벌·수구신문들의 방송까지 출범하게 되니, 이 땅의 언론 토양은 끝없이 황폐해져가고 있다.

 

< 정연주,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