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관련

천안함 민간조사위원과 나눈 대화 공개

道雨 2012. 7. 3. 16:10

 

 

 


          천안함 민간조사위원과 나눈 대화 공개

      "노인식 교수님! 2010년 5월27일에 찾아뵈었죠?"

(프레스바이플 / 박정원 / 2012-07-02)


저는 2010년 5월 27일에 교수님을 찾아뵈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뜨거운 현안으로 오른 천안함 문제에 대해 조언을 듣고자, 민간조사위원으로 참여하셨던 교수님을 찾아뵙게 되었고, 대전 시내의 한 일식집에서 전직 장관 한 분을 모시고 함께 식사했던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감청의 추억, 3시간여 녹음을 했지만….
 
그날 차마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워낙 예민한 사안인지라 한마디라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저는 제 스마트폰을 이용해 대화를 녹음했었습니다. 이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3시간여의 대화를 녹음했는데, 36분밖에 녹음이 되지 않았더군요? 얼마 전에 이 황당함에 대해 제가 칼럼을 하나 쓴 게 있는데 참고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사 바로 가기☞ 직접 경험한 감청의 추억 )

▲ 자료사진 기사와는 관계 없음

저는 교수님께서 녹음 방해를 직접 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녹음을 방해하는 장비가 그리 구하기 어려운 것만도 아니기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그런 장비를 작동시키실 수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화 중에 통화 등을 하게 되면 제가 녹음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도 있을 것인데, 당시 만남 중에 제게 걸려온 두 번의 통화 내용은 정확하게 녹음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스마트폰의 벨소리 기능을 무음 진동으로 한 상태에서 테이블 반대편에 앉아 계셨던 교수님께서 제게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미리 감지하고 실제 통화 전에 녹음 방해를 중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는 녹음 파일을 분석해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녹음이 중지되어 있다가 전화가 걸려와 스마트폰이 진동을 시작하기 직전, 정확히 말해 첫 번째 통화는 스마트폰의 진동이 시작되기 약 4초 전부터, 두 번째 통화는 1.2초 전부터 녹음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삼의 누군가가 제게 전화가 걸려오는 사실까지, 더군다나 제 스마트폰의 진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저보다 미리 알고 녹음 방해 전파 발신을 중지시켰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이는 우리의 대화를 누군가가 엿듣고 있었다는 것이고, 제 통화까지 감청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시 저는 교수님께 꽤 많은 질문 항목을 서면으로 드리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천안함 관련하여 인터넷이나 시중에 떠도는 의문점들에 대한 것들이었고, 이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셨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안 하시거나 모르는 부분이라는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제가 느꼈던 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교수님은 양심적인 과학자”라고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화 전체를 되짚어 보았을 때 최소한의 과학적 상식만 있으면 자신의 말이 허구임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답변을 주셨다는 점에서, 저는 교수님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폭발에 의한 선체 파괴는 맞다(?)
 
교수님께서 제게 주신 의견의 개략은,
 
폭발에 의한 선체 파괴는 맞다.
북한 공격으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설계도와 인양 부품이 같고, 1번이라는 표기가 있다는 것만으로.)
최소한 경계에 실패한 것은 맞는다고 생각한다.
합동조사단장이 육군 중장이라는 점에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모든 과정이 군 논리에 따라 운영되었다.
민간조사위원장은 재료 전문가로 전문성에서 어울리지 않았고, 실권이 없었다.
조사단은 4개 분야로 나뉘어 각각의 분야만 담당했다.
 ‘스모킹 건’ 인양을 기대하지 않았었다.
우측 스크루 휨 현상은 일반적 견해가 아니다.
조사위원 중에는 천안함 부품 제조업체(스크루, 스웨덴) 관계자가 있었다.
해군 쪽에서 직접 연락해와 조사위원이 되었다.
초기에 조사 기간 중 격리하겠다고 했으나, 반발한 일부 조사위원은 출퇴근했다.
발표 시기에 대해 조사위원들이 우려를 표명했었다.
정부의 신뢰 상실을 실감했다.
 
