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김용민 후보에 대한 사퇴 종용, 과연 적절한가?

道雨 2012. 4. 10. 11:00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이에 걸맞은 비판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으로 족하다

사람이 어떤 잘못을 하면 그에 따른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나 책임의 무게는 사안에 따라 다 다르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였으면 법의 심판에 따라 무기징역 등의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도로를 무단횡단하다 걸리면 범칙금 몇 만원을 물게 된다. 지나가다 실수로 남의 발을 밟으면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면 된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정치판을 보면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사과하면 되고 남의 발을 밟은 사람은 무기징역의 처벌을 내리자는 이상한 주장들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는 권력이 갖는 특성과 그것이 갖는 파급력을 볼 때 엄벌에 처해야 할 심각한 범죄행위이다. 게다가 관련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한 행위는 더욱더 엄벌에 처해야 한다. 만약 그 일을 대통령이 인지하고 있었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탄핵을 당하거나 스스로 하야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오자까지도 그대로 베껴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그것을 근간으로 교수에 임용되었다면 학위와 교수직 박탈은 물론이고 이에 따른 사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 이는 문서를 위조해서 자신의 권위와 직위를 쟁취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회의원도 안 될 말이다.

 

그러면 언어와 표현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어떠할까?

표현의 내용이 일차적으로 중요하겠지만 통상적으로 그 일이 있을 당시의 신분, 그 표현을 한 공간 또는 매체, 그 표현을 듣거나 보는 대상, 그 표현이 나오게 된 계기 등에 따라 판단이 매우 달라질 것이다.

우선 신분에 따라 다른 경우이다. 가벼운 성적 농담이라도 친구들끼리 한 경우라면 그냥 야한 우스갯소리일 뿐이지만 상사라는 직위에 있는 자가 했다면 성희롱이 될 수 있다.

공간도 문제가 된다. 공적인 강연 자리에서 하는 말과 술자리에서 하는 말은 같은 말이라도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매체는 어떠한가? 지상파 방송에서 술을 마시면서 방송을 했다면 큰 사회적 문제가 되지만, 인터넷 방송이라면 새로운 형식일 뿐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누구를 대상으로 했냐는 것은 더욱 큰 차이를 낳는다. 예를 들면 전라의 남녀가 침대에서 정사하는 장면이라도 19금 영화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이들이 보는 교육방송 채널에서 나왔다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다.

계기나 상황 또한 마찬가지다. 같은 욕을 했더라도 본인이 먼저 욕을 했는가 아니면 상대의 욕을 듣고 맞받아쳤는가 등에 따라 그 평가를 달리한다. 말과 표현의 판단은 그런 것이다. 신분, 때와 장소, 상황 등에 따라 그렇게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럼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김용민 후보의 경우를 살펴보자.

8년 전 19금을 표방한 성인 인터넷 방송에 게스트로 나온 김용민씨가 이라크 포로에 대해 미군이 잔인하고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르고 인간 이하의 대우를 한 부분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면서 미군과 그 당국자들도 동일한 수준으로 당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의 신분, 매체, 대상, 상황 등을 모두 생략한 채 단지 그 표현만 갖고 본다면 그는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당장 어떤 공적 활동도 모두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성인을 대상으로 거칠고 성적인 표현을 하겠다고 표방한 19금 인터넷 방송에서, 그것도 잔혹한 범죄 행위를 한 대상에 대해 표현했다는 것을 전제로 둔다면 그의 발언의 부적절성은 그 강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발언의 내용에 대한 문제는 분명 남는다.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가 필요하고 이미 그는 그렇게 했다.

