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일개 행정관에게 휘둘린 인권위의 청와대 예속

道雨 2012. 4. 10. 11:14

 

 

 

지난 2009년 말 한 청와대 행정관이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에게 좌편향으로 분류된 사람의 인사기록을 전달했다고 한다. 인권단체에선 금기인 블랙리스트다. 당시는 이 정권이 전 정부 사람이나 정부 비판적인 사람들을 솎아내기에 혈안이었던 시절이었으니, 그가 왜 그랬는지는 굳이 따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일개 행정관이 독립된 국가기구의 사무총장을 불러내 이런 짓을 한 걸 보면 청와대의 탈선이 어느 정도였는지 웅변한다.

명단을 전달받은 인권위 사무총장도 인정했듯이, 그건 심각한 월권이었다. 특히 개인의 이념 성향에 따른 블랙리스트 작성과 활용 자체만으로도 인권위가 적발해야 할 인권침해 행위였다. 그런 짓을 한 청와대 행정관이나, 이런 짓을 용납한 인권위 사무총장이나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해 7월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위는 정권에 대한 견제를 방기하고 있었으니, 양쪽 다 예사로이 그런 짓을 했을 것이다. 인권위는 이미 행정안전부에 의해 조직이 대폭 축소되는 등 정권의 통제 아래 들어가고 있었다.

오비이락인지 명단 통보 후 적잖은 직원들이 인권위를 떠났다. 별정직 인권전문가 10여명이 계약해지됐고, 현 위원장의 독선과 임무 방기에 비판적이었던 직원들은 무더기로 징계를 당했다. 특히 촛불시위 진압 과정에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인권위의 결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거나, 비정규직 문제나 용산참사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이 많이 포함됐다. 인권위의 본분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이었지만, 이 정권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촛불시위 이후 공직사회와 시민사회를 다잡는 데 정권의 비선 사찰조직,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 권력기구를 총동원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국정원은 아름다운재단 등 시민사회단체를 사찰했고, 검찰은 피디수첩, 미네르바,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등을 마구잡이로 기소했고,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정치인, 민간인, 국회의원, 방송 등을 무차별 사찰했다. 5공 정권 이래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가 가장 광범위하게 이뤄진 때였다.

인권위라면 마땅히 이런 행위를 감시하고 저지했어야 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의 진정서마저 기각하는 등 인권침해를 방조하고 정당화했다. 인권침해 알리바이용 조직으로, 일개 청와대 행정관에게 휘둘리는 수준으로 전락했던 셈이다. 짐작은 했지만, 이런 기구가 여전히 인권위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 2012. 4. 10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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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위원장 취임 석달뒤 ‘좌편향 분류 직원 명단’ 건네
당시 사무총장 “시민사회비서관실이 10명 안팎 기록 줘”

지난 2009년 청와대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소속 일부 직원을 ‘좌편향’으로 분류해, 이들의 인사기록이 담긴 문건을 당시 인권위 사무총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청와대가 독립 기구인 인권위를 통제하기 위해 내부 인사에까지 개입한 것이어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0월 초 인권위 사무총장에 취임해 7개월 만에 사퇴한 김아무개 변호사는 9일 <한겨레>와 만나 “2009년 10월 말께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 소속 한 행정관이 연락을 해와 시내 모처에서 만났더니, 인권위 직원 10명 안팎의 인사기록이 적힌 문건을 건네줬다”며 “정황상 소위 ‘문제 있는 직원들’ 정보를 준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그가 받은 문건에는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전 인권위 인권정책과장), 남규선 전 인권위 시민교육팀장, 김아무개 인권위 조사관 등 주로 시민사회단체 출신 직원들의 주요 경력 등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는 “나중에 업무를 하다 보니 인권위의 청와대 공식 접촉라인은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 쪽이어서, 왜 그때 시민사회비서관실 쪽에서 연락을 해왔는지 의아했다”며 “(문건을 준) 행정관이 시민사회비서관 모르게 일을 처리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이었던 현진권 아주대 교수(경제학)에게 여러 차례 전화 연락을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문건 전달은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취임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이뤄진 일이다. 인권단체들은 현 위원장 취임 뒤 인권위가 사회 현안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등 ‘독립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평가한다. 인권위 전원위원회는 2009년 12월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검찰 수사 관련 의견 표명 안건을 부결시켰으며, 2010년 4월엔 국가정보원이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관한 의견 표명도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2010년 11월 현 위원장의 독단적 인권위 운영에 반발해 정책자문위원·전문위원 60여명이 연쇄 사퇴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2007년 1월부터 2009년 8월까지 인권위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김칠준 변호사는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전까지는 청와대 어느 곳에서도 인권위 인사와 관련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없다”며 “만약 청와대에서 직원 명단을 건넸다면 어떤 배경이든 인사에 부당한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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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보도건 다뤄야” 항의
“촛불때 경찰 공격진압” 지적

청와대가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사무총장에게 전달한 ‘좌편향 인사 문건’에 포함된 10명 안팎의 인권위 직원들은 주로 시민사회단체 출신들이다. 이 가운데는 현병철 위원장의 독단적인 운영행태를 비판하며 사표를 낸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과 2008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인권위 좌편향성’을 지적하며 문제 직원으로 언급했던 김아무개 조사관 등이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9일 확인됐다.

인권위 설립 초기부터 관여했던 김형완 소장은 2010년 9월까지 인권정책과장을 지내다 공무원연금 대상이 되는 20년 근속을 다섯달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김 소장은 “청와대에서 인권위에 전한 문건에 내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곤 상당히 불쾌했다”며 “정부가 한 개인의 내면에 대해서 자기 멋대로 판단해 성향을 분류한 데 대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문건이 전달된 2009년 말 이후는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검찰 기소 등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가 잇따라 터져나올 때였다”며 “이런 문제를 인권위에서 다루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인권위에선 내 뜻을 이룰 수 없어 인권위를 나왔다”고 전했다.

김아무개 조사관은 2008년 촛불집회 때 경찰의 과도한 진압을 지적한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진정이 인권위에 쏟아져, 상임위가 직권조사에 나서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김 조사관은 “2008년 국정감사에서 한 국회의원이 내가 지역 시민단체의 실행이사직을 맡아 국가공무원 복무 규정 위반 아니냐고 지적했다”며 “해당 시민단체에 매달 후원금을 냈을 뿐 실질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는데, 그 의원이 시민단체와 관련된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의아해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문건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또다른 직원인 남규선 전 인권위 시민교육팀장은 해당 문건이 인권위로 전달되기 직전인 2009년 10월 초 소속됐던 과와 팀이 없어지면서 일을 그만뒀다. 이명박 정부는 그해 4월 학계와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인권위 조직과 정원을 21.2% 축소했다. 이 과정에서 인권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별정직·계약직 직원들이 상당수 인권위를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공무원노조 인권위 지부는 이날 성명을 내어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직원들이 위원회를 떠나거나 징계를 받은 일은 청와대에서 전달된 ‘블랙리스트’와 무관하지 않다”며 “위원장이 인권위 독립성을 수호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이 사태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구성원들에게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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