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잔혹사
지난달 23일, 대법원은 나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한국방송>(KBS) 사장 해임 조처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위법한 것이니 이를 취소하라”는 1심과 2심의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해임된 지 3년 반 만의 일이다. 이 판결로 법을 어긴 직접 당사자이자 해임행위의 최종 책임자는 이번 행정소송의 피고인 이명박 대통령임이 법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리고 해임이 위법이라 했으니, 나의 해임 이후 한국방송은 ‘불법체제’인 셈이다.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한국방송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임기가 이미 끝났으니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현실적 한계’를 많이 이야기했다.
나의 답은 간단했다.
판결 내용이, 해임은 위법이어서 취소하라는 것이니, 그냥 단순하게 말 그대로 해임을 ‘취소’하고 원상회복시키면 되는 것이다라고.
해임을 취소하지 않으면, 이명박 대통령의 ‘위법행위’와 한국방송의 ‘불법체제’는 그냥 지속된다. 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이 위법상태를 지속하고, 한 나라의 공영방송이 불법체제로 지속되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비정상적인 일이 지금 21세기 대명천지에 벌어지고 있다. 어디 나의 해임건뿐인가.
그냥 방송계만 보자. 난장판이다.
지난 4년 동안 방송사에 어떤 일이 있어왔는지, 지금 <문화방송>(MBC)과 한국방송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업과 제작거부 사태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교양과 연예오락 프로그램까지 정권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일이 다반사고,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기사와 프로그램은 아예 없애거나 축소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있어왔다고 일선 기자와 피디들이 고백하고 있다.
두 달째 접어든 문화방송의 파업에 앞서 기자들의 제작거부를 이끈 박성호 기자회장은 그동안의 문화방송 뉴스를 “군사정권 때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번 싸움은 뉴스의 기본을 하고, 정상화하기 위한 조건을 위한 싸움”이라고 했다.
기자라면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 ‘기본’을 위해 싸우기 시작한 그를 “큰 집에 불려가 조인트 까였다”는 조롱을 받아온 김재철 사장이 최근 해직시켰다.
“내곡동 사저 축소보도, 서울시장 선거 편파보도, 4대강 등 현 정부 주요 실책에 대한 비판 외면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든 공정성 침해 논란이 있었고, 그 결과 엠비시의 신뢰도는 현저히 저하됐다.”
문화방송 입사 20년 이상 사원들이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다.
제작거부와 파업의 불길이 번지고 있는 한국방송에서도 같은 부끄러움과 분노의 목소리가 들린다.
황동진 한국방송 기자협회 회장은 “(윗선에서) 정권 홍보성 아이템을 발주해 어쩔 수 없이 제작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4년간 수치심으로 지내왔다”고 말했다.
3월2일 0시를 기해 제작거부에 들어간 한국방송 기자들은 이런 부끄러움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국민께 드리는 반성의 글’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집회 현장에서는 취재를 거부당하고, 심지어 폭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비참해서 잠이 오질 않습니다.” “국민들께 머리 숙여 고백합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반성합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케이비에스 뉴스를 꼭 바로잡겠습니다.’”
지난 4년의 경험으로나 지금 되어가고 있는 형국을 보면 이미 많은 이들이 겪어온 고난에 더하여 또 다른 해직, 정직, 감봉, 유배지 발령이 있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박정희 유신 때 빚어진 75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대량 해직,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80년 언론인 대학살이 언론 잔혹사의 끝인 줄 알았는데, 이명박 정권 들어 그 혹독한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미쳐가고 있다.
이 비정상적인 사회, 미친 사회를 그래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우선 다급한 일이 지금의 집권세력을 응징하고 교체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야권은 기본과 상식이 통하는 정상의 사회로 되돌아가야 하는 이 단순하면서도 절박한 일을 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정치적 계산’ 따위의 욕심 버리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무엇보다 국민 두려워하는 마음 없으면, 한방에 날려 버린다. 그게 민심이고, 천심이다.
정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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