등이었고, 세부 사항에 들어가 여러 가지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은 일차적으로 폭발과 버블 효과 등에 대해 제게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제가 왜 교수님께서 일부러 어폐가 있는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했는지 밝히고자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교수님께서는 다른 무엇보다 "폭발에 의한 선체 파괴는 맞다."라는 부분을 유난히 강조하셨습니다. 거의 대화의 전제조건처럼 대화 초반에 말씀하셨는데요, 이어서 버블제트 현상과 맥동현상 등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2차대전 이후에 이미 직격 어뢰에서 근접 신관을 이용한 폭발 방식으로 변화되어, 버블제트 현상은 실례가 드물었을 뿐 일반화된 기술이며, 함저 3미터 아래에서 폭발 시 최대 효과가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250K 어뢰라면 지름 약 8미터 크기의 버블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버블의 발생과 확장 시 배를 빠른 속도로 들어 올리고, 이어서 빠른 속도로 수축하면서 배가 내려갈 때, 배 자체의 무게와 구조에 비례하여 심각한 충격이 가해진다는 것이고, 이런 현상을 반복하는 맥동 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라면서, 배의 중간 부분일 경우에는 배가 갑자기 솟구쳐 오를 때에는 배의 앞·뒤쪽 무게에 의해, 빠른 속도로 내려갈 때에는 중간 부분에 공간이 먼저 발생하는 현상으로 말미암아 배가 두 동강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버블이 이런 맥동 현상을 일으키면서 물 위로 오르다 함저에 닿는 순간 버블 내의 가스와 열이 출구를 찾아 위로 분출하면서 엄청난 충격으로 함저를 훼손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셨고, 아울러 이런 현상보다 먼저, 폭발과 동시에 충격파는 음속과 같은 속도로 천안함에 먼저 도달해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된다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맥동현상? 아직 의문은 남아 있고…. 

▲ 자료사진 기사와는 관계 없음

맥동현상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듣고보니 맥동현상이라는 게 별다른 건 아니더군요. 수중 깊은 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력에 의해 바닷물이 밀려 나가 버블을 형성하고, 다시 바다의 거대한 힘으로 버블이 줄어들면, 출구를 못 찾은 가스와 열이 다시 버블을 키우는 반복 현상을 일으키면서 서서히 수면으로 올라오는 현상이 맥동현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몇 가지 의문이 일었습니다. 폭발과 거의 동시에 바닷물이라는 매개체를 타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배에 전해졌을 충격파가 천안함에 치명적 타격을 먼저 주었을 것이라 하셨는데, 과연 천안함과 승무원이 충격파에 의해 어떤 손상을 입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고요, 말씀처럼 함저 3미터 아래에서 폭발했다면 맥동현상은 아예 일어날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250K 지뢰로 지름 약 8미터의 버블이 형성되었을 것이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반지름은 4미터, 함저 3미터에서 폭발했다면 맥동현상을 일으킬 시간도 없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름 6미터만 넘으면 바로 천안함 함저에 버블이 닿았을 것인데, 그렇다면 폭발과 거의 동시에 폭발력이 수면으로 분출할 출구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몸이 30Cm 이상 한번 뛰어올랐다는 증언들이 있다고 합니다. 증언 당사자마다 다른지 모르겠지만 배 또는 배 일부분이 빠른 속도로 아래로 내려앉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놀이공원의 자이로드롭에 앉아 있을 때를 상상해보면 내려앉아야 배로부터 위로 뛰어오른다는 느낌이 들 것이고, 반대로 선체가 갑자기 위로 올라 선체와 몸이 동시에 뛰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여하간 해당 증언은, 천안함이 아래로든 위로든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는 점만은 분명하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맥동현상이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반복적 충격이 천안함에 전해졌다면 자이로드롭이 아니라 바이킹을 타는 기분이었겠지요?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었다는 증언은 없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맥동현상으로 말미암은 충격은 없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어뢰가 분명하다면 충격파로 의해 천안함은 엄청난 내부 파손이 일어났을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그 현상에 의한 손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요? 최소한 고막 파열 정도는 기본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 상식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당시 선체의 파편 흔적 여부에 대한 질문에도 정확한 답변을 주시지 않으셨는데 이런 때 과연 선체에 파편 흔적이 없을 수도 있는 것입니까?
 