조·중·동을 위시한 수구매체와 새누리당은 민간인 사찰건을 덮을 호재로 잡고 연일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들이야 그 아닌 일이라도 그렇게 해왔기에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진보 매체와 일부 민주당과 진보 정치 진영, 그리고 사회단체까지 나서서 진보의 순수성과 도덕성을 강조하며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어쩌면 그동안의 행태로 보아올 때 이 또한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이들의 마녀사냥에 함께 어울려 손가락질하기보다는 그 일의 정확한 경위와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에 걸맞은 비판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으로 족하다. 혹시나 전략적 차원에서 이 문제가 수구 진영에 빌미가 되어 진보 진영에 불리하지 않을까 하여 ‘꼬리 자르기’ 식으로 사퇴를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 매우 비겁하고 치사한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담배를 피운 여성이 이른바 ‘담배녀’라 불리며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뒤 한 남성이 지하철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동영상에 많은 누리꾼들이 ‘맞아도 싸다’ ‘고소하다’라며 조롱과 환호의 댓글을 달아놓은 것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지하철에서 담배를 피운 행위는 잘못된 행위이긴 하나 매우 가벼운 경범죄에 해당한다. 지적해서 듣지 않으면 가벼운 처벌의 대상이 될 뿐이다. 하지만 폭력은 다르다. 이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힘을 통해 제압하는 매우 질 나쁜 범죄다.

이번 사안에서 우리 언론이 바로 그 ‘담배녀’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남성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남성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경근 서울시 서초구 방배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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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민을 위한 변명

                                                   

                                                                                  (민중의소리 / 이정무 / 2012-04-06)


김용민의 과거 발언이 연일 신문의 헤드라인을 채우고 있다. 국회의원이라는 직무는 아주 중요하고 따라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품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지도층의 품격을 말하는 이유는 결코 그들이 인격적으로 원숙하여 평범한 민초들의 사표(師表)가 되기를 기대해서가 아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그런 기대는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품격을 요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지도층이라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치러야 할 대가를 회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테면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측근들이 저지른 불법적 행동에 눈감고,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하며, 끝내는 이를 고발한 이들에게 ‘그렇다면 너는 깨끗하냐’고 호통을 치기 때문에 우리는 가급적이면 그럴 가능성이 적은 ‘도덕적인 지도자’를 찾아 헤맨다.

다시 김용민으로 돌아와 보자. 김용민의 잘못이 마치 청와대에 앉은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권력을 이용한 것이었다든가, 과거에 한 옳지 못한 발언들에 지금도 변명과 회피로 일관한다면 누구도 그를 보호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에게 당장, 유권자의 심판도 받지 말고, 스스로를 심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그는 지금 대가를 치르는 중인데, 그 대가가 얼마가 되어야 할지에 대해선 지금으로서는 유권자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같은 편이니까 봐준다

이런 주장에는 당연히 두 가지의 반박이 따라올 것이다. 하나는 ‘같은 편이니까 봐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편을 위해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같은 편을 위해서 물러나라’는 것에 대해서는 그 이익의 균형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가 물러난다고 해서 무엇이 좋아질지, 물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무엇이 나빠질지 솔직히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같은 편이니까 봐준다’는 말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같은 편’으로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를 24시간 스토킹해서 얻은 검증결과는 아니겠지만,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판단을 내리고 그것이 종합되어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갖게 된다. 김용민의 경우에도 그렇다.

김용민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잡놈’이었고, ‘잡놈’의 말과 행동에 열광한 ‘같은 편’ 덕분에 후보가 되었다. 김용민이 어려서부터 고위 공직자가 될 준비를 했던 엘리트가 아니었다는 건 어차피 다들 알고 있었던 일이 아닌가. 그에 대해 ‘같은 편’이라는 믿음을 철회하려면 그가 ‘잡놈’답지 않게 치밀하게 군중을 속이고, 자신의 행동을 아름답게 분칠하면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잡놈’답지 않게 거짓 눈물로 참회의 연기를 하고 있어서, 앞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면 더 나쁜 짓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는 심증이라도 있어야 한다.

만약 그의 잘못이 더 이상 같은 편이 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러면 같은 편이 아니니까 봐줄 필요도 없다. 반대로 그가 자신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백함으로써 같은 편에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 내리는 비는 같이 맞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먼 길을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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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쫄지마! 김용민, 씨바!”

