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군 의혹(정치, 선거 개입)

국정원 사건, 모든 건 '그'로부터 시작됐다 , 정보기관원이 조폭 똘마니인가

道雨 2013. 7. 3. 14:35

 

 

 

 

     국정원 사건, 모든 건 '그'로부터 시작됐다

[사건의 재구성 ①] 국정원 대선 개입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나... '국정원' 상황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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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개입에 NLL까지... 정치에 뛰어 든 국정원 상황 일지 2일부터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조사가 시작됐다.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국정조사는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사상 처음이다. 국정원은 지난 2009년 2월 원세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 정치 현안에 대한 댓글을 달면서 불법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무단으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 큰 비판을 받기도 했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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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그로부터 시작됐다. 2009년 2월 12일, '원세훈' 이름 뒤에 '국정원장' 직함이 붙은 그때부터다.

"정치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신념은 임기 내내 그대로 발현됐다. 국정원이 정권의 하수인이 돼 옛 '중앙정보부'로 회귀 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다만 "국정원의 정치 중립이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해야 할 것"이라는 그의 다짐은 말에 그치고 말았다.

원 전 원장은 원장 자리에 앉은 직후인 2009년 3일, 국정원 심리전단을 독립 부서로 편제했다. 이들의 본격적인 활동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수면 위로 드러났다. 국정원 직원들은 '댓글 알바'가 돼 <다음 아고라> 등 정치 토론방에 노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노무현은 자살한 거지 영웅적 행위를 한 게 아니다", "왜 죽어서 후회하나, 좌빨 여러분 있을 때 잘하세요"라며 댓글을 남겼다. '악플러 되기'가 '국정원 요원'의 업무였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내부게시판에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통해 모든 직원과의 소통을 넓혀 갔다. 2009년 5월부터 시작된 감화 말씀은 2013년 1월까지 계속됐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두 달 앞 둔 4월 16일에는 "선거에 단일화하라는 게 북한의 지령이다, 일반 국민이 보기엔 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에 한나라당만 찬성하는 것처럼 돼 있으니 그런 걸 여러분이 중심을 잡고 일을 해주길 바란다"는 원 전 원장의 지시가 하달됐다. 이 같은 선거 개입 지시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정원 직원들은 지방선거 관련 글 72건 올렸다. 이 가운데는 한명숙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뇌물 수수 사건을 공격하는 글도 35건 포함됐다.

2012년 총선을 앞둔 2월에 원 전 원장은 "종북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한다, 야당이 되지 않는 소리를 하면 강에 처박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총선에서 야당 혹은 야당 후보를 비판하는 글을 32건 올림으로써 임무를 수행했다.

심리전단 직원들의 진가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발휘됐다. 9월 19일부터 12월 14일까지, 심리전단 직원 70여 명은 특정 후보를 지지·반대하는 글을 73건 올렸다. 선거 시기 외에 작성된 불법 게시글은 모두 1977건에 달한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발각된 후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백 개의 ID가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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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조사 받고 나오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4월 29일 오전 10시부터 30일 오전 12시 20분경까지 14시간여동안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서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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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 개입, 회의록 공개... "이명박근혜 세력이 만든 정권 연장 음모"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대선을 8일 앞둔, 지난해 12월 11일의 일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국정원 전직 직원의 제보로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의 오피스텔에 들이닥친다. 김씨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자신이 작성한 글과 댓글을 지워 나갔다. 당시만 해도 국정원은 "정치적 활동을 일절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와 새누리당은 "가녀린 여성을 감금하고 인권을 침해했다"며 국정원을 적극 옹호했다.

수서경찰서는 13일부터 수사에 돌입한다. 그리고 3일 만인 16일 "김씨가 양당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글이나 댓글을 게시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대선후보 마지막 TV 토론이 끝난 직후였다.

