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종편의 광고 직접영업, 여론 다양성 말려죽인다

道雨 2011. 8. 25. 12:33

 

 

 

  종편의 광고 직접영업, 여론 다양성 말려죽인다 

 

‘미디어렙’ 문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강 건너 불 같은 이야기인지 모른다
그러나 99.99%가 원한 친일파 청산이 무산된 것도 이런 무관심 탓 아니었나

 

 

»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언론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파업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투표율은 75.4%이고, 찬성률은 84.9%였다고 한다.

투표율과 찬성률이 이렇게 높았던 것은 그만큼 ‘미디어렙’ 문제를 놓고 언론노동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심각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학생들 중에서 신문방송학 전공이 아닌 다음에야 ‘미디어렙’이라는 말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언컨대 열에 아홉은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말뜻을 설명해준다고 치자.

 

‘종편’(종합편성채널)이 광고영업을 직접 하는 것과 ‘미디어렙’을 통해서 하는 것이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는 얼마만큼 이해할까?

언론노조는 이 어려운 싸움을 이제 시작한 것이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신문사 입장에서는 광고 수입보다는 구독료 수입이 더 컸고, 언론통제 방식도 무식해서 말 안 듣는 신문은 그냥 폐간시켜 버렸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광고의 비중도 커졌고 언론통제 수법도 교활해졌다.

1965년의 <경향신문> 사건이나 1974년 말부터 시작된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건에서 보듯이 군사독재 정권은 광고주들을 협박하여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의 수입원을 끊어버리는 식으로 언론을 통제했다.

 

1987년 이후의 민주화는 군사독재의 앵무새가 되었던 언론이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문화방송>(MBC)과 <한국방송>(KBS) 등 방송은 일정하게 공공성을 회복했고, 방송에서 ‘땡전뉴스’ 같은 창피한 왜곡보도가 사라진 것은 교육의 민주화와 더불어 민주정권이 출범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일부 신문에게 민주화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수구신문은 약자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내팽개치고 기득권 집단의 일원으로, 가장 전투적인 대변자가 되어버렸다.

 

인터넷의 발달과 방송의 영향력 증대 등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여 종이신문의 미래가 암울해지자 수구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대변자인 수구 종이신문의 생명 연장을 위해 2009년 7월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금지하던 방송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이 참여한 4개의 종편방송이다.

 

종편이 4개나 출현한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광고시장의 규모는 그대로인데 불가사리 뺨치는 식탐을 가진 짐승 네 마리가 좁은 풀밭에 풀린 것이다.

한국방송의 광고 폐지를 전제로 한 시청료 인상은 종편 몫의 먹이를 마련해주려는 꼼수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는 지난 30년간 방송광고 독점판매 체제를 유지해왔다.

이 방식도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방송사의 보도·제작과 광고영업을 분리해 자본으로부터 방송의 공공성과 다양한 지역방송을 지켜냈다.

 

이제 신문과 종편이라는 쌍권총을 든 조·중·동·매가 기자를 앞세워 광고를 주면 홍보기사를 띄워주고 안 주면 나쁜 기사를 내보내는 식으로 파렴치한 직접 광고영업을 한다면 지역방송과 여론의 다양성은 다 말라죽고 말 것이다.

 

과거의 군사독재 정권은 비판적인 매체 하나를 대상으로 광고를 끊어 언론을 통제했다.

“방송 때문에 10년간 정권을 빼앗겼다”는 황당한 인식을 가진 수구세력은 이제 자기네 채널에 광고를 몰아주고 나머지 매체는 아예 굶어죽게 만드는 방식으로 미디어 생태계 자체를 교란하려 하고 있다.

 

‘미디어렙’이니 ‘종편의 광고 직접영업’이니 하는 말은 민주진영의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하고 어쩌면 강 건너 불 같은 이야기인지 모른다. ‘대의’로 보면 마땅히 방송의 공공성이 지켜져야 하지만, 솔직히 얘기해서 그게 깨졌다고 당장 내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거나 들어와야 할 돈이 안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기억해야 한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해방 직후 99.9999%의 사람들이 친일파 청산을 당연시했음에도 한 줌 그자들에게 뚫려버렸던 것이 아닌가.


 

 

“미디어렙법 통과 안되면 자본에 언론의 입 막힐것”
 

 

언론노조 총파업 이끄는 이강택 위원장

 


» 이강택 전국언론노조위원장
“현 정부 출범 이후 정치권력이 방송의 공공성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목격했습니다.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사) 법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자본권력까지 진실을 말하려는 언론의 입을 막고자 할 것입니다. 지역언론과 중소신문은 물론 조·중·동 종합편성채널(종편) 자신들도 광고시장 무한경쟁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국언론노조 파업 이틀째인 24일, 이강택(사진) 위원장은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종편 방송광고 직접영업으로 미디어 시장의 질서가 무너지는 현실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파업 돌입 이유를 밝혔다.

언론노조 소속 전국의 71개 신문 및 방송사 노동자들은 전날 정치권에 미디어렙 법 제정과 종편채널 특혜 저지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했다.

 

정치권은 8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렙 법 제정에 나서라는 언론계 요구를 외면했다.

미디어렙 법 소관 국회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여야 간사가 합의한 문방위 일정의 마지막 날인 24일까지도 미디어렙 법안에 대한 본격 논의를 미뤘다. 법안 처리가 8월 국회에서 사실상 물건너간 셈이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탓이었다.

 

이 위원장은 “지난 9일 언론노조와의 간담회에서 ‘미디어렙 법은 8월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원칙’이라고 약속한 사람이 바로 한나라당의 황우여 원내대표였다”며 “공당의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했던 약속을 뒤집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미디어렙 법 입법이 미뤄지더라도 종편의 직접영업 금지에 대한 여야 합의만큼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미디어렙 법을 처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면, 여야는 종편의 방송광고 직거래 금지에 대한 약속이라도 먼저 내놓아야 한다”며 “여야가 이런 노력마저 게을리한다면 정치권은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9월 정기국회까지 파업을 계속 이어간다는 태도다.

 

이 위원장은 또 언론 노동자의 파업 참여와 단합이 종편의 직접영업을 막고 미디어 공공성을 지켜낼 수 있는 길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지역언론이나 중소신문과 달리 <문화방송>(MBC)과 <한국방송>(KBS) 등 대형 사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위기감을 덜 느끼고 있다”며 “종편 직접영업에 따른 미디어 시장의 붕괴는 모든 언론의 문제 만큼, 좀더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