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각주구검 수주대토

道雨 2011. 8. 30. 11:25

 

 

 

                각주구검 수주대토 

 

 

옛 중국 초나라 사람이 강을 건너다 칼을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황급히 칼을 떨어뜨린 뱃전에 표시를 새긴 그는 말했다.

“여기가 내 칼을 빠뜨린 곳이다.”

배가 강가에 닿자 그는 표시가 새겨진 뱃전 아래의 물로 뛰어들었다. 배는 이미 지나왔고 칼은 아까 빠뜨린 물속에 있는데, 이런 식으로 칼을 찾으려 하다니 어리석지 않은가?

 

교과서에도 실렸던 고사성어 ‘각주구검’(刻舟求劍) 얘기다. 진시황의 생부라는 설이 있는 여불위가 편찬한 <여씨춘추>에 나온다.

흔히 어리석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나 행위를 가리키지만 원래 뜻은 좀 다르다. <여씨춘추>는 이 이야기 바로 뒤에 이런 해석을 붙여놨다.

 

“옛날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이와 같다. 때는 이미 지나갔는데 법이 그걸 따라가지 못한 상태에서 나라를 다스린다면(정치를 한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비슷한 말에 ‘수주대토’(守株待兎)가 있다. 여불위와 동시대를 산 한비 등이 쓴 <한비자>에 나온다.

춘추시대 송나라의 한 농부가 밭을 가는데 토끼 한 마리가 달려가더니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받고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것을 본 농부는 밭 갈던 쟁기를 집어던지고 그루터기만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의 경제기적이 개발독재 덕이었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그때 그 시절’이 정답이라며 정책과 제도 운용을 20세기로 되돌리려 한다면 초나라·송나라 사람만큼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하고, 참패하자 엉뚱하게도 투표 안 한 74.3%의 유권자들을 뭘 모른다고 힐난하고, 지고도 사실상 승리했다고 호언한 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듯하다.

 

‘희망버스’와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조차 종북과 공안으로 모는 20세기식 타령도 민심이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한승동 논설위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