또 발동한 진보진영의 도덕성 콤플렉스
강기석 | 2012-04-06 14:53:3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

솔직히 나도 젊었을 때는 욕 좀 하고 살았다. 같잖은 상황에 맞부딪칠 때마다 논리적·이성적 판단에 앞서 욕부터 튀어나왔다.

그때는 내 주변 친구들도 거의 나만큼 욕을 잘했다. 우리가 특히 성정이 포악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수양이 좀 부족했을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젊은 객기에서 “거친 것이 사내답다”는 착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거의 욕을 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점잖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다. 내가 한때 욕 잘했었다는 것을 잘 아는 친구들·동료들도 지금은 그 사실을 거의 잊어 먹었다. 자기들도 지금은 욕을 하지 않는다.

 

결국 세월이 해결해 준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이를 먹는 동안 음으로 양으로 수양이 쌓이기도 했을 것이고, 욕으로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으로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 늙어서도 함부로 욕을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 이상 사내답기는커녕, 세상에 못난 찌질이 영감으로 보일 뿐이다.


 

청춘이니까 용서되는 것, 노인이니까 눈살 찌푸려지는 것

 

#2.

나는 나이 70이 넘으면 내 피선거권을 두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것이며, 75세가 되면 선거권도 행사하지 않겠다는 나만의 결심을 아주 오래전에 했다. 잘해야 10년, 더 잘하면 20년을 살 나의 결정보다는 40년, 50년을 더 살 청년들의 미래의 선택에 가중치를 줘야 한다는 깨달음에서다.

 

나이가 들면 내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환자가 8.4%로 42만 명에 이르고 치매 위험이 높은 경도인지장애는 4명 중에 1명 꼴이다. 치매와 증상이 비슷한 알츠하이머의 경우 90세 노인의 20%가 중증환자라는 미국의 한 연구보고서도 있다.

 

나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언젠가는 군복차림에 가스통을 들고 서울광장에 나설 확률이 꽤 높다는 얘기다. 이런 불안감은 최근 영포대군, 방통대군 등이 자초한 망신살로 인해 엄청난 두려움으로 굳혀졌다.

 

 

 

이번 총선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김용민이 젊었을 때 막말을 좀 했다 해서 논란을 빚고 있다. 하나는 부시와 라이스, 럼스펠트 등 전쟁광들을 좀 어떻게 해 보자는 이야기 중에, 또 하나는 서울광장에 출몰하는 노인들을 좀 어떻게 해 보자는 이야기 끝에 나온 장광설인데, 내 생각으로도 좀 심한 비유를 구사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그가 자진사퇴해야 한다느니, 민주당이 사퇴시켜야 한다느니, 민주진보진영까지 나서서 아우성치는 건 좀 정상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늘 반복되는 패턴…진보진영의 한 술 더 뜨기

 

도대체 과거의 막말 때문에 지금의 김용민이 국정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때 김용민의 나이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이었다.

 

그렇다고 부시는 물론 클린턴까지도 아직 철이 덜 들었을 때 마약을 했었다는 에피소드를 들먹이거나, “젊었을 때 막말 한번 해 보지 않은 자, 김용민에게 돌을 던지라”는 김형오식 논법으로 그를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온갖 여성비하를 자행해 온 수많은 새누리당 의원들과 후보들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타기’를 시도할 의도도 전혀 없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누구나, 그것이 진보가 됐든 퇴보가 됐든, 변화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8년 전 그때 김용민은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과 진보에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보잘것없는 학벌 때문에 어떤 주류방송으로부터도 외면당한 채 고작 인터넷 성인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었다.

차츰 실력을 인정받아 주류방송에서도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을 정도로 성장했으나 그가 결정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나는 꼼수다>를 통해서였다.

 

그는 <나꼼수>에서도 ‘씨바’, ‘조까지 마’ 등등의 용어를 거리낌 없이 구사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나꼼수>에서 ‘씨바’며 ‘조까지 마’ 등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쾌하다기보다는 머리칼이 쭈뼛 설 정도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편이다.