여러 가지 점으로 미루어, 저는 교수님께서 제가 알아들을 만큼 모순된 정보를 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당시 나눴던 대화 중,
 
안정기 골조 부분을 제외한 표면이 안으로 들어간 현상
절단면 함저가 휘어져 갑판에 닿은 현상
가스 터빈의 늦은 인양 경위
물기둥 문제
배 좌측 아래에서의 폭발로 배가 우현으로 쓰러져, 그나마 탈출할 수 있었는데 왜 함미는 못했는지
TOD 영상 문제
폭발음의 해수 흡수 부분과 함께 그 이후에도 백령도 주민이 폭음을 들은 사람이 없다는 점
침수가 진행된 상황에서의 항진 시 문제
소나돔의 손상 부분
스모킹 건의 인양 당시 정황
좌측 스크루에는 따개비가 있으나 우측 휘어진 스크루에는 붙어 있던 흔적만 있다는 것
스크루 휨 현상보다는 샤프트 손상이 먼저이지 않느냐는 반문에 대한 답변
팸플릿에 인쇄된 설계도와 비교 북한제 어뢰로 추정한 것이 과연 옳은가?
매직펜 글씨 부분에 대한 견해 등에 대해…, 제가 느꼈던 점들을 차례로 쓸 예정입니다.
 
아울러 가능하다면, 답변하지 않으셨던 질문들….
 
어뢰인 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답변을 번복했는데, 그렇다면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곳에 현직 대통령이 직접 방문할 수 있는가?
생존 장병에 대해 일반인이나 기자가 왜 개별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가?
4월 7일, 스티븐슨 주한 미국대사와 샤프 주한미군 총사령관은 왜 백령도에 갔는가?
한주호 준위가 작업한 해역은 용트림 바위 앞 제3부표 지점으로 함수와 함미가 침몰한 곳이 아니다.
미군 헬기가 인양한 물건은 무엇이고, 어디로 운반해 갔는가?
국방부 장관에 전달된 대통령 메모에서 언급한 ‘안 보이는 2척’은 무엇인가?
미, 한 양국 정부가 천안함의 침몰 직후에 ‘북조선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 가능성은 작다.’라고 발표한 이유는?
북으로부터의 공격이 있었다면, 교전이 있었다는 것을 바로 발표할 수 있었는데 발표하지 않은 이유는?
죽은 물고기떼의 부재 원인은?
소나(sonar)에서의 이상징후는 없었는가? (한국군의 관계자는 애초, 소나로 2킬로 앞의 어뢰를 감지할 수 있는 확률은 70퍼센트라 말했다가 이후, 현장 수심이 30미터로 얕아서 감지확률이 50퍼센트 미만이라고 번복.)
사망자들의 신체손상 형태는?
항적기록과 교신기록 비공개 이유?
폭발 원점의 해저를 조사했는지의 여부?
KNTDS 좌표와 해군 발표 좌표의 불일치 이유 등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도 마저 듣고,
 
나아가,
 
북한의 사정거리에 속한 백령도 근해에 독도함을 계속 정박시키는 것에 대한 조사위원들의 추가 공격 시의 피해 우려 등, 조사기간에 있었던 여러 가지 불합리한 정황들에 대해 말씀하셨던 교수님의 허심탄회한 고견 또한,
 
이제는 국민 여러분께 공개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입니다.
 

정부는  초월적인 존재입니까?

▲ 천안함(출처=AP통신)

저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어뢰인지 아닌지 하는 현실의 확인보다,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 의심할 자유마저도 빨갱이 취급하는 이런 행태들이 과연 민주주의인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의 말처럼 최소한 경계에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면 처벌받아 마땅한 데 무공훈장을 받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는 정부는 국민의 머리 위에 있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입니까?
 
어떤 토론에 나갔더니 상대 패널로 나온 교수님께서 "왜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느냐?"라고 질책하시더군요? “믿게 해야 믿을 수 있는 것”이라 답변했을 뿐인데 게시판에서는 저를 두고 빨갱이를 넘어 고정간첩이라는 글이 버젓이 올라 있었던 당시를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기가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바로 세워야 하겠습니다. 교수님!
 
저는 교수님을 믿습니다. 그날 교수님은 자신이 상식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들을 만한 인간으로 저를 평가하신 것이고, 저는 분명히 알아들어 이 정보를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공유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이 중대한 갈림길에 선만큼 훌훌 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두서없이 제가 먼저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전화 드리는 것도 교수님께는 고통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익히 알기에 이후 전화도, 메일 한 번도 보내지 않은 점, 충분히 이해해 주시리라 믿으며, 뵙게 되는 날에 사과의 말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박정원 / 편집위원

출처 : http://www.pressbyple.com/news/articleView.html?idxno=3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