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천안함 이중왜곡', 17세기식 종교재판
[기고] 한국사회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언제 회복할 것인가
서재정 美 존스홉킨스대 교수,이승헌 美 버지니아대 교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월28일 제91차 인터넷 라디오 연설에서 천안함 사건을 또 다시 두 번이나 왜곡했다. 천안함 침몰이 북의 어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과학적 증거를 왜곡했을 뿐만 아니라 합조단의 조사결과에 문제를 제기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종북세력'이라는 터무니없는 사실왜곡을 한 것이다. 이는 매카시즘이냐 사상검증이냐의 문제 이전에 사실관계의 문제이고, 이 사실관계는 명확하게 집고 넘어가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연설에서 천안함과 관련하여 세 가지 주장을 펼쳤다. 즉 (1) "2010년도 천안함 폭침 때도 명확한 과학적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2) "북한은 똑같이 자작극이라고 주장"했고 (3) "이들(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 내부의 종북세력은 더 큰 문제입니다"라는 것이다. 이중 (2) 북한이 천안함 책임을 부인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1)과 (3)은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이다.
"명확한 과학적 증거"는 '폭침설' 부정
천안함 사건 이후 나온 "명확한 과학적 증거"는 이명박대통령의 주장과는 달리 합조단의 북한 어뢰설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즉, 합조단이 주장한 어뢰의 수중폭발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뢰와 천안함을 인과관계로 연결지어주는 핵심적 물증으로 제시된 데이터가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모의폭발실험에서 나왔다는 '흡착물'이 알루미늄산화물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그래프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데이터였다. 폭발로 생성되었다면 합조단의 주장과 같이 알루미늄산화물일 것이고, 그렇다면 이 물질을 에너지분광데이타(EDS)로 분석할 때 알루미늄과 산소 피크(그 원소가 있음을 보여주는 그래프상의 표기)의 비율이 1:0.25정도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합조단 보고서에 실려 있는 그래프에서 이 비율은 1:0.9로 되어 있다.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데이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조작이외에는 설명할 방도가 없다.
또 캐나다 매니토바대학의 양판석 박사와 안동대의 안기영교수가 천안함 함체와 어뢰파편에서 채취한 '흡착물'을 분석한 결과 이는 폭발에서 생성되는 물질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었다. 합조단이 공개한 샘플을 두 과학자가 서로 다른 연구실에서 독립적으로 분석을 한 결과, 이 물질은 수산화알루미늄 계열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물질은 저온에서 장시간 침전의 결과로 생성되는 것이므로 폭발로 생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과학적 사실은 합조단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이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험폭발로 생성된 '흡착물'도 공개하여 성분을 밝히자고 요구하고 있으나 국방부는 무엇이 두려운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명확한 과학적 증거"는 이미 나와 있다. 즉 어뢰 폭발의 물증은 없다는 것이고, 합조단이 결정적 증거라고 내세운 데이터 중 적어도 하나의 데이터는 조작됐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과학적 증거"에 정반대되는 '폭침론'만을 주장하며 또 하나의 왜곡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 천안함 함체와 '1번 어뢰'에서 나온 물질 ⓒ국방부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 중 (3) 부분은 천안함과 관련한 두 번째의 사실왜곡이다. 즉 "북한은 똑같이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과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천안함 조사보고서의 결론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는 두 개의 사실을 잘못된 선후관계와 왜곡된 인과관계로 엮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적 선후관계로 봐서도 필자들을 비롯한 전문가들과 수많은 네티즌들이 먼저 의혹을 제기했고, 내용적으로 봐서도 우리들이 제기한 내용들을 나중에 북한이 되풀이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뒤집어서 마치 북한이 먼저 이런 문제점들을 지적했고, 우리는 나중에 북한이 한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왜곡한 것이다.
천안함이 2010년 3월 26일 침몰한 직후부터 정부의 초동대응이 미진했고, 이에 대한 정부의 보고는 의혹투성이였다. 사고의 위치와 시간에 대한 발표도 여러 차례 바뀌었고, 함미는 3월 28일 밤 어선이 찾아낼 때까지 며칠 동안 그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어뢰설계도'는 5월 20일 조사결과 발표 당시 잘못된 것을 제시했다. 어뢰가 폭발을 했으면 당연히 생겼어야 할 70미터 높이의 물기둥이 없었던 점, 생존한 병사와 죽은 병사의 시신의 깨끗한 생태, 어뢰추진체의 부식상태, 스크루 날개의 손상상태, 프로펠러 축에 감겨있던 그물 등 상식인에겐 '어뢰폭침설'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점들 투성이였다.
