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 느릅나무 / 2012-01-12) ‘검찰 상고 기각’.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배임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다. 정말 징그러운 세월이 흘러갔다. 1심에서 3심까지 3년의 세월 동안 그의 가슴은 그야말로 지옥이 아니었을까. 그의 나이가 66세다. 모진 세월은 그의 모습조차 바꾸어 놓았다. 마치 티없는 소년의 얼굴처럼 통통한 동안이었던 그의 얼굴은 이제 나이와 고단한 삶의 역정을 숨길 수 없는 노인으로 변모했다. 사악한 권력의 폭압이 아무리 강고해도 꺾이지 않을 것 같았던 그는 “이제 정말 쉬고 싶다”고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질풍노도처럼 세월을 가로지른 그를, 세상은 여전히 호출하고 있다. 그 호출에 나선 그는 이 어이없는 권력의 야만을 증언하고 또 이 야만의 정권을 민주 평화 정권으로 바꿔야 한다며 기꺼이 주인공이 아닌 ‘피에로’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세상은 그런 그의 고단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냥 홀가분하다”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울컥 눈물이 번졌다. 왜 역사는 야만의 사슬을 하나씩 풀어갈 때마다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명박 정권이라는 시대가 낳은 ‘욕망의 괴물’과 그 괴물의 욕망에 장단을 맞춰 춤을 춘 검찰이 가하는 불의한 채찍을 그는 온몸으로 감당하며 당대의 역사를 증언했다. 마치 사마천이 궁형이라는 치욕을 당하고 ‘사기’를 저술했듯이, 그는 욕망 때문에 권력의 개가 된 ‘올드 언론’이 그를 향해 사납게 짖어대는 그 세월 동안 역사를 기록했다. 나는 상상해 본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이 땅의 미래를 위해 기억하기도 싫은 자신의 일을 기록해야 했던 그 심사를. 그가 겪은 ‘사건’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집단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다. 바른 것을 굽은 것이라고 우겨대는 사악한 권력 집단이 선사한 이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것으로 그의 가슴에 그리고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진 이 화인을 치유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랬을까, 그는 ‘참여하시라’고, 그러니까 젊은 세대들에게 ‘투표하시라’고 그렇게 절규했을 것이다. 20대가 10%만 더 투표장에 나오면 세상이 바뀐다고. 바른 것을 바른 것으로 인식하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가질 수 있다고. 66세의 노인이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는 66세의 노인이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말한다면, 미래는 그의 세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미래의 세상을 살아갈 세대에게 역사적 선물을 안겨주었다. 아무리 대단한 권력도 진실을 가릴 수 없다고. 그래서 권력에 쫄지 말고 당당하라고. 그 권력이 굽은 잣대로 세상을 농단하는 사악한 권력일 때는 더욱더 쫄지 말고 싸우라고.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그러니까 올드 언론에 길들어진 사람들이 아닌)들이 그에게 빚을 졌다. 그를 매단 십자가가 사실은 정의의 십자가가 아니라 권력의 탐욕이 만들어낸 거짓의 십자가였다고 오늘 대법원은 세상에 밝혔다. 그는 그 거짓의 십자가에 매달려 치열하게 싸웠다.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권력으로 국민을 모욕하는 이런 오욕의 시대가 다시는 반복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그는 역사에 커다란 방점을 찍어주었다. 그런 그를 생각하면 너무나 고맙고 또 쓰리고 아프다. 더욱이 아직도 쉬지 못하고 ‘피에로’ 역할을 해야 하는 그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계시어 행복하다”고. 느릅나무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의 대법원 판결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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