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거짓말 수석의 돈봉투 말로

道雨 2012. 2. 17. 14:22

 

 

 

     거짓말 수석의 돈봉투 말로 
 전당대회 돈봉투 관련 부인하다 고명진씨 등 폭로로 결국 사퇴한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
‘박희태 대표 만들기’ 나섰던 친이계 윗선의 윗선으로 끝없이 퍼지는 파문에 떠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도 결국 심부름꾼에 불과한 것일까. 박희태 국회의장이 뒤늦게 사퇴하자,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의혹은 온통 ‘정무수석 김효재’로 모아지고 있다. 고승덕 의원이 “2008년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당시 대표 후보 측으로부터 300만원짜리 돈봉투를 받았다 돌려줬다”고 폭로해 불거진 새누리당 돈봉투 사건의 ‘몸통’을 향한 수사도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누가 돈봉투 살포를 기획하고,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김효재 수석을 움직였는지가 핵심이다.

 

중복되고 구체적인 돈봉투 연루 증언

그동안 김 수석은 “당시 고승덕 의원과 일면식도 없었다”는 식의 변명으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박 의장의 전 비서인 고명진씨는 2월9일 한 언론사에 보낸 ‘고백의 글’을 통해 “정작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책임 있는 분’이 누구를 지칭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분이 처음에 고승덕 의원에 대해 ‘일면식도 없다’고 거짓 해명을 하면서 여기까지 일이 이어졌다”고 했다. 사실상 김효재 수석을 지칭한 것이다. 특히 고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고승덕 의원에게 돌려받은 300만원을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직접 보고한 뒤 봉투째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김효재 수석은 당시 “그것을 돌려받으면 어떡하느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고 의원이 “제 마음이 그러니 그냥 받아주십시오”라는 반응을 보이자, 김 수석은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돈봉투 기획과 살포에 김 수석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이야기다.

이재오계인 안병용 새누리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으로부터 촉발된 돈봉투 사건의 또 다른 갈래도 결국 김 수석으로 모아진다. 검찰은 “당시 안병용씨와 함께 김효재 수석 사무실에 올라가 인사를 드리고, 그의 책상 위에 있던 2천만원짜리 봉투를 받아서 나왔다”는 은평구 김아무개 구의원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당시 김 수석의 보좌관이던 ㄱ씨가 직접 돈봉투를 뿌렸다는 진술까지 나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2008년 전당대회 직전 의원회관에서 당시 김효재 의원의 ㄱ 보좌관이 들어와 300만원이 든 봉투를 전달하고 갔다”고 말했다. 그는 박희태 의장의 명함과 함께 ‘국회의원 김효재 보좌관’이라는 직함이 명시된 ㄱ씨 본인의 명함도 받았다고 한다.

김 수석은 <조선일보> 초대 노조위원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거친 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언론특보로 활동하다 18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는 청와대 정무수석에 발탁된 뒤 의원직을 내던졌다. ‘이명박 순장조’로서 정권과 명운을 함께하겠다는 결기의 표현이었다. 이 대통령의 신임도 두텁다. 이번 돈봉투 사건에 박희태 의장과 김 수석을 뛰어넘는, 권부의 핵심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돈봉투 받은 새누리당 인사 30명”


» 이국철 에스엘에스(SLS)그룹 회장에게 워크아웃 무마 청탁으로 금품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지난해 11월28일 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돈봉투 자금의 출처가 2007년 대선자금의 잔금일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당대회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보고를 받았는지도 확인돼야 할 대목이다. 2008년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대표 만들기’는 이상득·이재오 의원 등 친이 핵심의 합동 기획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정권 초 강력한 ‘친정체제 구축’이 필요했던 청와대가 박 의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정치권에서도 돈봉투 사건을 박희태 캠프 상황실장을 지낸 김효재 수석 개인의 ‘단독 범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청와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그동안 “돈봉투 사건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김 수석은 한결같이 부인하고 있다. 김 수석을 신뢰한다”며 감쌌지만, 김 수석의 치명적인 거짓말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순방 중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이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이는 청와대가 검찰을 집어삼키고 눌러서 진실을 은폐하려 한 희대의 범죄 은닉 사건으로 청와대와 새누리당, 검찰의 ‘비리 카르텔’이 확인되고 있다”며 “청와대가 먼저 모든 진실을 밝히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신경민 대변인도 “돈봉투 사건의 배경에 누가 있는지 국민은 모두 안다. 이제 권력은 거짓의 가면을 벗고 백일하에 나오기를 바란다. 물러날 사람은 알아서 물러나고 책임질 사람은 알아서 검찰로 가라”고 비난했다.

한편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난 박희태 의장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는 “비겁하다” “치욕스럽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식의 부인으로 일관하다 결

»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29일 새벽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 디도스 공격 사건’과 관련해 검찰조사를 받은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국 부하 직원의 증언에 밀려 뒤늦게 사퇴했기 때문이다. 박 의장은 자신의 사퇴 입장도 직접 밝히지 않았다. 그는 2월9일 한종태 국회 대변인이 대신 읽은 발표문에서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며 의장직을 그만두고자 합니다. 제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모두 저의 책임으로 돌려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박 의장의 사퇴로 논란이 마무리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고명진씨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가 바로 나라는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여권 내부에선 “돈봉투를 받은 새누리당 인사가 30명에 이른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고명진·안병용씨 등 관련자들이 현역 의원 20명, 원외 인사 10명의 명단을 검찰에 진술했다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당명을 바꾸고, 각종 정책에서 ‘좌클릭’을 감행하는 등 냉랭해진 민심 되돌리기에 여념이 없는 새누리당으로서는 ‘공포’에 가까운 이야기다.

 

<조선일보> 출신들의 참혹한 말로

검찰 수사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김 수석은 논란이 커지자 2월10일 오후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이 대통령도 이를 수용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검찰은 조만간 김 수석과 박희태 국회의장을 차례로 소환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청와대의 ‘여의도 정치’를 책임지는 정무수석과 국가의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차례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정치사 최악의 오점으로 기록될 일이다. 각종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디도스 사건의 최구식 의원과 함께 김 수석의 추락은 이명박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조선일보> 출신 인사들의 참혹한 말로이기도 하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