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정봉주법 처리 못해? 그럼 ‘헌누리당’일 수밖에

道雨 2012. 2. 7. 13:22

 

 

 

 정봉주법 처리 못해? 그럼 ‘헌누리당’일 수밖에

                                                                     (블로그 ‘사람과 세상 사이’ / 오주르디 / 2012-02-06)

국민의 종을 뽑는 과정에서야말로 표현의 자유가 가장 완전하게, 또한 가장 시급하게 적용돼야 한다… 선거에서 무결점 경력을 내세우는 공직후보라면, 이를 공격하는 정적이나 언론에 ‘파울!’이라고 외쳐서는 안된다.”

(미 연방대법원 ‘모니터 페트리엇 대 로이 판결/1971. 한겨레 칼럼 인용)

 


‘낯선 후보’ 제대로 검증하려면 형사처벌 받을 각오해라?

 

위 판결문은 민주국가에서 유권자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보장되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한국은 이와 정반대다.

미국은 ‘국민의 종을 뽑는 과정’에서 만큼은 표현의 자유가 가장 완전하고 시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한국의 현행법은 선거 기간 동안 유권자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꽁꽁 묶어 놓고 있다.

 

‘공정한 선거’라는 미명아래 ‘허위사실유포죄’로 겁박하며, 유권자의 권리보다는 공직후보자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고 있는 게 바로 공직선거법 250조다.

이 법에 의하면 후보자와 후보자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의 출생, 직업, 경력, 재산, 인격, 행위 등에 관해 사실이 아닌 얘기를 유포했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도록 돼 있다. 설령 사실로 믿고 말했다 해도 처벌은 피할 수 없다.

 

선거에 나선 후보자 중 태반은 ‘낯선 얼굴’이다. 현행법대로라면 한치의 ‘허위’나 ‘실수’ 없이 사실만을 가지고 ‘낯선 얼굴’을 검증해야 한다. 이건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제대로 된 후보 검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도 ‘낯선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하려면 유권자와 언론은 ‘허위사실유포죄’로 처벌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사실을 말해도 상대가 ‘명예훼손’ 느끼면 처벌받는 나라

 

명예훼손죄도 문제다.

‘허위사실’은 물론 ‘진실과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 받게 돼 있다. 어처구니없다.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위법성 조각사유가 있기는 하나 적용은 재판부에 따라 고무줄이라 믿을 수가 없다.

 

툭하면 정부와 공직자가 국민을 상대로 명예 훼손이라며 고소장을 내는 나라, 사실을 말해도 당사자가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느낀다면 처벌 대상이 되는 나라, 이런 법을 실제 적용하고 있는 OECD 국가 중 유일한 나라, 이게 대한민국이다.

 

명예훼손과 관련된 부분도 미국과 한국은 딴판이다.

‘뉴욕타임즈 대 설리반’ 소송에 대한 미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보면 한국의 ‘명예훼손죄’ 적용이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을 ‘상국’으로 받드는 MB정권이 정작 미국에서 배워야 할 것은 외면하고 있다.

 

이런 소송(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공직자의 명예훼손 고소)이 허락된다면 향후 정부관료를 향한 비판들이 설사 그것이 정당한 비판일지라도, 공포와 두려움의 장막에 갇혀 얼어붙게 되고 이는 곧 자기검열로 이어질 것이다.”

(미연방대법원 ‘뉴욕타임즈 대 설리반 판결)

 


 

어처구니없는 법에 걸려 구속된 정봉주

 

정봉주 전 의원. 이런 어처구니없는 법에 걸려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이고, 김경준과 동업관계이기 때문에 주가조작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

 

이게 2007년 당시 정 전 의원의 주장이었다.

이 주장이 ‘허위사실유포’이고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그를 구속했다.

‘정봉주는 구속감’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진영도 정 의원과 비슷한 주장을 펴며 이명박 후보를 공격했지만, 지금까지도 멀쩡하다. 이러니 법원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겠나?

 

 

 

BBK사건은 실제 존재했던 ‘실체’이지 정 의원에 의해 조작된 ‘허구’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은 유권자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라는 테두리에서 관용돼야 마땅하다.

그의 구속은 천인공노할 MB정권의 만행이다.


 

‘나경원법’으로 맞서며 표현 자유 더 억압

 

민주당이 공직선거법과 형법 일부를 손질한 ‘정봉주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허위임을 알고도 후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을 때만 처벌이 가능하도록 처벌요건을 강화하고,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은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했다. 또 고의성 없는 허위사실에 대해 위법성 조각사유를 확대했다.

 

그러나 ‘정봉주법’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명숙 대표가 박근혜 위원장에게 직접 법안 처리 협조를 당부했지만 새누리당은 “정봉주법으로 불리는 법 개정안 통과와 관련해 (민주당과) 협의할 가능성이 없다”고 못 박았다.

 

새누리당은 되레 기존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죄’를 강화하는 법안(나경원법) 발의로 ‘정봉주법’에 맞서고 있다.

허위사실유포의 경우 무조건 징역형에 처한다는 내용이 법 개정의 골자다.

유권자의 권리와 선거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확대돼 가는 시대적 분위기에 완전히 역행하는 생뚱맞은 짓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한나라당

 

새 이름으로 당을 포장했지만 속은 그대로다. 진정 새로워지려면 쓸데없는 ‘헌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선진 민주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구습에 젖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 한다.

 

 

한나라당 비대위는 지난 2일 새 당명으로 ‘새누리당’을 확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새로움의 ‘새’와 나라의 더 큰 의미인 ‘누리’가 합쳐진 것으로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를 뜻한다.”

박근혜는 “새누리당은 국민의 염원을 대신하는 당명”이라고 말했다.

말과 실제가 너무 다르다. 립서비스인가?

 

박근혜 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

“이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름을 바꾸고 나서 얼마나 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바꾸고 나서 달라진 게 전혀 없다. ‘헌 것’을 애지중지하면서 말로만 ‘새로움’을 외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정봉주법’ 처리 못 한다? 그럼 ‘헌누리당’일 수밖에

 

다수의 국민은 공직선거법과 명예훼손과 관련된 형법 개정을 원하고, 정봉주 전 의원이 속히 출소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국민과 소통하려면 국민이 원하는 바에 충실히 따라가려는 자세가 우선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새 것’을 외면하고 시대에 역행하는 ‘헌 것’을 고집하는 게 ‘새누리당’이라면 국민들은 ‘헌누리당’쯤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헌누리당’이 되지 않으려면 먼저 ‘정봉주법’을 합의 처리해야 한다.

 

오주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