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거짓의 몰락… 이명박과 6인회가 보여주고 있다

道雨 2012. 1. 11. 09:57

 

 

 

        거짓의 몰락… 이명박과 6인회가 보여주고 있다

                                                                                        (서프라이즈 / 화씨911 / 2012-01-10)


거짓의 끝이 어디인지 보여주는 일들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졸지에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이라는 감투를 쓴 이준석이라는 어린 친구가 아마 자기 트위터에 이명박 대통령을 평하면서 “사실 대통령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난 자수성가형”이라고 썼다고 한다. 스물 몇 살짜리 애로서 쓸 수 있는 글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의 트윗글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그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난 사람은 아니란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명박=가난의 포장은 철저한 술수였다는 것도 함께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보기엔 그랬으므로….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다른 의미로 보면 자수성가형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아들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점은 이준석도 알아야 한다. 그 거짓, 즉 이명박 대통령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설화(?)는 대필작가가 쓴 글을 보고 드라마 작가가 각색한 것 이상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명박=가난’이라는 상황은 그의 자서전 격인 책들엔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 책들에는 10대 때 여학교 앞에서 뻥튀기 장사를 했다거나 이태원 시장에서 청소를 했고, 그의 어머니는 풀빵장사를 했다 등도 나온다. 또 아주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장사를 다녔으며, 대학입시 준비를 하면서 돈이 없어 청계천 헌책방에서도 책을 살 수 없어 들춰보기만 하니 책방 사장이 그냥 주기도 했다는 등의 내용도 있다. 이처럼 ‘이명박=가난’을 색칠하기 위한 문구가 수없이 등장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나처럼 나이가 좀 먹은 사람들, 즉 40년대에 태어나 같은 세대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는 층은 그 거짓을 기록한 책이나 드라마를 보며 허허롭게 웃을 수밖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1941년생이다.

따라서 1950년 한국전쟁 시기에 요즘으로 하면 초등학교 -당시는 국민학교 저학년- 당시 그 나이대나 동시대 어린이로 살았던 애들은 특별한 부자였던 한 마을에 서너 집인 부잣집 자식이 아니면 모두 도가집(양조장집) 술지게미 정도는 먹고 자랐다. 쑥밥에 송화가루 죽(소나무 열매인 솔방울에서 떨어지는 가루)은 물론이요, 심지어 봄에 소나무 껍질을 벗기면 거기서 나오는 단물(송기라고 한다)까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 자서전이란 책들을 읽으며 이 대통령 집안은 한 마을 서너 집인 부잣집은 아니라도 상당히 부유한 집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의 형들인 이상은 이상득의 이력을 보면서 그렇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이명박=가난’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 나온 픽션으로 본다.

그의 큰형, 현재 (주)다스의 회장인 이상은은 1931년생으로 알려지고 있다. 확실한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파악한 바론 그렇다. 어떻든 올해로 80은 훌쩍 넘긴 나이다. 그런데 그의 최종학력은 고졸이다. 하면 포항 인근 경북 영일군 시골에서 그 나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교육통계를 보면 1944년 중졸자가 전체대비 1.1%, 국졸자도 중퇴를 포함하여 10.9%에 지나지 않았다.

1931년생이면 1944년 14살, 이상은은 최종학력이 고졸이니 당시 10.9% 안에 있는 국졸자 통계 안에 있다. 즉 전국적으로 보면 10% 안에 드는 고학력자란 얘기다. 물론 그의 부모가 특별히 자녀의 교육열에 투철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부모가 자녀 교육열에 투철해도 가난 앞에선 장사 없다. 그의 부모가 찢어지게 가난했다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학력을 이상은은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동생에 이르면?

그 동생 이상득, 그는 1935년생이다. 최종학력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 1955년 포항 동지상고를 졸업하고 육사를 갔으나 서울대로 턴했다. 군대 제대 후 대학을 졸업하고 1961년 대졸사원 공채로 코오롱에 입사했다. 교육통계를 보면 2010년 70대 고졸자 통계는 전국 기준 11.2%다. 1961년 대학을 졸업했는데 이 통계의 70대 대졸자는 7.2%,

영일군이 포항시가 된 것은 1980년대이지만 지금도 이들의 고향 흥해는 포항권이기는 하나 시골이다. 물론 1940~50년대는 깡촌이었음을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런 깡촌 출신 이명박 대통령 형제 중 큰형은 10%대 안에 드는 고학력 군에 소속되고 둘째 형은 7% 안에 드는 고학력 군이다. 이런 가정이라면 어떤 의미로 해석해도 당시 기준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은 아니란 것이 증명된다. 그래서 이명박=가난은 거짓이라고 나는 본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 자서전에 나오는 뻥튀기는 정말 황당하다.

1958년도라고 하는데 당시는 요새 먹는 뻥튀기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밥 지어 먹을 쌀도 없는데 쌀로 뻥튀기를 해서 장사를 해?) 물론 옥수수나 누룽지 등을 튀기는 튀밥기계를 끌고 마을을 다니는 튀밥장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 기계가 옥수수 등을 튀길 때 나오는 뻥 소리는 거의 포탄이 터지는 수준이었다. 이 튀밥장수들은 또 구루마(소달구지)에 기계를 싣고 장작도 가득 싣고 다녀야 했다. 그리고 시장이나 마을에서 튀밥을 튀겨도 ‘뻥’ 소리 때문에 한적한 곳에서 했다. 그런데 이런 장사를 10대 소년이 여학교 정문 앞에서 했다? 소도 웃을 일이다.

