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박원순은 ‘노무현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道雨 2011. 10. 25. 14:32

 

 

 

 

박원순은 ‘노무현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강용석 의원의 주장에 반하는 참여연대 등의 일관된 재벌·공기업 비판

  …정치인 박원순은 재벌에 발목잡힌 대통령 노무현을 극복할까

 

»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1994년 참여연대 설립에도 주도적 구실을 했다. 박 후보가 2004년 9월 참여연대 10돌 기념 후원의 밤 행사에 참석해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한 장하성 고려대 교수와 환담하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가 비상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설립한 아름다운재단이 받은 재벌 후원금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벌어지자 이들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기 때문이다. 성희롱 발언 문제로 한나라당에서 쫓겨난(출당) 무소속 강용석 의원은 9월 말부터 참여연대와 CGCG가 대기업들을 감시하고, 아름다운재단은 이들로부터 기부금을 챙겨왔다는 주장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두 기관은 지난 10월1일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반박 성명을 냈지만 국민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오히려 칭찬받을 일관된 비판

 

박 후보나 아름다운재단에 대한 문제제기는 선거 과정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검증을 거칠 것이다. 하지만 참여연대와 CGCG에 대한 의혹 규명도 이들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 민주화 운동에서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다. 두 기관은 이후 설립된 경제개혁연대와 함께 재벌 개혁 운동의 트로이카 역할을 해왔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강 의원은 참여연대가 생보사 상장 관련 상장차익 배분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제기한 이후인 2003년부터 8년간 아름다운재단이 교보생명으로부터 47억여원의 기부금을 받았고, 참여연대가 한화의 부당내부거래, 편법증여, 배임, 분식회계, 대한생명(이하 대생) 인수 의혹을 제기한 이후인 2004년부터 3년간 한화로부터도 10억여원을 받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참여연대가 처음 생보사 상장 문제를 비판한 것은 1999년부터다. 그리고 한화의 대생 인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2002년부터다. 교보와 한화의 기부 시점이 각각 2003년과 2004년이니, 시간상으로만 보면 강 의원 같은 추론도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교보나 한화의 기부 이후에도 계속 생보사 상장이나 한화의 대생 인수 문제점을 제기했다. 특히 2006년 참여연대에서 경제개혁연대가 분리 독립한 뒤에는 한화의 대생 인수 문제, 총수 아들 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두 기관이 공동으로 집요하게 추궁했다. 재벌이 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뒤에도 더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참여연대가 비판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받을 일을 한 셈이다. 해당 재벌의 한 임원은 “선의로 한 일이 마치 딴 속셈이 있어 한 것처럼 매도당해 황당하다”며 “박 후보를 흠집내려는 정치적 의도는 이해하지만, 애꿎은 기업들의 이미지만 훼손된 것은 누가 책임지느냐”고 억울해했다.