언론과 네티즌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초기부터 의문을 제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민간전문위원으로 합조단의 조사에 참가하고 있던 신상철대표는 3월27일 언론에 공개된 사진에 근거해서 좌초설을 제기했고, 사고 이틀후인 28일 폭발 가능성을 <KBS>에서 언급했던 해상전문가 이종인 대표는 4월 15일 인양된 함미의 모습을 보고 천안함이 좌초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으로 있던 박선원 박사는 노무현정부에서 군사안보분야의 대통령보좌관시절에 얻은 군사지식에 근거해서 4월 22일 의문을 제기했다. 서재정 교수는 5월 20일 합동조사단이 조사보고서를 발표하기 직전 <프레시안>에 발표한 기고문에서 여러 가지 의혹의 근거를 제시하고 합조단이 이를 해명할 것을 촉구했으나, 보고서가 이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합조단의 주장 중 모순되는 부분들과 미흡한 부분들을 본격적으로 지적하기 시작했다.
합조단의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필자들은 2010년 6월 1일 '어뢰추진체'에서 발견된 불일치 현상(고온에서야 타는 외부 페인트는 소각되고, 저온에서도 타는 매직 잉크는 타지 않은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과학적 문제점들을 제기했다. 이밖에도 최문순 당시 민주당 의원, 이정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해상전문가 이종인대표, 노종면 기자, 양판석 박사, 정기영 교수등 예전에는 서로를 알지도 못하던 많은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자신들의 전문지식에 기반을 두고 사건의 진실을 찾았던 것이다. 6월초 한국을 방문했던 러시아조사단도 천안함 침몰이 북의 소행이라고 확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천안함 사건 초기 한국 내에서는 무수한 의혹이 제기되고 논란이 있었지만 북은 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3월 31일에는 중국 지안(集安)시와 합작으로 압록강 수력발전소 건설에 착수하고, 4월 9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2차회의를 진행하는 등 천안함 사건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일정을 이행했다. 심지어 5월 3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공헌하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치하하고, 양자는 "9.19공동성명의 입장에 근거해 한반도비핵화 목표실현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 이며 "6자회담 참가국들이 반드시 성의를 보여, 6자회담을 진전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합의하기도 했다. 즉 한국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지만 북은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었다.
천안함 사건을 무시하다시피 하던 북이 공식적으로 천안함을 언급한 것은 한국의 합동조사단이 보고서를 발표한 5월 20일이었다. 한국 측에서 공식적으로 "천안함은 북한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폭발의 결과로 침몰되었다"고 발표하자마자 북 국방위원회는 성명서를 발표, 이를 "모략극, 날조극"이라고 규정하고 "국방위원회 검열단"을 한국에 파견하겠다고 선언했다. 북의 이러한 성명서는 이미 한국에서 무수한 의혹이 제기된 이후에 나왔지만 한국에서 제기되던 구체적 문제점들은 지적하지 못한 채, 오히려 한국에서는 그 누구도 주장하지 않던 "모략극, 날조극"이라는 주장만을 내세우고 실현가능성도 없는 '검열단 파견'만을 선언했던 것이다.
북이 천안함과 관련한 입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소명한 '진상공개장'을 밝힌 것은 2010년 11월 2일이었다. 합조단의 1차보고서가 발표된 5월 20일에서 거의 반년이 지났고, 최종보고서가 발표된 9월 13일에서 거의 두 달이나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그동안 한국 언론에서 제기되었던 의혹들을 재탕하는 수준이었다. 어뢰 추진체의 부식과 관련해서는 "남조선의 한 해상전문가의 실험결과"를 인용했고, 언론과 국회에서도 지적이 되었던 열상관측장비(TOD) 문제 및 '1번'과 '방탄형광등' 등 네티즌들이 오래 전에 지적했던 의혹들을 재탕했다. 천안함 진상조사 언론보도 검증위원회가 지적했던스크류 변형 문제를 되풀이하는 한편, "미국과 카나다를 비롯한 여러 나라 물리학자들"을 인용하며 소위 '흡착물'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북 국방위원회가 공개한 '진상공개장'이란 것에는 심지어 표절의 의혹까지 있다. 다음의 두 문단을 비교해 보라.
