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님하, 한 말씀만 하소서

道雨 2012. 4. 16. 17:55

 

 

          님하, 한 말씀만 하소서 

 불법사찰로 세상 들끓어도 끝까지 ‘뭉개는’ 이명박 대통령
불리한 사안에 절대 침묵하는 ‘민주주의 불감증’
 조혜정
            싸이월드 공감  
“뭘 알려주겠다는 건데?”
“있는 그대로.” 
“그냥 가만있자니까. 밖에 시끄러운 거? 내가 장담하는데 일주일이면 사라져. 정치인 하나 뻘짓하거나, 연예인 스캔들 하나 터져주면 그냥….” 
“쉽게 안 없어져.”
“그러다 문제 더 커지면? 잘못 건드렸다 국민 감정 뻥 터지면 그땐 어떡할 건데? 폐위 얘기까지 나올지도 몰라!”
“그럼 물러나야지. 국민이 원하는데.”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회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용산참사, 7·4·7 등 사과할 일이 천지인데

문화방송 드라마 <더킹 투하츠> 5회에서 왕제 이재하(이승기)와 왕 이재강(이성민)이 나눈 대화다. 왕실이 이재하와 북한 특수부대 장교의 결혼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시민들은 거세게 비판한다. 이재하는 무대응을 주장하지만, 이재강은 왕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더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맞선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는 이재하와 비슷한 것 같다. 전방위적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입막음 시도 등을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주장과 증거가 끊임없이 나오는데도, 이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검찰의 1차 수사 축소 의혹을 받는 권재진 법무부 장관 경질 요구에도, 야당의 하야 요구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4월3일 국무회의에서 “선거를 앞두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국정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게 된다”며 적반하장 격으로 불쾌감을 드러낸 게 전부다.

이 대통령의 침묵은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사안이 터져나올 때마다 그는 ‘뭉개기 전략’을 구사했다. 지난해 10·26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여당 쇄신파 의원들이 사과와 ‘7·4·7 공약’ 폐기를 요구하자, 이 대통령은 “답변을 안 하는 게 내 대답”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한국 언론이 아닌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과 한 인터뷰를 통해서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2009년 1월 서울 용산 참사 때도 그는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다. 대신 당시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관계자들과 한 비공개 만찬에서 “전철련(전국철거민연합)은 사실상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인데 철거민들이 이들 틈바구니에서 여러 가지 피해를 보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의 책임을 전철련으로 떠넘긴 것이다.

 

기껏 하는 말이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친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이 이국철 SLS 회장으로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돈봉투를 뿌렸다는 의혹, 서울 내곡동 사저 불법매입 의혹 등 자신과 측근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이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지난 2월22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야 입을 열었다. 측근들의 의혹과 관련해선 “정말 가슴이 꽉 막힌다. 화가 날 때도 있다. 가슴을 칠 때도 있다. 국민께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내곡동 의혹을 두고선 “국민 여러분께서 널리 이해해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하나 마나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그의 도덕성과 민주주의 소양에 다시 한번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한다. 무소속 정태근 의원은 4월2일 불법사찰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국민에 대한 사죄, 이를 시정하려는 조치와 관련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공방으로 모면하려는 자세는 ‘민주주의 불감증’이며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