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불법사찰 재수사, ‘머리’ 없는 그림 또 감상하라고?

道雨 2012. 3. 17. 13:09

 

 

 

 
  불법사찰 재수사, '머리' 없는 그림 또 감상하라고?

                                             

                                             (블로그 ‘사람과 세상사이’ / 오주르디 / 2012-03-16)


 

 

지난 2010년 검찰은 민간인 불법사찰을 “총리실 단독 범행”으로 결론을 내렸다. ‘윗선’이 개입했다는 정황과 증거들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박약한 검찰의 수사 의지 때문이었다.


재수사 막은 이귀남, 국민에게 사죄해야

이후에도 의혹은 계속됐다. 지원관실 직원에게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곳도 청와대라는 주장이 계속되자 당시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재수사를 요구하는 야당 의원에게 “수사를 반복해봐야 똑같은 결론 일 것”이라며 검찰 수사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또 지원관실 직원이 하드디스크를 파괴한 행위에 대해 “증거인멸과 관련이 없다”는 황당한 주장도 했다.

‘꼬리자르기’ 수사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하지만 한나라당(새누리당)과 법무부장관 등이 나서 적극적으로 검찰을 비호한 덕분에 재수사 요구가 묵살됐고, 일단 ‘윗선’은 무사할 수 있었다.

진실을 드러나는 법. 재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결정적 증언이 나왔다. 지원관실 하드디스크 4개를 ‘디가우저’로 파괴해 증거를 인멸한 지원관실 장진수 전 주무관이 ‘숨겨진 진실’에 대해 이렇게 입을 열었다.


청와대 회유, 협박, 2,000만 원…열리는 ‘진실의 문’

최종석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 장 전 주무관에게 증거 인멸을 지시하면서 했다는 말이다.

“하드디스크를 망치로 부수든지, 컴퓨터를 강물에 갖다버려도 좋다”
“(증거인멸은) 검찰이 먼저 요구한 것으로 민정수석실과 이미 얘기가 다 돼 있어 검찰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이영호 비서관한테 원망하는 마음이 좀 있지만, 저 사람을 여기서 더 죽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위험을 무릅쓴 것"

장 전 주무관은 자신이 1심 재판에서 진실을 말하겠다고 하자 최 전 행정관이 이런 식으로 회유했다고 증언했다.

“공무원을 그만둔 후 먹고사는 것을 책임지겠다” “캐시(현금)를 준비해줄 수 있다”
“(장 전 주무관이 진실을 폭로하면) 민정수석실도 죽는다”

또 최 전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하면서 이영호 비서관이 쓰던 대포폰을 제공했고, 회유하기 위해 이 비서관이 마련했다는 현금 2000만 원을 건네받았지만 곧 돌려줬다고 증언했다.


‘꼬리’만 있던 그림에 ‘몸통’은 그려지는데…

증언에 의하면 이영호 비서관과 민정수석(권재진 현 법무부장관), 그리고 최 전 행정관이 불법사찰의 ‘몸통’인 셈이다. 이들이 수사를 축소하고 진실을 가리는데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이 총리실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민간인 사찰 전담 ‘비선조직’을 가동해 불법사찰을 보고받아 왔다는 얘기다. 여기에 민정수석도 관여돼 있다고 봐야 한다. 검찰 수사 축소에 민정수석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은 민정수석 또한 불법사찰의 ‘직통라인’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사실을 알고 있던 ‘핵심라인’에 해당된다.

 

 

장 전 주무관의 ‘진실의 입’ 덕분에 ‘꼬리’만 있을 뿐 ‘몸통’이 없는 우스꽝스런 그림에 ‘몸통’이 그려지게 생겼다. 그래 봤자 여전히 그림은 미완성이다. 하나를 더 그려야 한다. 바로 ‘머리’다.

‘머리’는 누굴까? 대포폰과 2000만 원을 건넸다는 사실로 이영호 비서관이 ‘머리’일 거라고 보는 건 잘못된 판단이다. 그가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비선조직을 운영했다는 가정이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비서관도 ‘몸통’일 뿐이라고 보는 게 맞다.


‘온전한 그림’ 되려면 ‘머리’ 있어야, ‘머리’는 누굴까?

사찰 내용을 누구에게 보고했을까? ‘보고 받은 자’가 바로 ‘머리’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짚이는 게 있다. 연루된 이들 태반이 같은 지역 출신이다. 이 전 비서관, 최 전 행정관, 이인규 지원관, 김충곤 전 점검1팀장, 원충연 전 점검1팀원 등이 모두 경북 영일, 포항 출신으로 이른바 ‘영포라인’에 해당한다.

사찰을 담당한 지원관실을 하필 총리실에 둔 이유도 이해가 간다. 당시 총리실 ‘실세’는 ‘영포라인’의 핵심인물인 박영준 차장이었다. ‘왕차관’으로 불리던 박영준은 ‘영포대군’ 이상득 의원의 최측근이다. 이쯤이면 ‘머리’의 모습이 그려질 듯하다. 이상득 의원이 민간인 불법사찰의 ‘머리’라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복수의 ‘머리’가 존재할 수도 있다. 이강덕 공직기강팀장과 권재진 민정수석으로부터 보고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권력핵심이 ‘머리’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장 전 주무관의 ‘폭로’는 결정적 물증이나 다름없다. 이러니 검찰도 꼬리를 내리고 재수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수사에 대한 여론은 시큰둥하다. 제대로 된 수사결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정라인의 수장인 권재진 법무부장관(당시 민정수석)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수사하는 거나 매한가지다.


검찰 핵심라인 죄다 ‘TK-고려대’… 또 ‘머리’ 없는 그림 감상하게 생겼다

수사를 직접 담당하거나 수사에 영향을 끼칠만한 검찰의 요직에 모두 ‘TK-고려대’ 출신이 앉아 있다. 권재진 장관은 이 대통령의 ‘비서’ 출신이자 최재경 중수부장과 함께 ‘BBK 공신’ 중 하나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MB의 ‘고려대 인맥’. 한 총장의 장인과 이상득 의원은 육사 동기생으로 매우 절친한 사이다.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은 전형적인 TK라인. 정연주 전 KBS사장을 배임혐의를 씌워 무리하게 기소하는 등 현 정권과 각별한 관계를 과시해 왔다.

 


 

 

이러니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거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모두 밝혀지려면 온전한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꼬리’와 ‘몸통’은 있는데 ‘머리’가 없다면 이 또한 제대로 된 그림이 아니다.

국민들은 ‘검찰’의 그림 솜씨를 믿지 못한다. 현 정권과 연루된 정치적 사건에서 단 한 번도 온전한 그림을 그려 국민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 그 솜씨가 어디로 갈까. 이번에도 뻔하지 않겠나.

재수사하겠다며 태도를 누그러뜨린 이유가 총선과 관련 있을 수 있다. 선거가 코앞인데 드러나는 증거 앞에서도 재수사 하지 않겠다고 하면 여론이 크게 악화할 것 같으니 일단 한다고 해놓고 선거가 지난 뒤 적당히 넘겨 버리려는 수작일 수도 있다.

‘머리’ 없는 그림, 또 미완성 그림을 들고 다 그렸노라 국민 앞에 내밀 게 분명해 보인다. ‘머리’까지 그려 완전한 그림이 되게 하려면 특검이 필수적이다.

 

오주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