강 의원은 또 론스타가 2004년부터 5년간 재단에 7억6천여만원을 기부했다며, 박 후보가 활동하던 ‘희망포럼’이 2006년 초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 의혹을 제기한 것과 연관지어 의혹을 제기했다. 희망포럼에서 론스타를 비판하고, 재단은 론스타로부터 거액의 기부를 받았다는 추론이다. 강 의원이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참여연대도 2006년 초부터 론스타 의혹을 함께 제기했다. 하지만 이 건 역시 오히려 참여연대나 포럼을 칭찬할 일로 보인다. 론스타가 재단에 2003년부터 거액을 기부했음에도 두 단체는 2006년부터 론스타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 비판은 5년이 지난 지금 이 시간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강 의원은 이어 CGCG가 2001년 우선감시대상으로 지정한 50개 기업 중 11개 기업이 2001년부터 10년간 아름다운재단에 148억여원을 기부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CGCG 관계자는 “지배구조와 주총의안 보고서 작성 대상 기업을 선정하며 우선감시대상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며 “참여연대 부설연구소 성격이라는 강 의원의 주장과 달리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강 의원은 10월6일에도 한전이 재단에 2003년부터 6년간 11억원을 기부한 뒤 참여연대의 문제제기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소액주주운동이나 기업 감시 차원에서 한전을 다룬 적이 없어 봐주고 말고 따질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2008년부터 공기업의 사회책임 공론화 과정에서 다른 공기업들과 함께 한전을 다루었다고 반박한다. 참여연대의 이승희 협동사무처장은 “아름다운재단에서 어떤 기업으로부터 얼마의 기부를 받는지는 참여연대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며 “강 의원의 억지 주장이 제기된 이후 재단의 사업보고서를 처음 보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재단 관계자도 “참여연대와 재단은 전혀 별개의 기관”이라며 “재단은 올바른 기부문화 확산을 통한 공익활동,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됐는데 왜 기부를 받느냐고 하면 재단의 존립 근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 돈에 의지하면…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의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두 단체의 관계가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참여연대와 재단 모두 박 후보가 설립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 후보가 2000년 재단 설립을 추진할 때 참여연대 안에서는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섭섭하게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후보는 재단 설립 1년6개월 뒤인 2002년 초 참여연대 사무처장직을 사임하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후 참여연대 상집위원장과 정책자문위원을 맡았으나, 회의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고, 지금은 모두 그만둔 상태다. 재단의 참여연대에 대한 지원 규모도 미미하다. 재단이 그동안 지출한 시민사회단체 활동 지원금 중에서 참여연대가 받은 금액의 비중은 불과 0.95%다.

박원순 후보 캠프는 강 의원의 의혹 제기에 대해 “(성희롱 사건으로 한나라당에서 출당된 이후) 개인의 입지를 살리기 위한 것으로,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한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과 가장 유착돼 있는 한나라당, 보수단체, 보수언론들이 박 후보에 대해 재벌 유착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강 의원의 문제제기는 그 의도와 상관없이 박 후보와 재벌 대기업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벌 개혁에 성공한 첫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재벌 개혁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집권 초기 경제위기 관리를 위해 관료들에게 의존한 것과 함께 최대 재벌인 삼성과의 관계를 그 원인으로 주목하는 이가 많다. 삼성은 의원 시절부터 오랫동안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를 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재벌의 돈에 의존하면 결국 재벌에 발목을 잡히게 된다.

서울시장의 역할은 대통령과 다르다. 하지만 박 후보가 시장에 당선되면 임기 뒤 유력한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박 후보가 설립한 참여연대가 경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며 큰 성과를 거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박 후보는 1998년 3월 삼성전자 주총에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한 장하성 고려대 교수와 함께 참석해 13시간30분이라는 기록적인 마라톤 주주총회를 통해 재벌경영 감시에 일대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기도 했다. 박 후보 캠프의 송호창 대변인은 “오랫동안 대기업의 투명경영을 위한 기업 감시 운동을 벌여왔고 이를 통해 기업 경영의 건전성을 높여 경제 민주화에 기여한 분”이라고 강조했다.

 

 

 

재벌 후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박 후보는 2000년 아름다운재단 설립 이후에는 재벌 개혁, 경제 민주화 운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대신 대기업에서 후원금을 받아 공익사업을 벌이는 데 주력했다. 결국 ‘재벌에 신세졌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은 재벌의 돈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회다. 재벌의 돈은 결국 대가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박 후보가 설립한 희망제작소가 2006년 삼성으로부터 거액의 후원을 받았을 때도 진보 진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진보개혁 진영의 한 인사는 “박 후보가 대부분의 재정을 기업 후원금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도 우려가 제기됐다”며 “일부 인사가 재단 이사직을 사임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초 포스코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 정권 외압 의혹이 불거졌을 때 박 후보는 적극적인 문제제기 없이 사외이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끝냈다. 사회사업가 박원순으로서는 이런 것들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 박원순은 다르다.

이명박 정부의 친대기업 정책으로 인한 양극화 심화로 재벌의 사회책임이 강조되고 재벌 개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재벌들은 정치권이 지금은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지만 선거만 끝나면 다시 잘해보자고 손을 내밀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재벌에 유착하거나 약점을 보인 정치인이라면 개혁은 물 건너간다. 박 후보는 재벌 개혁과 한국 경제 개혁에 대한 자신의 구체적인 구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