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잊혀진 수학자 김담

道雨 2012. 10. 16. 10:33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이순지라면 누구나 다 알아도 김담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두 사람은 세종이 아낀 조선 최고의 수학자요 천문학자였다. 그들은 <칠정산외편>의 공동저자였다. 고려 충선왕 때 최신 역법인 ‘수시력’이 도입되었으나, 우리 조상들의 수학지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는 등 고급한 천문학적 과제는 손도 못 댔다. 이 난제를 해결한 것은 명나라와 아라비아의 역법까지 익힌 이순지와 김담이었다. 그러나 후세는 선배 과학자만 알아주고, 후배 김담에게는 무심하다. 이것이 바로 2인자의 슬픔이다.

김담은 경상도 영천 출신으로 젊어서 문과에 급제했다. 세종은 수학 영재였던 그를 대뜸 알아보았다. 김담은 집현전 학사로 발탁되어 마음껏 수학공부를 즐겼다. 그의 실력을 인정한 세종은 천문을 비롯해 세법과 측량, 제방 축조 등 수학지식이 필요한 분야라면 무엇이든지 믿고 맡겼다. 당대의 천문학자 이순지가 모친상을 당하자 왕은 김담에게 천문관측소(간의대)를 일임하였다(세종실록). 김담에 대한 세종의 신뢰는 각별하였다. 1449년 왕은 부친상을 당해 벼슬을 버리고 귀향한 김담을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그대의 재주는 세상에 드물기 때문이다’라며 서운부정의 직책을 주어 절대로 사직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 사실을 잘 알았던 윤필상은 훗날 성종에게, “옛날에는 김담이 역법에 정통했으나 이제는 그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탄식하였다(성종실록).

세종의 시대가 끝나자 과학기술에 관한 조정의 관심도 눈에 띄게 줄었다. 김담은 그저 한 사람의 문신이 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정통한 수학과 천문학을 그만두고,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나중에는 벼슬이 높아져 이조판서까지 지냈다. 하지만 수학자 김담이 그런 벼슬에 만족했을 것 같지 않다. 아무렴 후세에 길이 남을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는 것만 같았을까. 눈 밝은 지도자가 국운융성의 필수조건이다.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