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자료, 기사 사진

7080 전설의 영어 참고서, 마지막 페이지 덮다 (송성문씨 별세)

道雨 2011. 9. 23. 11:12

 

 

 

책 팔아 번 돈 문화재에 쏟아붓고선

       … 국보·보물 26건 국가에 내놓고 떠나

 

출처=조선일보DB

 

 

문화재 수집가로도 잘 알려진
송성문씨는 2003년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국보 4건과 보물 22건 등의 유물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기증 문화재 중 국보 271호인 초조본현양성교론(初雕本顯揚聖敎論)은 1992년 국보 지정 당시 전문가들이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대장경'이라며 흥분했던 자료다. 송씨가 기증한 대보적경(大寶積經·국보 246호) 등 다른 국보 3건과 함께 국내에 그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았던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으로, 고려 현종대(1009~1031)에 불력(佛力)으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판각한 세계 두 번째의 한역(漢譯) 대장경이었다. 이 밖에 사경(寫經)과 세종대왕 왕지(王旨), 한석봉 서첩(書帖), 조선 숙종대의 기해기사계첩, 운보 김기창 화백의 '동해일출도' 등도 큰 관심을 모았다.

송씨는 1960년대부터 문화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귀중한 고(古)인쇄 자료가 민가의 초배지로 발라지는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전국을 뒤지며 인쇄문화에 관련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모았고, 1980년대에는 한 점에 거의 집 한 채 값을 들여 사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영어책을 팔아 번 돈을 거의 다 문화재에 쏟아붓고는 버스만 타고 다닐 정도로 검소하게 생활하신다"고 했다. 박물관 기증 이유에 대해서 송씨는 훗날 "그때 암 판정을 받았고, 더 이상 책을 제대로 보살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통일이 되면 고향 정주에 박물관을 세우겠다'는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7080 전설의 영어 참고서, 마지막 페이지 덮다

 - 성문종합영어 저자 송성문씨 별세

 - 1967년 정통종합영어로 시작 1000만부 팔린 초베스트셀러

 - 수학의 정석과 함께 참고서의 양대 전설

 

22일 별세한 '성문영어'의 저자 송성문 씨는 평북 정주(定州)에서 태어났다. 정주중학을 3년 반 만에 마치고 정주고급중학에 1기로 입학해 우등 졸업했다. 이후 2년제 신의주교원대에 들어간 그는 교사로 6·25전쟁을 맞았고, 미군이 신의주에 진입하면서 미군과 인연을 맺었다.

미군 앞에서 중학 영어 교과서를 읽자, 그에게 미군은 "통역이 되겠느냐? 함께 평양으로 가자"고 했다. 잠시 통역장교로 근무하다 1·4후퇴 때 미군이 그를 평양에 두고 가자,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 송성문 전 성문출판사 대표는 수석(壽石)에도 심취했다. 송 전 대표가 지난 6월 서울 역삼동 혜전갤러리에서 가진 전시회에서‘성의(聖衣)’라고 직접 이름 붙인 수석을 어루만지고 있다.

 

 

 

 

 ↑ 송성문씨가 쓴 성문종합영어.

 

 

 

 

그는 부산에서 화물 선적 감시일을 했으며, 1952년에 다시 국군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국군에 있으면서 영어 검정고시 중등·고등과정에 동시에 합격했으며 동아대학교 야간과정도 이수했다. 대위로 제대한 그는 부산고와 마산고 등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그의 마산고 제자 중에는
안상수 한나라당 전 대표 등이 있다.

영어 교재를 출판하게 된 것은 성문각 출판사 이성우 사장이 1960년대 중반 그를 찾아온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사장은 당시 집 한 채 살 돈인 200만원을 주며 "1년 안에 제대로 된 참고서를 만들어 달라"고 그에게 요청했다. 마침 1965년 문교부가 교사 재교육을 위해 그를 뉴질랜드에 보냈을 때 영어 교육 자료를 잔뜩 가져와 성문 영어 시리즈를 낼 수 있었다.

1967년 3월 처음 '정통종합영어'(훗날 '성문종합영어')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의 영어 참고서는 이후 나온 '성문핵심영어'(1968) '성문기본영어'(1977) 등 '성문영어' 시리즈와 함께 1년에 30만부가 팔릴 정도로 대박을 쳤다. 지금까지 성문 시리즈는 100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책은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의 '수학의 정석'과 함께 고교 참고서의 '양대 전설(傳說)'로 통했다. 그는 생전에 "당시 우리나라엔 쓸 만한 교재가 없었다"며 "잘 편집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송씨는 마산고에서 서울고로 옮겼지만, 학원가의 줄기찬 요청을 받고 서울 종로의 경복학원 강사가 됐다.

그는 "학원 단과반에서 한 번에 1200명을 동시에 강의할 정도로 당시 최고 영어 강사로 통했다"고 본지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2003년 간암 판정을 받으며 '6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이란 말을 들었지만 8년 동안 투병해 왔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영미명문선'을 비롯한 영어 참고서 3권을 집필했다. 남달리 수석(壽石)을 좋아해 자신의 호인 '혜전(惠田)'를 따 자신이 모은 수석을 전시하는 '혜전 갤러리'(서울시 강남구 역삼동)를 설립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4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도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이다. 유족은 부인 오화순씨와 장남 송철 성문영어 대표, 차남 현씨, 딸 미선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