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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은 대체로 온건하고, 밖으로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골방이나 술집을 좋아한다.
그들은 각자의 예술에 충실한 것을 제1의 목표로 두고 있기에 웬만한 일에는 몸을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저, 생각을 골똘히 움직이고 그 결과물을 바지런히 옮겨 적을 뿐이다. 그런 시인의 팔과 다리가 급하게 움직인다면 그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뜻이다.둔감하지만 동시에 확실한 리트머스용지가 선명하게 물들고 있다. 시인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진작부터 몸과 마음 모두 바쁜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정열적인 활동가이면서 다정한 아버지이고, 남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시인이었다.
송경동 시인은 2011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무려 ‘수상시인’이 되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구속 수감되어 ‘옥중시인’이 되었다. 작가회의 회원들은 우스갯소리로 얼마 만에 나온 감옥행 시인이냐, 했지만 한겨울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고립된 곳으로 떠나는 그를 보기가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편하지 않았는지 석방촉구 낭독회도 하고 성명서도 발표하고, 모금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송경동을 잡아가둔 이유는 확실치는 않은데(그런 이유 따위는 이미 귀에 거는 코걸이가 된 지 오래다), 세간에는 희망버스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는 양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희망버스는 누군가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불법이라면 참가자 모두가 잡혀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두 발로 버스를 탈 수가 있고, 그 버스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으며, 우리가 도착한 그곳에서 우리는 희망을 보았다. 소금 같은 사람들이 지상에서 고개를 들고 크레인 위에서 꽃이 되고 있는 김진숙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도 흔들었다. 그것이 소금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1%의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도대체 왜 육신의 안일과 통장잔고의 비축과는 관련도 없는 일에 저 많은 사람들이 나서는가. 한꺼번에 버스를 타고서.
지금 갇혀 있지 않다면 시인은 아마도 바로 지금 쌍용자동차로 희망버스를 타고 가자, 했을 것이다. 그것이 무서워 시인을 가두다니, 지금 이 정권이 얼마나 코너에 몰려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거의 끝나가는 것이다. 시민들의 양심이 얹힌 펀치가 정권을 그로기 상태에 몰고 있다. 각종 부패와 비리에 우리는 신물이 나고, 비정규직과 농민을 사지로 모는 정책에 신경이 곤두선다.
힘없고 눈물이 많고 양심적인 시인을 가둔다고 코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희망버스는 계속해서 달릴 것이다. 쌍용차로, 콜트콜텍으로, 재능교육으로. 누군가를 구속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송경동 시인은 1%를 위한 사회에 가장 큰 목소리로 반기를 든 시인이다. 우리가 들었던 버스의 승차권은 양심적 상상력이었다. 희망버스는 공동체의 양심이다. 양심을 어떻게 잡아가두겠는가.
큰소리로 촉구한다. 당장 송경동 시인을 바깥으로 내놓아라.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는다고 누군가 말했다는데, 문학은 절대 그렇지가 않다. 지금 시인을 잡아가둔 정권과 신자유주의를, 재벌의 탐욕을 시인과 문학은 끝내 기억할 것이다.
송경동은 시인이고, 시인을 잡아가두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서효인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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