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관련

괴담으로 연명하는 정권

道雨 2011. 11. 14. 14:00

 

 

 

  언제까지 ‘FTA 괴담’ 타령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싸고 정부와 보수언론의 ‘괴담 공세’가 가열되고 있다.

 

검찰의 ‘에프티에이 괴담’ 수사 엄포에 이어, 지난 주말에는 김황식 국무총리까지 가세했다.

김 총리는 “인터넷과 트위터 등을 통해 괴담 수준의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다”며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에프티에이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괴담’으로 몰아붙이는 정부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한-미 에프티에이는 국민적 동의를 받기 어렵다.

 

정부·여당은 우선 그들이 표현한 대로 이른바 ‘괴담’이 왜 퍼지고 있는지 그 근본 원인을 살펴야 한다.

어떤 사회건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이 막히거나 왜곡되면 이른바 ‘유언비어’가 난무한다. 특히 정치권력과 특정 세력이 국민적 이해에 기반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이익 관철을 위한 정책을 밀어붙일 때 국민들은 나름의 여론 마당을 만들어 저항한다.

정부는 이를 괴담으로 몰아붙일 게 아니라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부터 성찰해야 한다.

 

 

물론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과장된 소문도 있는 게 사실이다. ‘에프티에이가 되면 수돗물값이 올라 빗물을 받아 쓰는 일이 생긴다’는 것 등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괴담으로 지목한 내용 중에는 에프티에이가 체결되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게 훨씬 많다.

그럼에도 황당한 소문 한두 개를 내세워 수많은 정당한 비판까지 괴담으로 몰아붙이는 건 꼬리를 잡고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괴담으로 지목받고 있는 의료서비스 분야에 관한 내용이 대표적이다.

정부와 보수언론 등은 ‘에프티에이가 되면 맹장수술비가 900만원이 든다’는 내용을 현실성이 없는 괴담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괴담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특히 재미동포들의 현실을 보면, 이는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의 경우, 든든한 직장이 없으면 월 100만원의 보험료를 내고도 위 수면내시경 검사에 400만원, 팔 골절 수술에 2000만원의 병원비 청구서를 받는 게 전혀 낯선 게 아니라고 한다.

 

 

정부는 한-미 에프티에이에 대한 국민들의 정당한 비판을 괴담으로 몰아붙일 게 아니라 설득력 있는 해명부터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 에프티에이 강행처리에 나설 경우, 정부는 거센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한겨레  2011. 11. 14  사설]

 

 

 

             괴담으로 연명하는 정권 

 

괴담은 그림자와 같은 존재다. 중대사건에 언제나 따라붙는다. 신뢰가 없을 땐 급속히 퍼진다

 

 

» 정남기 경제부장
2008년 경제부 선임기자로 일하던 때다. 한가지 괴담이 떠돌고 있었다.

‘9월 위기설’이다.

경제가 다소 불안하기는 했다. 외국 자본 유출로 환율 오름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앞날을 내다볼 능력도 없거니와 개인적으로 괴담이나 음모론을 믿지 않는 까닭에 크게 무게를 두지는 않았다.

 

8월31일 일요일.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날 신문에 ‘9월 위기설’을 써보자는 것이었다. 위기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기사를 썼다. ‘9월’과 ‘위기’란 단어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금융시장이 열리자마자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했다. 이른바 금융위기의 시작이었다.

‘내 기사 때문인가’라고 착각할 정도로 기사와 상황은 잘 맞아떨어졌다. 하루 앞서 정확한 예측 기사를 썼으니 이보다 더한 특종이 있겠는가.

 

사실은 경제가 불안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다만 전망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투자자들은 9월이 되자 혹시나 해서 자금을 뺐고, 위기를 경고하는 기사가 운 좋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 자신이 괴담의 진원지였던 셈이다.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해 실제 위기를 야기하는 데 일조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위기설이 없었다고 금융위기가 오지 않았을까?

그건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금융위기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괴담이 위기를 부른 게 아니라 위기의 전조로 괴담이 돌았다고 보는 게 맞다. 그것이 정확한가 여부는 둘째 문제다. 괴담은 사회가 불안하고 정부가 신뢰받지 못할 때 나타나는 하나의 사회현상일 뿐이다.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계기도 사실은 괴담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심각한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었다. 그 와중에 한가지 소문이 돌았다. 70년 이상 존재해온 상인 비밀조직이 정부와 결탁해 고의로 기근을 유도하고 막대한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조직이 프랑스 전역에 침투했고, 공무원들을 모두 매수했다는 얘기가 더해졌다. 루이 15세가 1000만파운드를 챙겼다는 소문과 함께. 시민들은 격분해 바스티유 감옥을 부수고 왕정을 무너뜨렸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괴담을 믿고 낫과 창을 들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빵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무 죄 없는 빵가게 주인이 몇 조각 빵을 숨겨놨다는 이유로 군중에 의해 처참하게 목이 잘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혁명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괴담이 아니었다 해도 역사적인 상황이 혁명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담은 사회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다.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면 언제나 괴담이나 음모론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할 때 급속도로 퍼져간다는 점이다. 사건의 원인이 분명히 밝혀지고 문제가 해결되면 저절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괴담이 사회를 혼란시키는 게 아니라 혼란스러운 사회가 괴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란을 괴담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괴담을 단속하겠다고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와 싸우겠다는 말과 같다.

 

그보다는 정부가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지, 협정 체결 과정에서 얼마나 소통하고 여론을 반영했는지 돌아보는 게 순서일 듯하다. 사실 국회조차 제대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협정을 타결하지 않았던가.


정부는 촛불시위 때 광우병 괴담, 금융위기 때 미네르바 괴담을 탓했다. 언제까지 괴담으로 연명할 것인가. 괴담을 부풀려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는 장본인은 정작 정부가 아닌지 묻고 싶다.

 

[ 정남기, 경제부장, jnamki@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