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미안하다, 아이들아

道雨 2011. 8. 25. 13:29

 

 

 

             미안하다, 아이들아
 

 

» 곽병찬 논설위원
이렇게까지 추태를 보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대통령과 서울시장, 정부 기관과 정당,
교사와 학부모 단체 그리고 교회와 성직자 등 평소 이 사회의 스승을 자처했던 이들이 아이들 밥 한그릇을 놓고 보인 그 추접한 거짓말, 협박, 쇼….

추태뿐이라면 다행이다. 아이들 가슴에 멍까지 들게 했다.

 

자고 나면 학교건 학원이건 가는 길마다 보이는 게 거짓말이었다. 아이들 밥 한끼 때문에 나라가 거덜난다느니, 투표하면 3조원이 절약된다느니…, 아이들은 거짓말 숲속을 헤매야 했다.

 

초등 5·6학년까지 확대할 때 서울시가 추가 지원해야 할 돈이 695억원이니 중학생까지 확대할 경우라도 얼마가 추가될지 초등생도 계산할 수 있다.

나라 살림 거덜낸 것이 그 밥 한그릇 때문인지, 아니면 부자들 세금 왕창 줄여준 탓인지도 잘 안다.

줄인 세금을 조금 되받아도, 친구들과 이물없이 함께 먹고도 남는다.

쓸데없이 강바닥 파고, 비온 뒤 다시 쌓인 모래를 퍼내는 데 드는 비용만 있어도 고교생까지 확대할 수 있다.

 

거짓말은 그래도 양반이다.

바로 자신의 밥 한그릇을 놓고 구국의 전쟁을 벌였으니, 아이들이 받은 상처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숨죽이고 있는 소득 50% 이하 아이들은 이런 논란이 그저 수치스러울 뿐이다.

잘살고 못살고에 따라 친구 사이에 세운 벽이 얼마나 높은지, 빈부에 따라 주는자와 얻어먹는자로 나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 줄, 권력욕에 눈먼 이들은 알 턱이 없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인구 1000만의 서울시 시장이란 사람은 그러고도 세가 불리하자 큰절에 무릎까지 꿇고 뜬금없이 눈물을 쥐어짰다.

애걸복걸이 아니라 실은 협박이었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운 일이었을까.

엄마 아빠도 저럴까. 세상 삶이란 게 목적을 위해선 거짓, 협박 등 물불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 걸까.

 

수십억원 재산가이면서 대학 등록금 때문에 허리가 휜다고 말할 때 예상은 했겠지만, 순전히 개인 정치에 나랏돈 182억원을 쓰고도 구국의 영웅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밥 한그릇을 놓고 벌이는 싸움을 구국의 전쟁이라며 멋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내몰던 족벌언론, 그 꼴은 어떻게 비쳤을까.

 

 

유탄은 엉뚱한 곳으로도 튀어, 공공기관까지 바보로 만들었다.

홍준표 대표 등 한나라당 사람들은 경기도와 인천의 무상급식은 되고, 서울의 무상급식은 망국의 포퓰리즘이라고 떠들어야 했다.

가는 곳마다 드는 사람마다 그 깃발이 달라졌으니 공당으로서 존재 이유도 염치도 없다.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법원이 심사중인 사안은 주민투표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이 제소한 무상급식 조례를 심사하던 대법원은 동일한 사안을 두고 오 시장이 주도한 주민투표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게다가 행정법원은 주민투표 발의를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제 얼굴에 침을 뱉은 셈이다.

논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핑계를 댔지만, 그것은 지난해 지방선거 때 이미 일단락된 것이었다.

그 논리대로라면 아무리 사소한 논란도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그렇게 경고했는데도 대형교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탈·불법을 자행했으니, 경고만 하고 실제 행위엔 속수무책이었던 선관위 또한 심판으로서 자격을 잃었다.

 

세상의 수많은 평범한 아빠들도 추레한 꼴을 감수해야 했다.

투표 전날 이런 문자를 보낸 친구가 그런 부류다.

“저는 주민투표에 참여합니다. 한 사람이 스무명에게 투표 참여를 권합시다.”

 

자의가 아닌 걸 안다. 그는 단지 대기업 고위 간부였을 뿐이다.

그날 대통령의 사돈 기업에선 간부들이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는 제보가 있었다.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그 모든 사람들 또한 아이의 아비다.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는 것만큼 양심에 반하는 짓이 없는데도, 그래야만 했던 그들의 심정은 얼마나 착잡했을까.

 

5공 때처럼 정부 부처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 하는데, 대통령이 외국으로 떠나기 전 보란듯이 투표를 한 것과 무관할 리 없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러나 때론 이처럼 온갖 추태의 온상이 된다. 사람을 잘못 뽑은 탓이다.

아이들 가슴에 멍들게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미안하다, 아이들아, 용서하렴. 다음엔 잘 뽑겠지.

 

< 곽병찬, 한겨레 논설위원 chank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