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부러진 화살’과 ‘범죄와의 전쟁’의 정치학

道雨 2012. 2. 14. 13:16

 

 

 

  ‘부러진 화살’과 ‘범죄와의 전쟁’의 정치학

                                                                                        (서프라이즈 / 흑수돌 / 2012-02-14)


박스오피스 점령한 ‘부러진 화살’과 ‘범죄와의 전쟁’

 

 

 

김명호 교수의 석궁 재판 실화를 영화로 재구성한 ‘부러진 화살’(정지영 감독)이 누적 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전두환-노태우 시절 부패와 비리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고발한 ‘범죄와의 전쟁’(윤종빈 감독)도 박스오피스 부동의 1위를 기록하며 누적 관객수 250만 명을 넘어섰다.

사법부의 부조리를 다른 영화와 검찰-세관 비리를 다룬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와 3위를 기록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리얼리티즘을 표방한 이들 영화의 그 어떤 요소가 이토록 관객들을 열광시키는 것일까?

 

대중문화에 있어서 현실과의 접목은 흥행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최근 인기리에 막을 내린 ‘뿌리 깊은 나무’는 MB정권의 소통 단절 때문에 더욱 인기를 모은 측면이 컸고, 공지영 작가의 원작을 토대로 실화를 영화로 재구성한 ‘도가니’도 장애인 인권과 아동 성희롱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상황이었기에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부러진 화살’과 ‘범죄와의 전쟁’이 흥행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법조계에 대한 국민들의 냉소주의와 불신이 극에 달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재 자체가 따분해서 영화에서 다루기 힘든 부분이 있음에도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 영화를 관람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조직 이기주의와 법률 편의주의 덫에 빠져 정작 자신들의 존재기반이자 이유인 국민들을 핍박하고 무시하는 법조계의 총체적 부실을 실감 나게 지켜보면서 분노를 표출하게 되고, 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것이 영화가 흥행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과 수구 지식인들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팩트가 사실과 다르다며 영화에 딴지를 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아니, 그렇다면 공민왕을 다룬 ‘쌍화점’과 연산군을 다룬 ‘왕의 남자’에 대해서는 왜 시비를 안거나? 역사적 팩트와 틀리잖아.

 

그러나 사실은 정작 이들만큼은 팩트에 대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이승만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승만을 미화하고, 박정희에 대해서도 오로지 찬양 일색이다. 그런 자들이 팩트가 맞네 틀리네 이야기하니 도통 헷갈린다.

이처럼 자신들의 팩트 왜곡에 대해서는 정당한 ‘로맨스’라고 우기고, 다른 사람들의 팩트 재구성에 대해서는 파렴치한 ‘불륜’이라고 하니 스스로 무덤 파는 거다.

오죽하면 ‘부러진 화살’을 다룬 TV 심야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보수 측 패널들이 희화화되고 조롱의 대상이 되었겠는가?

(영화를 다루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영화 전문가 없이 직급 순으로 법조인이 가장 상석에 앉은 것 자체가 코미디였다.^^)


 

법원과 검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권력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무엇인가를 강제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편리하고 활용 가치가 높지만, 이를 부당하게 행사했을 때에 막중한 책임을 져야만 하는 두 개의 상반된 측면을 갖고 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인사권, 사면권, 거부권을 닥치는 대로 마구잡이로 사용할 경우 의회주의, 사법부 독립, 책임정치는 실종되게 되고, 그 부메랑 효과로 대통령은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어 사면초가에 빠지게 된다.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갖고 있음에도 가급적 이를 행사하지 않고 최후의 순간까지 의회를 설득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MB정권는 권력이 갖는 칼날의 양면을 철저히 무시하며 역주행했다.

규제가 많을수록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방송분야와 통신분야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를 투입했고, 시대착오적인 인터넷과 SNS 규제를 도입했다.

그러면서도 황당하게도 신규 종합편성 채널을 무려 4개나 허가해주는 모순된 행동을 했다.

 

정보화와 과학의 시대에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모조리 없애고 그 수장에 과학과 통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앉히는 어이없는 인사까지 감행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립성이 요구되는 감사원장에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을 앉히려는 파렴치한 일까지 벌였다.

 

그 결과 법원, 검찰, 경찰, 국세청, 대학, 언론 등 사회적 소명의식과 공공정신이 투철해야 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상당수의 고위직들이 원칙과 금도가 깨지고 고삐가 풀린 ‘낙하산 인사’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대놓고 아부하고 탐욕을 드러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국세청 고위간부가 핵심 내사자료를 빼돌리고 폐기하고, 경찰 고위간부는 청와대와 핫라인을 통해 수사기밀을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재가받고, 법원 수뇌부는 사건 배당을 자신들의 원하는 결과를 위해 임의 배당하고, 검찰 고위간부는 피의자 및 참고인 소환을 앞두고 정보 유출 및 출국금지 소홀로 해외도피를 묵인하고, 언론사 국회 출입기자들은 출세를 위해 야당 수뇌부를 도청하고 이를 상부에 보고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거다.

 

이 중, 단 한 가지만 드러나도 그 사회는 썩은 것이고 도덕성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는데, 이 모든 행위들이 MB정권 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터졌으니, 이것이야말로 홉스가 말한 권력기관 간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검찰과 경찰이 싸우고, 법원과 검찰이 싸우고, 국정원과 총리실이 싸우고, 검찰과 국세청이 싸우고, 청와대와 총리실이 싸우는 일들이 모두 MB정권 하에서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모든 부처들이 권력이 가지는 추상과도 같은 책임은 회피한 채로 그 파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탐욕을 노골화하고 서로 더 많이 갖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게 된 거다. 그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 해답은 무엇일까?

권력이 갖는 추상과도 같은 책임을 이들 모두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래야만 과도한 권력에 대한 탐욕을 억제할 수 있으며, 각자가 가져야 할 필요 최소한의 권력을 갖고 이를 책임 있게 행사하는 것으로 각자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검찰 개혁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법부 개혁, 언론 개혁, 정부 개혁, 국회 개혁, 공기업 구조조정 등이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첫 단추는 권력을 향한 탐욕을 드러내며 자신들이 섬겨야 할 국민을 도리어 핍박하고 무시한 자들에게 엄정한 법의 심판을 들이대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적어도 이들 권력을 탐한 자들에게는 정치적 심판뿐 아니라 사법적 심판이 반드시 뒤따라야만 한다.

그것이 ‘부러진 화살’과 ‘범죄와의 전쟁’에 분노한 관객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흑수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