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관련

경제주권 포기 협정인가?

道雨 2011. 11. 11. 14:49

 

 

 

         경제주권 포기 협정인가?

 경제성장 효과는 없이 독소조항이 성장 발목 잡을 한-미 FTA

  …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 상대로 소송하는 문 열어주는 ISD 등으로 경제주권 위협당해

 

지금까지 진행 중인 ISD 소송의 3분의 1에 미국이 관여하고 있어서 이는 미국 중심의 제도임을 알 수 있다. 형식상은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투자자도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실제 그게 가능하겠는가.

국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당은 여차하면 밀어붙인 태세고 수적으로 불리한 야당은 몸으로라도 막을 기세다.

정부·여당이 말하듯 한-미 FTA는 과연 우리의 국운을 열어줄 축복인가?

한-미 FTA를 맺으면 중국·일본을 제치고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날까?

아니다. 장밋빛 환상일 뿐이다.

 

 

 

미국엔 비관세 장벽이 버티고 있어

 

일반적으로 말하면 FTA는 득이 실보다 큰 경우가 있지만 한-미 FTA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득보다 실이 크다.

정부는 한-미 FTA가 우리의 경제성장률을 크게 올릴 것이라고 선전해왔지만 고무줄처럼 부풀린 계산이라는 게 밝혀졌다. 실제 경제성장에 끼칠 긍정적 효과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산업별로 살펴보더라도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는 찾기 어려운 반면 우리가 피해를 볼 분야는 분명하다.

농업·축산업·제약업에서 입을 피해는 막대하고도 명백한데, 우리가 이득을 볼 산업은 분명치 않다.

한국의 수출 효자 상품인 조선·철강·반도체는 미국에서 이미 무관세를 적용받으므로 한-미 FTA를 해봤자 이득이 전혀 없다.

 

잠재적 수출 효과가 가장 큰 분야가 두 개 있긴 한데 섬유와 자동차다. 그러나 이것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섬유는 평균 관세가 10%나 돼 얼핏 보기에 한-미 FTA로 인한 이득이 클 것 같지만 ‘원산지 규정’이란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원산지 규정’은 규정집이 두꺼운 책 한 권일 정도로 복잡하기 짝이 없어서 ‘보호주의의 온상’으로 불린다. 미국은 원산지 규정을 이용해 교묘히 그물을 빠져나갈 것이다.

 

자동차는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2.5% 정도이므로 그나마 수출 증가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였으나, 미국이 지난해 말 재협상을 통해 관세 인하 조처를 5년 유예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득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미국 수출이 30만 대, 현지 생산이 30만 대인데 5년 뒤에는 현지 생산이 수출보다 훨씬 많을 것이니 그때 가서 관세를 인하한들 무슨 큰 이득이 있겠는가.

 

또한 중요한 점은 대미 수출에서는 관세보다는 비관세 장벽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자동차·철강 등은 관세 이외에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다양한 보호 조처로 무장해 있다.

관세를 없애는 한-미 FTA가 수출의 특효약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이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한-미 FTA의 문제점은 수출 효과가 작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몇 가지 독소조항이 우리나라의 정책주권을 위협하고 있다. 네거티브 리스트, 역진 방지 장치, 미래 최혜국,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등이 그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ISD 회피한 이유

 

시장 개방의 방식에는 ‘포지티브 리스트’와 ‘네거티브 리스트’가 있다.

네거티브는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열거해놓고 나머지는 다 개방하는 방식이다. 개방할 분야를 열거하는 포지티브 방식에 비해 개방 폭이 훨씬 넓고, 미래에 새로 생길 서비스 분야는 개방을 피할 수 없다.

새로 생길 서비스 분야는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유리한 분야일 것이므로, 이는 미국 기업에는 축복이요 한국에는 위험한 개방 방식이다.