내가 그런 소리들을 욕설이 아닌 일종의 ‘추임새’로 받아들이는 것이, 별 악의없이 욕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내 젊은 날의 추억 때문인지, 지금도 가끔씩 후련하게 욕 좀 하고 싶은 잠재의식의 발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김용민이 주류방송에서도 막말을 했거나 ‘조까지 마’를 남발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방송의 제작방식과 전달형식, 목표로 삼는 청취자의 성향이 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솔직해지자면, 내가 만일 그때 그 인터넷방송을 들었더라면 그때도 역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킬킬 웃었을 것이 분명하다.

김용민에게 상황을 살피고 자리를 가리는 능력이 있다면 내게도 주류방송을 들을 때의 자세, 인터넷방송을 들을 때의 자세를 달리 할 만한 능력이 있는 것이다.


 

진화하는 김용민의 균형감각, 과거에서 미래로

 

▲ 4월 6일자 경향신문 6면

 

 

그럼에도 지금 ‘김용민 사퇴’ 운운이 들끓고 있는 것은 또다시 ‘조중동 프레임’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국기를 뒤흔들만한 불법사찰사건에는 이리 빼고 저리 빼던 <조중동>이 “옳지 잘 걸렸다”며 사태를 확산시키자, 진보진영의 도덕성 콤플렉스가 뒤늦게 작동한 것이다. 그리고는 김용민을 변호하는 쪽을 ‘진영논리’에 함몰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정작 ‘진영논리’에 빠진 것은 경향, 한겨레, 진보진영의 일부 도덕군자들인 듯하다. 그들의 논지에는 선거국면에서 전체 야당진영에 불리하니 사퇴하라는 안타까움이 절절히 배어 나온다.

 

참으로 유권자 의식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서도 속으로는 아직도 <조중동>의 위세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부시와 라이스를 죽이기 위해 연쇄살인범을 파견하자”거나 “시청역에 엘리베이터를 없애고 4층 계단을 만들자”는 등 8년 전 인터넷 성인방송에서의 진한 농담을 ‘여성모독’ ‘노인폄훼’를 뜻하는 진담으로 받아들이자고 부르짖는 부류가 <조중동>과 그 일당 말고 또 누가 있을까.

 

“그러자”고 맞장구치는 이들은 오래전에 이명박을 찍었고 이번에도 새누리당을 찍겠다고 이미 작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내 확신이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이번 사안을 놓고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가는 건 옳지 않다.

이 정도 사안을 놓고 사퇴를 강요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로 가야 하며 그 결론은 사퇴는 안 된다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젊었을 때의 표현의 미숙함은 사과와 자숙으로 족하다.

사실 김용민은 지금 사퇴를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처음부터 출마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 선거구에는 웬만한 인물 누가 나가도 이길 수 있으니, 김용민은 애초 <나꼼수>를 잘 만드는 것이 국회의원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쫄지마! 김용민,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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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 놈평>김용민과 새누리당의 음담패설 분석

 

                                                                                  (서프라이즈 / 안호용 / 2012-04-09)


먼저 김용민을 옹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먼저 밝혀둔다. 지극히 객관적인 마초의 입장에서 쓰는 것이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란다.

 

음담패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리고 여자남자를 막론하고 일상에서 조금은 은밀한 한 부분인 게 사실이다. 친구들과 술자리나 접대용 술자리나 회사직원들과의 회식자리 등등에서 음담패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농담거리로 약간은 은밀하게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면서 동족의식을 느낀다.

 

그 음담패설에 등급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대게 어떤 장소에서 분위기에 맞는 음담패설을 자발적 검열을 거쳐 걸쭉하게 늘어놓는다. 장담하건대 음담패설 안 해본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서 음담패설을 했다고 그 사람의 인격을 탓하지는 않는다.

 

음담패설 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우리의 새누리당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한나라당 성추행이라고 치면 정말 화려했던 성추행 기사들이 끝없이 줄을 잇는다.

