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군 의혹(정치, 선거 개입)

그들은 출세 위해 경찰을 권력에 상납했다"

道雨 2013. 4. 25. 10:07

 

 

 

  "그들은 출세 위해 경찰을 권력에 상납했다"

 

커져가는 '윗선 수사방해·은폐 의혹'... 지휘선상 인사들에 의혹 쏠려

 

 

"권은희 과장이 조만간 양심선언을 할 거라는 얘기가 있더라."

지난 16일 만난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가 기자에게 귀띔해준 얘기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경찰이 한밤중에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고 발표했는데 당시 수사팀은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여러 개의 아이디로 댓글을 단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했다는 것이다. "변호사 개업까지 각오하고 있다더라"는 전언까지 덧붙였다.

이 관계자의 전언은 며칠 뒤 현실이 되었다. 지난 18일 수서경찰서에서 4개월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 권은희 당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언론을 통해 "경찰 고위층이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수사를 방해하고 은폐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국민의 눈 쏠려 있는 사건의 수사책임자 교체는 있을 수 없는 일"

▲ 국정원 직원 오피스텔앞 권은희 수사과장 대선을 며칠 앞둔 2012년 12월 11일 오후 국정원 직원 인터넷 불법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역삼동 한 오피스텔에서 국정원 직원이 문을 걸어 잠근 채 버티는 가운데 수서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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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과장은 사법시험 합격후 지난 2005년 경찰에 특채됐다. 이후 주로 일선경찰서의 수사과장을 맡으며 경험을 쌓았다. 그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 사건을 맡자 주변에서는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것이다"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도 "경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기자들에게 말할 정도로 수사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경찰은 검찰보다도 '외풍'이 거센 조직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2월 4일 권은희 수사과장이 교체됐다. 경찰청에서는 "정기인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 사건의 중요성을 헤아릴 때 수사 도중 수사 책임자를 교체한 것을 두고 '외압 의혹'이 일었다.

권 과장이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전보 조치된 지 두 달 반이 지나서 사실상 경찰의 최종수사결과가 발표됐다. 국정원 직원 2명과 민간인 1명이 지난해 8월부터 12월 초까지 인터넷에 올린 400여 건의 글 가운데 100여 건이 국정원법(9조 '정치관여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이 경찰의 최종판단이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에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에 관여한 것으로 보는 '적극적 의사 표시'나 '선거운동'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는 권 과장이 염두에 두고 있던 수사방향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는 교체되기 전인 지난 1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특히 대선결과와 직결된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드러나면 국정원이 단순히 국내정치에 개입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대선에 직접 개입했음이 인정된다. 이는 자칫 '선거무효 운동'을 불러올 수 있다. 경찰에서 권 과장을 교체한 것도 그가 이러한 혐의까지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현직 경찰관 모임인 '무궁화클럽'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 눈이 쏠려 있는 중대한 사건의 책임자를 교체한다는 것은 수사의 연속성 측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용판 전 청장, '한밤중 발표' 주도하고 권은희 전보조치해

경찰의 수사가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만 머물면서 '축소수사' 의혹이 일었고, 바로 이어 권 과장의 '양심선언'이 나왔다. 권 과장은 서울경찰청이 ▲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김씨에게 돌려주고, 그것의 최종분석자료를 넘기지 않으려고 했던 점 ▲ 김씨의 하드디스크 분석을 위한 키워드를 100여 개에서 4개(박근혜·새누리당·문재인·민주통합당)로 줄인 점 ▲ 김씨에게 허락받고 김씨의 컴퓨터에서 나온 문서를 분석한 점 등 구체적 정황을 내놓았다.  

경찰청 고위층이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 수사를 방해하고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이 권 과장의 주장이다. 특히 권 과장은 "(수사 과정에서) 경찰 고위 관계자가 수차례 전화를 걸어와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를 언론에 흘리지 말라'는 취지로 지침을 줬다"고 말했다. 경찰이 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는 선을 그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문제의 핵심은 권 과장 등 수사팀에 외압을 가한 '윗선'이 어디냐는 것이다. 지휘선상으로만 따지면 김기용 당시 경찰청장(퇴임)과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퇴임), 최현락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장(현 경찰청 수사국장), 이광석 수서경찰서장(현 서울지하철경찰대장) 등이 계선 상에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사는 김용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16일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한밤중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주도했고, 수사 책임자인 권 과장을 송파경찰서로 전보조치한 인물이다. 지난 2월 민주통합당은 그를 직권남용과 경찰의 정치중립 의무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대구 출신인 김용판 청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찰청장과 해양경찰청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지난 2일 퇴임했다. 특히 행정고시(30회)에 합격한 뒤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하다가 경찰로 자리를 옮긴 특이한 경력이 있어서 더욱 의심받고 있다.

한 경찰관계자는 "여야가 국정원 댓글 사건의 국정조사에 합의하자 이에 부담 느껴 자진사퇴한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한밤중 중간수사 결과 발표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운 점이 인정돼 사퇴 이후 경호실 차장으로 갈 거라는 얘기가 경찰 안팎에서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경찰 내부는 지휘부 성토 분위기... "출세 위해 경찰을 권력에 상납"

▲ 경찰, 대선기간 '국정원 정치개입' 확인 이광석 서울 수서경찰서장이 18일 오후 지난해 대선기간 발생한 국정원 직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 결과 국정원 직원과 공범인 일반인을 국가정보원법 위반(정치개입)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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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윗선'으로는 권 과장의 직속 상관이었던 이광석 당시 수서경찰서장(경찰대 4기)이 거론된다. 경북 포항 출신인 그는 '한밤중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실행한 인물이다. 수사가 부실한데도 불구하고 대선 직전인 지난해 12월 16일 무리하게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최근 단행된 경찰인사에서 서울지하철경찰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다른 경찰관계자는 "이광석 서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총경으로 승진한 뒤 지방 서장으로 갔다가 얼마 안 있다가 수서경찰서장이 되는 특혜 코스를 밟았다"며 "그가 서울지하철경찰대장으로 전보된 것은 일단 소나기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권 과장의 양심선언이 나오면서 경찰 내부에서는 수사를 방해하고 은폐한 인물로 지목된 김용판 전 청장과 이광석 전 서장 등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한 일선 경찰관은 "김용판 전 청장과 이광석 전 서장이 자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서 경찰을 권력에 상납했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한편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 사건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개인 고발·고소사건 등을 수사하기 위해 꾸려진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서 진행하고 있던 김용판 전 서울청장 등 경찰 지휘부의 수사방해·은폐 의혹까지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 구영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