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내곡동에 살고픈가

道雨 2011. 10. 18. 14:22

 

 

                내곡동에 살고픈가
 

 

 

»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서울의 안골(내곡)은 대모산 자락을 따라 안쪽 깊숙이 들어앉았대서 생긴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수목이 워낙 울창해 호랑이가 출몰할 정도였다.

오랫동안 이곳에는 감히 인가가 들어서지 못했다. 사후일망정 태종 이방원과 그 정비 원경왕후 민씨가 안골에 버티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명당 중 명당이라는 헌릉은 태종 내외분의 유택이다.

 

헌릉을 안골로 모신 이는 세종이었다. 꼼꼼하기 짝이 없던 세종은 헌릉 비문에 부왕의 즉위 날짜가 잘못 기록된 것을 알고 바로잡았다. 원경왕후가 명나라 황제에게서 선물받은 횟수가 틀리게 기재된 것까지도 고쳤다.

 

효심이 지극한 세종은 헌릉을 정성껏 보살폈다. 그러자 당대 명풍수 최양선과 이양달은 저마다 온갖 풍수지식을 총동원하여 충성경쟁을 벌였다.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면, 대모산 아래 백성들은 아마 하루도 쉴 틈이 없었을 것이다. 세종은 백성을 위해 풍수의 말을 일부러 흘려들었다.

 

어느 해 봄, 세종은 헌릉을 몸소 찾았다. 능행길이 워낙 좁은 관계로, 왕의 행차는 부득불 길가의 보리밭을 침범하였다. 호조에서는 밭 1복에 3되의 콩을 보상해주면 족하다고 아뢰었다. 그러나 왕은 백성 편이었다. 밭 1복의 생산량은 3말쯤으로 추산되므로, 최소한 그 절반은 보상해주어야 된다는 의견이었다.

또 세종은 왕릉의 주산에서 갈라져 나온 길을 백성들이 못 다니게 하는 풍습도 혁파했다. 백성이 생업을 포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세종은 무슨 일에서든 백성들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했다.

 

최근 대통령의 젊은 아들이 내곡동에 많은 땅을 사들였다고 한다. 대통령이 퇴임한 뒤에 들어가 살 곳이라는데, 수상한 점이 결코 한둘은 아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퇴거하자 아방궁 타령을 하던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곧 현 정권의 실세임을 고려하면 어안이 벙벙하다.

 

내곡동에 들어가 여생을 편히 보내려거든 세종처럼 올바르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

 

 

 

 

    이 대통령이 직접 ‘내곡동 땅’ 해명하라

 

내곡동 땅 비리 의혹은 우리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말에 이르러 측근이나 친인척 비리 등으로 곤욕을 치른 적은 있지만 대통령 자신이 직접 의혹의 한복판에 선 적은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은 ‘대통령 가족 국고횡령 의혹 사건’이라고 이름 붙여도 지나치지 않다.

 

전대미문의 사건인 만큼 해법도 통상적 수준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된다.

청와대 비서실이 나선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경호처장이나 총무기획관이 물러난다고 끝날 일도 아니다. 이번 사건의 책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으며, 수습해야 할 사람도 이 대통령이다.

본인은 물론 부인 김윤옥씨, 아들 이시형씨마저 연루돼 있으니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고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한마디 대국민 사과도 없이 그냥 ‘없었던 일’로 하자고 우긴다. 오히려 ‘내곡동 사저 백지화’가 대단한 결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화자찬하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일수록 더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으나 정작 본인과 가족의 비리 의혹에는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지금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것은 이 대통령 본인의 육성 해명이다.

“대통령은 모르는 일” “실무진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거짓 변명이 아닌 이 대통령의 진솔한 자기고백과 참회를 원한다.

 

퇴임 후 자신이 돌아갈 집이 어딘지도 몰랐다는 말에 속아 넘어갈 만큼 우리 국민은 어리숙하지 않다.

아들이 논현동 집을 은행에 담보로 잡혀 대출을 받은 사실을 몰랐다는 말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많은 국민은 오히려 이번 사건을 ‘부동산 박사’인 이 대통령 본인의 작품이라고 믿고 있는 형편이다. 이 대통령 부부가 내곡동 사저 땅 매입 뒤 직접 현장을 둘러봤다는 보도마저 나온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신에게 불리한 사안이 나오면 비상식적 해명만 늘어놓으며 뭉개기로 버텨왔다.

비비케이 사건을 비롯해 사례를 꼽자면 한이 없다.

 

하지만 내곡동 땅 사건도 그렇게 어물쩍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나마 현직 대통령으로 있을 때 잘못을 솔직히 털어놓고 국민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큰 화를 면하는 길임을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