여기서 그것을 옮겨놓지는 않겠다.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너무도 많이 회자되었기 때문에 식상한 것은 물론이고 이젠 짜증이 난다. 색누리당이라 불리어도 전혀 부족할 게 없는 그들의 끝없는 배설본능은 앞으로도 계속될지 참으로 걱정이다.

국민을 즐겁게 해주는 차원에서라도 제발 음담패설과 성추행은 종영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그대들이 진정 국민을 위하는 구케의원이다. 하여튼 어려서 빨간책을 너무 많이 읽은 결과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성에 대한 애착은 국민의 시름을 달래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요즘 김용민이 과거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했던 음담패설로 곤욕을 치루고 있다. 한마디로 보수쪽에서는 난리가 났다. 국회의원질 하겠다고 혼탁한 선거판에 뛰어들었으니 신상털기를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졸지 마시라.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할 터 내공에 문제 없으리라 믿는다.

 

사실 김용민의 음담패설과 새누리당의 음담패설은 차원이 다르다. 김용민의 음담패설은 특정한 사람들만 찾아와 듣는 특정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특정한 컨셉으로 특정하게 토크를 한 것이다.

공중파 방송에서는 공중파에 맞는 언어를 구사해야겠지만, 특정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은 청취자가 극히 제한적으로서 자신이 선호하는 취향을 찾아 나선 것이기 때문에, 출연자는 거기에 맞는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본연의 임무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방송의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케이블에 에로비디오 전용 성인방송도 있고 선정성을 컨셉으로 방영되는 케이블 방송도 많이 있다. 이런저런 잡다한, 정말 말도 안 되는 컨셉을 가지고 방송하는 케이블이나 인터넷방송들이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떳떳하게 다들 잘 먹고살고 있다.

그 가운데 김용민이 극히 일부를 담당했을 뿐이다. 다 먹고살자고 한 짓이리라.

 

 

하지만 새누리당의 음담패설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음담패설이 튀어나오고, 그것이 재수 없게 언론에 잡히면 그게 이슈화된다. 그러니까 자의적으로 음담패설을 하는 것이기에 인격적인 문제와 연결이 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음담패설이 조금은 은밀한 농담이지만, 그래서 조금은 은밀한 장소에서 발설을 해야 음담패설로 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음담패설은 일상적인 활동에서 무절제하게 발산을 해대니 욕을 얻어먹는 것이다.

그런 음담패설 하나 때와 장소를 가릴 줄 모르고, 그런 거 하나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구케의원질을 하고 있으니까 국민적(보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새누리당에 비하면 김용민은 순진하다. 김용민은 생계형 음담패설이지만 새누리당의 음담패설은 인격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어느 정치인이 기자들이 즐비한 공식적인 자리에서 맛사지걸의 서비스를 논하고, 관기 운운하며 농담짓거리를 하겠는가.

최소한 김용민은 음담패설을 할만한 곳에서 했지, 새누리당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돌을 쥘 자격조차 없다.

 

오늘도 종점다방 미쓰킴은 다리 꼬고 앉아 껌을 짝짝 씹어대며 “ 요즘 전여옥 아줌마는 머하는지 몰라. 그 아줌마 이럴 때 한 방 내던지면 영감들 자지러질 텐데… 국회의원은 나온대? 한나라당에 아직도 있지? ”라고 이죽거린다.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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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김용민이 국회의원 되는 게 민주공화국
엄숙한 권위주의 깨야 민주주의 가능
조기숙 | 2012-04-10 09:30:1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김용민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나는 며칠 전 문대성이나 석호익의 과오와는 달리 김용민의 부적절한 발언은 용서받을 수 있으며, 그가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면 한나라당의 현직의원으로 연극 <환생경제>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성희롱을 퍼부은 이혜훈, 주호영, 송영선, 정두언, 정병국, 주성영 등과 이를 보며 박장대소한 박근혜 위원장이 먼저 후보직사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적반하장당, 새누리당 변하지 않았다” 참조)

임태희는 <환생경제>에 대한 비난 여론에 대해 연극은 연극일 뿐이라고 변명한 바 있다. 맞는 말이다. 연극을 통한 풍자와 해학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된다고 봤기에 참여정부 인사들은 그 연극에 대해 일체 반응하지 않았다. 인권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에도 광대에게는 유일하게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던가.

