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정연주 만큼만 김재철 조사하면 된다
MBS노조, 김재철 사장 ‘배임’ 혐의 고발… “2년간 법인카드로 7억 써”
(진실의길 / 정운현 / 2012-03-09)
MBC 노조에 따르면, 김 사장이 직접 사용한 법인카드 사용액은 2억 원, 비서진이 쓴 법인카드 금액은 5억여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노조는 직원 1600명, 매출 규모 1조 원대의 MBC 사장이 1년간 쓴 법인카드 금액이 예산 25조 원인 인구 1천만 명인 서울시장의 업무추진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말하자면 김 사장이 법인카드로 과도하게 지출했다는 얘기지요. 노조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김 사장과 MBC 사측은 “업무용으로 썼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 7일 방문진 보고를 마치고 나오다 MBC 노조원들에게 둘러싸여 발이 묶인 김재철 사장 ⓒ미디어오늘 이치열 |
김 사장이 법인카드로 썼다는 돈의 명목은 ‘판공비’라고 생각되는데요, 너무 권위주의적인 표현이라고 해서 요즘은 흔히 ‘업무추진비’라고 부릅니다. 대개의 경우 기관장이 업무상 교류하는 외부인사 접대나 조직 내 아랫사람들 격려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기관의 성격에 따라 기관장의 판공비 금액은 천차만별이나 정부기관의 경우 직급에 따라 그 액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대부분의 정부기관은 장·차관의 판공비 사용액과 용처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김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처를 공개하라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 사측은 카드 사용내역을 공개하는 것은 정보유출과 영업상 핵심비밀 노출 등 명백한 해사행위로 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답니다. 일견 그런 측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사측의 이 같은 지적은 별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MBC가 특수법인이어서 국회 국정감사 대상이 아니라고 해도 공영방송의 사장이라면 언제라도 사용처를 공개할 수 있을 정도의 투명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측이 “업무용으로만 썼다”며 사용내역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해 보입니다. MBC 노조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김 사장은 전국 특급호텔에서만 1억 5천여만 원을 법인카드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건 그렇다고 치죠. 그런데 귀금속, 액세서리, 골프용품점, 의류매장, 화장품점 등에서 법인카드로 진주목걸이와 명품가방, 여성용 고급화장품을 구매했다고 하는데 MBC 사장이 왜 이런 물건들을 사는데 법인카드를 사용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닙니다. 명절 연휴 중에도 법인카드로 지출했고, 평일에도 호텔에서 마사지를 받았는데 그 비용을 모두 법인카드로 지불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김 사장은 일본에서는 여성전용 피부관리 및 마사지 업소에서 200여 만의 요금을 결제했고, 또 일본 여성들이 많이 찾는 패션 잡화점 등에서도 법인카드 결제를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야말로 김 사장은 전천후로 법인카드를 사용한 셈입니다.
김재철 사장 법인카드 사용 논란을 지켜보면서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정연주 전 KBS 사장입니다. MBC 노조가 김재철 사장을 고발하면서 제시한 죄명은 ‘배임죄’인데, 정연주 사장도 바로 ‘배임죄’였습니다. ‘배임죄(背任罪)’란 ‘본인에게 맡겨진 임무를 위배한 죄’인데, 형법에는 구체적으로 “타인을 위하여 그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하는 죄”(형법 제355조 2항)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008년 8월 6일 여의도 KBS 본사 앞에서 전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
그렇다면 정 전 사장이 ‘배임죄’로 기소된 사연을 한번 살펴볼까요? 지난 1994년부터 KBS와 국세청 사이에는 세금 분쟁을 둘러싸고 17건의 재판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 가운데 1심 판결이 내려진 16건에서 KBS는 7승 9패(1건 미판결)였습니다. 이 7건의 1심 승소판결 소액을 모두 합치면 1764억 원, 여기에 환급가산 이자 684억 원을 합치면 KBS는 1심 승소금액으로 총 2448억 원을 국세청으로부터 환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 전 사장이 KBS 사장으로 지난 2005년, KBS는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의 ‘조정권고’를 받아들여 556억 원을 환급받기로 하고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검찰은 정 전 사장이 연임 욕심에 사로잡혀 예상되는 KBS의 적자를 없애기 위해 서둘러 서울고등법원의 조정을 통해 환급액 556억 원만 받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 결과 차액인 1892억 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KBS에 끼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당시 검찰이 내세운 논리는 정부 소유의 공기업인 KBS가 정부(국세청)를 상대로 세금환급을 철저하게 받아내지 못해 KBS에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입혔다는 것인데요, 이런 사유로 검찰은 정 전 사장을 배임혐의로 기소해 재판을 받게 했습니다. 5년여에 걸친 재판 끝에 정 전 사장은 1심, 2심에 이어 작년 말 대법원에서도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재판과정에서도 ‘정치수사’로 불렸던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검찰의 기소가 부적절했음을 인정한 셈입니다.