풀빵장사? 1950년대 당시 밀가루는 쌀만큼 귀했다. 하여 빵집은 언제나 어린이들로 문전성시, 빵을 사먹을 수 있는 집 자제들은 부잣집 자제들이었다. 나머진 좀 얻어먹을 수 없어 노리는 구경꾼…. 그래서 빵집 아들은 당연히 친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의 자서전에 나오는 가난을 묘사한 내용들은 이 외에도 허다하지만 모두 황당하다.

대학입시 얘기, 청계천 책방 얘기는 허허롭게 웃을 수밖에 없다. 아니 바로 위 형이 육사를 갔다가 서울대 경제학과를 다시 갈 정돈데 동생은 입시 참고서가 없었다? 집이 가난해서 참고서를 사볼 돈이 없었다면 형이 보던 참고서 물려볼 수 있지…. 그땐 교과서도 형 것을 물려받았고 교복도 물려받았는데 참고서는 안 물려주나?

이명박 대통령의 10대를 나는 객관적으로만 해석할 뿐이다. 그래도 나는 그 내용들의 황당함 때문에 그 포장들이 모두 곧 거짓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지금 이 대통령 정부의 고관대작들이 겪는 여러 고초(?)들은 거짓을 참으로 치환했던 것들에 대한 열매라고 본다.

이명박, 이상득, 최시중, 이재오, 박희태, 김덕룡… 이 여섯 명을 이명박 대통령 후보 당시 언론은 6인회라고 칭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자 권력의 정점에 서서 권력이 내는 모든 향기를 만끽했다. 말 그대로 무소불위.

만사형통, 형님예산, 방통대군, 방송통신계의 황제, 이상득과 최시중을 떠올리면 이 말만 생각이 난다. 이상득 최시중은 모두 영일 출신, 최시중이 1937년생으로 이상득보다 두 살이 어리지만 둘 사이는 친구라고 한다.

정치인 이상득을 보좌했던 인물들 중 현재 좋든 좋지 않든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장다사로, 박영준, 그리고 박배수다. 이중 장다사로 청와대 정무1비서관은 이명박 청와대 순장조의 핵심이다. 물론 박영준도 그 그룹에 들지 않는 사람은 아니나 그는 차기 총선 출마를 위해 현재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있다. 하지만 그가 공직에 있는 동안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할 정도로 실세 중의 실세였다. 이런 그는 이국철 때문에 검찰에도 불려갔으나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끝내 박배수에게서 이상득의 정치 인생 종말을 보고 있다. 현재 박배수와 함께 거론되는 10억 대의 불법자금은 어떻든 이상득을 향한 칼날이 되어 그를 옥죄고 있으며, 그래선지 이상득은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참담하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한국갤럽 사장을 지내다가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했던 최시중, 이명박의 멘토라고 하기도 한다. 그는 지금 양아들로 불렸다는 정용욱 때문에 황제의 자리에서 몰락하기 일보 직전이다. 말이야 정용욱 때문이지만 정용욱이 수수했다는 거액의 불법자금들 최종 종착지는 최시중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여 그 또한 거의 불명예 퇴진 직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또한 참담하다.

공안검사 출신의 권력형 해바라기……, 박희태를 말하는데 그보다 더 적합한 문구는 없다.

검사로 출발 공안통이 되었다가 전두환의 민정당에 참여, 민정당 입으로 군부정권을 비호하는데 발군의 실력을 보였었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 군부정권은 쇠락했어도 박희태는 멀쩡했다. 김영삼이 대통령직에 오르자 법무장관에도 올랐으나 딸의 대학입시 부정입학 구설에 몰려 3일 만에 추락했다. 그래도 그는 강고했다.

이회창의 측근으로 당직을 섭렵했고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는 후보캠프 최고 책임자로 봉직했다. 그리고 끝내 국가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되었으니 그의 정치인생에 여한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국회의장으로 검찰에 소환되는 최초의 인물이 되든지 국회의장직에서 불명예 퇴진하든지 기로에 서 있다. 거짓의 말년이다.

이재오, 김덕룡… 그들이 다음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을 수 있을까?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대통령 다음가는 권력자로 힘을 발휘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그는 지금 초라한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덕룡은? 민화협 상임대표라는 자리에 있으나 그 또한 지난 정치인생에 회한을 곱씹어야 하는 지경이다.

이명박… 부인과 아들은 퇴임 후 살려 했던 사저 부지 때문에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으로 고소된 상태다. 그리고 최근 그의 아들 명의로 구입한 땅값을 경호처가 6억을 대신 납부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따라서 아들 이시형은 어쩌면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에다 불법적으로 예산을 전용한 국세 횡령죄까지 얹혀져서 기소될 수도 있다.

대통령 본인은? 그의 앞날을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형인 이상득, 멘토인 최시중, 대통령 후보캠프 수장이었던 박희태, 이들 셋은 언제 검찰의 칼날이 엄습할지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다. 복심 이재오는 공천도 달랑거리고 친구 김덕룡은 이미 한물간 거사다. 거짓의 몰락, 더 확실히는 거짓으로 거머쥔 권력의 몰락은 이처럼 비참하다.

거짓의 종말…, 지금 포스트 이명박을 노리며 권력의 정점을 향해 달리는 사람이나 그 곁에서 호시탐탐 권력의 ‘궁물’을 노리는 사람들이 곱씹어야 할 화두다.

 

화씨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