 

역진 방지 장치는 영어로 ‘톱니’(ratchet)다. 톱니는 기계가 앞으로만 가고 뒤로는 못 가도록 막는 기능을 한다. 무역에서 톱니 조항은 한번 개방한 것은 영원히 개방이며, 앞으로 개방 확대는 가능하지만 뒤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미래 최혜국’이란 장차 다른 나라와 FTA를 체결하면 거기서 개방될 내용이 전부 자동으로 한-미 FTA에 포함되는 것을 말한다. 즉, 한-미 FTA는 계속 강화될 수밖에 없도록 설계돼 있다. 이 조항은 한-미 FTA에서 처음 들어왔다.

 

이 세 가지만 해도 심각한 독소조항이요 우리의 정책주권을 침해하고 있는데, 셋을 합한 것보다 더 무서운 게 ISD다.

이 조항은 원래 각국 간 투자협정에 들어 있는 것인데, FTA에 이를 끌고 들어온 건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시초다.

 

물론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맺은 수많은 투자협정에 ISD가 들어 있지만 지금까지 소송이 제기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 제도는 다른 나라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예외다. 지금까지 진행 중인 ISD 소송의 3분의 1에 미국이 관여하고 있어서 이는 미국 중심의 제도임을 알 수 있다.

 

형식상은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투자자도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실제 그게 가능하겠는가.

중립적인 제3의 분쟁해결전문 국제기구가 소송을 다룬다고 해도, 나라 간 힘의 불균형이 공정한 판결을 가로막을 것이다.

 

ISD는 우리나라 헌법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초헌법적 조처라는 점,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헌법 내용에서 ISD의 공격 목표가 될 공익적 규제가 한국 쪽이 미국보다 많다는 점에서 명백히 한국에 불리하고 균형을 잃은 독소조항이다.

 

ISD의 위험성을 직시하고 회피 노력을 한 나라가 오스트레일리아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04년 미국과 FTA를 맺을 때 가장 문제 삼은 것이 ISD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상원 자문위 보고서는 ISD에 대해 “지방정부, 주정부, 중앙정부 등 모든 차원에서 정부의 규제에 도전할 수 있을 만한 부당한 권력을 미국 기업들에 넘겨줄 것을 우려한다”고 썼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나라 전체가 일치단결해서 ISD를 제외시킬 것을 미국에 요구해 결국 최종 협정에서 관철시켰다.

한국은 ISD의 위험을 회피하려는 노력을 한 적이 있는가?

하다 못해 지난해 말 미국의 요구로 자동차 재협상을 할 때 왜 ISD 제외를 주장하지 못했나?

 

 

 

결국은 미국식 시장만능주의

 

ISD는 우리의 정책주권을 침해할 심각한 문제다.

미국은 이 조항을 지렛대로 해서 한국의 정책·제도 변경을 요구할 것이며, 우리의 경제 체질은 더욱 시장만능주의로 바뀔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는 NAFTA 체결 이후 시장만능주의로 기울었다.

 

2008년 이후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것이 미국식 시장만능주의인데, 우리가 한-미 FTA를 맺으면 미국식 정책·제도로 더욱 기울게 될 것이다.

 

미국 쪽에서 제기할 게 뻔한 각종 소송의 봇물은 우리에게 악몽이다. 물론 우리가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기면 본전이요 지면 천문학적인 현금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위축효과라는 게 있다.

소송에 휘말리고 책임 돌아오기를 꺼리는 우리나라 관료들의 움츠림 때문에 앞으로는 사회적 약자,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이 줄어들 것이고, 모든 정책·제도가 미국식 시장만능주의로 기울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강자가 판치는 정글 자본주의, 1% 대 99%의 사회가 될 것이다.

 

 

왜 우리가 나라의 운명을 한갓 무역협정에 매달아야 하는가?

전혀 그럴 이유가 없다.

 

한-미 FTA를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정부, 한나라당에 묻는다.

당신들이 말하는 국익은 도대체 어느 나라의 국익인가?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전 청와대 정책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