"《1번》글씨는 페인트가 아니라 마지크같은것으로 씌여졌다. 지금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마지크에 사용되는 잉크는 크실렌, 톨루엔, 알콜로 이루어져있다. 매 성분의 끓음점은 138.5℃(크실렌), 110.6℃(톨루엔), 78.4℃(알콜)라고 한다. 따라서 추진체후부에 300℃의 열만 가해졌더라도 잉크는 완전히 타없어졌을것이다. 외부페인트가 탔다면 마지크로 씌여진 《1번》글씨도 타버려야 했고 그 《1번》글씨가 남아있다면 외부페인트도 남아있어야 한다. 이것은 과학이다. 그러나 고열에 견딜수 있는 외부페인트는 타버렸고 저온에도 타는 내부잉크는 남아있는 이러한 불일치는 입이 열개라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북 국방위원회 검열단 진상공개장, 2010년 11월 2일)
"'1번'은 페인트가 아니라 매직펜 같은 것으로 쓰여 있고, 그 잉크의 성분은 분석이 완료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잉크는 크실렌, 톨루엔, 알코올로 이뤄져있다. 각 성분의 비등점은 섭씨 138.5도(크실렌), 110.6도(톨루엔), 78.4도(알코올)이다. 따라서 후부 추진체에 300도의 열만 가해졌더라도 잉크는 완전히 타 없어졌을 것이다. 비등점이 이보다 높은 유성잉크나 페인트를 사용했더라도 어뢰 외부의 페인트가 타버릴 정도였다면 내부의 유성잉크나 페인트도 함께 탔을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외부 페인트가 탔다면 '1번'도 타야 했고, '1번'이 남아 있다면 외부 페인트도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과학이다. 그러나 고열에 견딜 수 있는 외부 페인트는 타버렸고, 저온에도 타는 내부 잉크는 남아 있다." (서재정.이승헌, "'1번'에 대한 과학적 의혹을 제기한다", <경향신문>, 2010년 6월 1일)
필자들이 2010년 6월 초에 경향신문에 발표한 기고문을 북한당국은 2010년 11월에 거의 그대로 옮겨 쓰지 않았는가. 북한의 최고기관이라는 국방위원회 검열단이 진상공개장이라고 발표한 것이 이 정도 수준이었기 때문에, 당시 한국 국방부도 "북한의 주장은 남한에서 제기된 의혹을 반복한 수준"이라고 일축할 정도였다.
필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천안함에 대한 정부 보고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의심이었고, 과학에 근거한 이의제기였다. 이에 비해 북한은 주체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기 보다는 많은 부분 한국 내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재활용했고 심지어는 한국에서 발표된 글을 표절하기조차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사실을 모두 부정하고 사실의 선후관계를 거꾸로 뒤집어 놓는 왜곡을 일삼고 있다. 이러한 왜곡은 합동조사단의 결론에 의혹을 제기한 러시아 조사단마저 '종북세력'에 포함시킨다는 외교적 결례마저 저지르고 있다.
이러한 왜곡의 정점이 "종북세력"이라는 색깔론이다. 과학을 부정하고 데이터를 조작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이제는 과학과 합리적 이성에 빨간 칠을 입히는 중세유럽식 종교재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중세 당시의 수구세력이 신봉하던 천동설이 과학적 데이터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갈릴레오를 처단하고 이단시한 17세기 유럽을 21세기 한국이 뒤쫓아 가고 있다. 무려 4세기를 퇴보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한국사회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언제 회복할 것인가.
▲ 천안함의 절단면. ⓒ프레시안(최형락)
*이 기고문은 14일자 <한겨레> '왜냐면' 코너(29면)에 실린 "이명박 대통령의 위험한 천안함 왜곡발언"을 필자들이 보다 자세히 보충, 확대해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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