정 전 사장의 ‘배임죄’ 사건에서 두 가지를 짚을 필요가 있다. 우선 ‘차액 1892억 원’을 포기한 것은 정 전 사장의 결정이 아니라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의 ‘조정권고’였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그 금액을 정 전 사장이 개인적으로 횡령했거나 유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KBS는 법원의 합리적인 판단을 존중해 10년 넘게 끌어온 소송사건을 마무리했는데, 만약 정 전 사장이 배임죄에 해당한다면 이를 중재한 서울고등법원은 배임의 공모자가 되는 셈입니다.
취임 초기부터 방송장악에 열을 올렸던 이명박 정부는 첫 ‘먹잇감’으로 거대 공영방송사인 KBS를 지목했습니다. 그리고는 당시 사장으로 있던 정연주 사장을 쫓아내기 위해 온갖 국가기관을 동원해 ‘구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정 사장에 따르면, 청와대, 감사원, 국정원, 검찰, 국세청, 방통위 등이 동원됐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찾아낸 것이 바로 이 ‘배임죄’였는데, 논리가 약하자 정 사장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당시 감사원의 조사에 대해 들은 적도 있습니다만,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이 글을 쓰면서 정 사장에게 전화로 물어보았습니다. 정 사장에 따르면, 당시 감사원은 일반 업무감사 외에 별도로 특별조사팀을 파견했는데 그들은 정 사장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조사하면서 “일주일이면 날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합니다. 흔히 ‘찍힌’ 공기업 사장 날릴 때 이 수법을 주로 사용하는 데 그 누구든 사람이다 보니 털면 먼지가 안 나는 사람은 별로 없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 사장은 조사를 해도 나오는 게 없자 급기야 특조팀 사람들이 정 사장 동네 슈퍼까지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혹여 정 전 사장이 법인카드로 슈퍼에서 사적 용도로 물건을 구입한 것이 없는지를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별다른 꼬투리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조사관들은 별다른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했는데 조사관 중의 한 사람이 정 사장을 두고 “이게 진짜 인간이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 이명박 정권 출범 직전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해 비판적 보도를 한 <조선일보> 기사(2008.1.4) |
현재로선 김재철 사장이 사용한 법인카드의 용도가 적절했는지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노조가 검찰에 고발했으니 그 진상은 검찰이 차차 밝혀내겠지요. 그런데 하나 든 생각은 정연주 전 사장이 이번 김재철 사장의 경우였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거라는 거죠. 우선 '조중동' 등이 제일 먼저 나서서 방송사 사장이 뭔 판공비를 그리 많이 썼냐, 여성전용 마사지 업소에는 뭐하러 갔었냐, 진주목걸이와 명품가방, 여성용 고급화장품 사서는 누굴 줬느냐며 연일 ‘정연주 까기’에 신이 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이들은 김 사장 관련 내용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중동이 ‘찌라시’ 소리를 듣는 것은 바로 이렇기 때문입니다) 또 만약 정 사장이 그랬다면 검·경은 ‘인지수사’를 앞세워 벌써 수사팀을 꾸려 벌써 수사준비에 나섰을 것이며, 감독기관인 방통위도 수수방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개인회사인 ‘조중동’이야 그렇다고 쳐도 국민의 혈세를 쓰는 국가기관에서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면 안 되죠. 이러니 검·경에 대한 신뢰도가 땅바닥인 겁니다.
MBC 노조가 김재철 사장을 검찰에 고발한 이상 공은 이제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굳이 많은 것을, 특별한 것을 검찰에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정연주 전 사장을 조사한 만큼만 검찰이 김재철 사장에 대해서도 조사해주기 바랍니다. 김재철 사장이 사는 동네의 슈퍼를 뒤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적어도 여성전용 마사지 업소에는 누가, 왜 갔으며, 진주목걸이와 명품가방, 여성용 고급화장품 등은 구입해서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정도는 제대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정운현 / 진실의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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