▲ 박근혜 위원장과 당시 김덕룡 한나라 원내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환생경제>를 관람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용민은 광대였다. 조선시대 천민이었던 광대는 유일하게 지배계급인 양반을 풍자와 해학으로 비판하는 걸 허용받았다. 역사적 사실은 아니겠지만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광대가 공연을 빙자해 감히 왕을 비판하기도 했다. 광대에게만 풍자와 해학이 허용되었던 이유는 양반의 통치기술이었다. 하층계급에게도 불만을 배설할 출구가 있어야 폭동이나 민란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대에게 지배층 비판이 허용되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저속하고 천박한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광대가 만일 엄숙하고 도덕적인 언어로 양반을 비판했다면 참수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천한 언어를 쓰는 광대는 아무리 양반을 비판해도 절대로 양반이 될 수 없기에 안심했던 것이다.

언어는 신분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도구이다. <My Fair Lady>라는 영화에서 한 언어학자가 천한 신분의 ‘꽃팔이’ 여성에게 상류층 언어를 가르치는데 그녀가 상류층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게 됨으로써 드디어 신분상승이 가능하게 된다. 서기호 판사의 ‘빅엿’, 이정렬 판산의 ‘가카새끼 짬뽕’이 기득권 세력의 분노를 산 이유도 서민 언어를 사용한 엘리트를 추방하고 말겠다는 신분사회 이념이 도사리고 있다.

박경신 교수가 지적했듯이 김어준의 ‘나꼼수’는 언어혁명을 통해 엄숙한 보수주의에 도전하고 있다. 박 교수는 ‘나꼼수’ 못지않게 말버릇이 없는 진중권을 좋아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천한 언어의 사용은 광대가 되기 위한 필수요건인지도 모른다.


엄숙한 권위주의 깨야 민주주의 가능

노무현 대통령이 소탈한 언어로 탈권위주의 문화를 퍼뜨림으로써 문화혁명을 시도했던 이유도 유교의 엄숙주의가 존재하는 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도전에 벽에 부닥친 건 우리 사회가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유교의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혹은 많은 진보주의가 아직도 보수의 공식에 갇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 못지않게 엄숙하고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외국에서는 도덕성은 보수의 전유물이다. 진보는 오히려 보수의 엄숙주의를 조롱하고 보수가 허용한 범위를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한다. 진보주의자들이 문화적 엄숙주의에서 해방돼야 나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돈과 학벌로 유지되는 현대판 신분질서를 깨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개그맨은 현대판 광대이다. 농담과 해학, 저속한 말 사이엔 현실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숨겨져 있다. 우리나라 개그맨은 비교적 점잖은 편이지만 서양의 개그맨은 저속 비속어를 쓴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광대와 더 닮았다. 서양의 개그맨 중엔 성역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나 대통령을 소재 삼아 저속한 언어로 이들을 모욕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성직자나 대통령을 소재로 한 성적 농담이 수시로 등장하는 이유도 보수주의자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도덕성과 성적 억압에 도전하기 위함이다. 개그맨은 해학과 풍자를 통해 보수주의가 목숨처럼 여기는 권위를 조롱한다. 이들에게 성역이란 없다.

조선시대 광대는 서민들의 애환과 불만을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 개그는 엘리트 진보주의자들의 전유물이 되어 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개그맨은 진보주의의 최첨단에 있는 사람들이다. 미국의 스탠딩 개그 입장권은 천 불(백만 원)이 넘는 경우도 많다. 말끝마다 ‘fuck’이 들어가는 개그를 즐기는 청중은 많이 배우고 많이 버는 리버럴 뉴요커들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요즘 정권에 장악 당한 TV에서 유일하게 현실정치 비판을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그나 예능 프로인 건 우연이 아니다. 광대와 개그맨의 현실 비판 정신엔 역사적 뿌리가 있는 것이다.

공인이 될 사람으로서 김용민의 발언이 부적절했음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과거 19금 성인방송에서 광대로서 했던 발언이 정치권에서 문제가 되는 게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미국이 낳은 위대한 코미디언, George Carlin. 그의 유명한 ‘이론’ - <더 큰 조대가리 외교정책이론>. 아쉽게도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George Carlin, one of the greatest political philosophers that the United States has ever produced, died suddenly of heart failure. His “Bigger Dick” foreign policy theory won him comparison with Machiavelli.) ⓒ유투브 동영상 캡처


과거 성인 방송 발언이 쟁점화되는 건 반칙

박근혜 대표는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야 비로소 대한민국에 신분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아이들이 배울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 새누리당이 김용민의 19금 영상을 인터넷에 조직적으로 올리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그 영상을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반칙으로 인해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새누리당은 선거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행위를 사과하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 영상을 내리기 바란다.

김용민의 과거발언이 정치 쟁점화되는 건 사실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본다. 과거 광대로서 직업상 했던 발언이 공인이 되는 선거에서 쟁점화되는 게 과연 페어플레인가 하는 의문이다. 외국에서는 누드모델이나 매춘부였던 사람도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니 민주국가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들의 상대후보나 정당이 과거의 사진이나 기록을 대중에게 공개한다면 과연 그것이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그것이 선거법 위반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의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용민의 발언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의원들의 <환생경제>에서 했던 막말이 연극이었기에 용서되어야 하듯 광대 김용민의 과거 발언도 문제 삼지 말았어야 했다. 만일 그런 과거를 문제 삼는다면 특정 직업에 있던 사람은 절대로 국회의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용민이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면 김용민과 독설을 주고받은 김구라는 물론이고 매일 ‘이뻐~’ 하는 성차별적 발언으로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조지훈도 국회의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김용민의 승리는 신분질서의 해체에 기여할 것

이는 한 번 광대면 영원히 광대여야 하는 조선시대의 신분사회에서 우리가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공화국이 조선시대와 다른 점은 타고난 신분이나 계급과 무관하게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계층이동이나 직업 변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수구언론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그들이 감히 그들에게 대든 ‘노무현 죽이기’에 올인했듯이 지금 ‘김용민 죽이기’에 올인하고 있다. 천박한 광대가 감히 신분상승을 꿈꾸다니 하면서 매일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진보언론과 유권자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아픈 상처를 그대로 안고 김용민은 지역주민의 심판을 받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나는 진심으로 김용민의 승리를 보고 싶다. 김용민의 승리가 단지 ‘가카’에게 패배를 안겨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우리가 ‘가카’를 심판한다 해도 제2, 제3의 ‘가카’는 또 나오게 되어 있다. 거대한 오염원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치는 여론정치이다. 수구언론은 독재자의 은덕으로 세를 키웠지만 이제는 뒤에서 여론을 좌지우지함으로써 ‘가카’를 조정하고 있다. 유사 이례 처음으로 기득권세력에게 맞짱 떠 대통령까지 당선된 노무현이지만 퇴임 후 그도 결국은 수구세력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들은 감히 자신에게 대드는 사람을 집요하고 악랄하게 보복한다. 김용민의 승리는 ‘가카’는 물론 수구언론에게도 일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용민의 승리를 간절히 바란다.


‘가카’와 수구언론에 ‘빅엿’을 선사하려면

김용민은 여러분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 지역에 지인을 찾아 김용민 지지를 호소해주길 부탁드린다. 10일 저녁 유세 후에 자정까지 골목을 다니며 김용민을 위해 함께 자원봉사할 동지를 기다린다. 나도 그들과 함께 김용민을 위해 단 몇 명이라도 주민을 설득할 생각이다.

‘광대’ 김용민의 승리는 고단하고 힘든 일상을 보내는 평민의 승리가 될 것이며, 99% 국민의 승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