민주당에 따르면, 이 같은 경찰의 행태 뒤에도 국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12월 16일 국정원 정보관이 김용판 전 청장과 독대한 후, 새벽까지 댓글을 분석했던 서울청 사이버 수사대의 태도가 바뀌어 사건의 축소·은폐, 증거인멸 행위를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원 전 원장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실제 경찰은 증거를 은폐했고, 게시글과 댓글을 발견했음에도 이를 부정했다.

진 의원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12월 17일 국정원 회의에서 "박빙 열세가 박빙 우세로 전환됐다, 고생했다"는 격려 발언을 했다. 결국, 그대로 대선이 치러졌다.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108만 표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로써 끝난 줄 알았던 대선 개입 사건 파헤치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사건을 은폐하기 급급했던 경찰도, 선거가 끝나자 국정원의 대선 개입 정황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1월에서야 김씨가 대선 관련 글에 288회 추천·반대를 표시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에 국정원도 김씨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게시글을 작성했음을 시인했다. 물론 '대북심리전 차원의 활동이었다'는 해명이 뒤따랐다.

경찰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마자, 수사 지휘권은 검찰이 쥐게 됐다. 검찰은 원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소환 조사했다.

두 달여의 수사 끝에 검찰은 지난달 14일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직무 범위를 넘어서는 불법적 지시를 했고, 이에 따라 국가정보원의 심리전단이 인터넷 공간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선거운동에 해당하는 활동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각종 선거 과정에서도 불법적 지시를 반복했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김 전 청장에 대해서도 "국정원 범죄 혐의 유무를 왜곡하는 수사 결과발표문을 작성·배포하게 하고 이후에도 수서서 수사팀의 정상적인 수사진행을 방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원 전 원장과 김 전 서울경찰청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리고 2일,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조사가 시작됐다. 1961년, 중앙정보부가 만들어진 이래 50여 년 만의 일이다.

경찰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수사하는 중이던 지난 1월 원 전 원장은 마지막 '말씀'으로 "국정원의 할 일은 종북 세력 척결이며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서 국정 과제 지원은 당연한 업무로,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에 대해 자부심을 품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자부심'은 여전할까.

 

 

[ 고정미, 이주연, 선대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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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기관원이 조폭 똘마니인가

 

 

검찰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 지시를 실행에 옮긴 국정원 간부와 직원들을 전원 기소하지 않고 이를 외부에 알린 내부고발자만 불구속 기소했다. 이종명 전 3차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 ‘국정원 여직원’ 김요원(가명)씨 등 직원 3명과 외부 조력자 이아무개씨 등이 ‘면죄부’를 받았다. 고발되지 않은 나머지 심리전단 직원 70여 명도 모두 입건유예 처분했다. 검찰이 밝힌 이유다. “원장의 지시에 따라 범행했고 상명하복 관계의 조직 특성 등을 감안했다.”

 

»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가 지난 6월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안경을 매만지고 있다.한겨레 김태형
16년 전과 180도 다른 검찰의 판단

검찰의 이러한 판단은 대법원 판례에 어긋난다. 1997년 대선에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의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원세훈 전 원장처럼 공무원 지위를 이용해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낙선시키려고 재미동포를 포섭해 “김 후보가 김정일에게 돈을 받았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게 했다. 그럼에도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됐고 검찰은 권 전 안기부장 등 안기부 직원 6명을 안기부법·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일부 직원들이 “안기부는 엄격한 상명하복의 관계에 있는 조직”이라며 “강요된 행위라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1999년 4월23일 이렇게 판결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적법한 공무 수행 명령에 복종할 의무만 있다.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에 대한 반대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명백한 불법 명령을 직무상 명령이라 할 수도 없고 따를 의무도 없다.” 상명하복이 엄격한 조직이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안기부 직원의 정치 참여가 법률로 엄격히 금지돼 있고 권영해 전 부장의 의도를 다른 직원들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경력과 지위 등을 비춰보면 강요된 행위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권 전 부장(징역 5년)과 더불어 다른 직원들은 모두 유죄를 확정받고 안기부는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역사는 거꾸로 흘러 2013년 6월14일 검찰은 국정원의 상명하복을 인정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박주민 사무차장(변호사)은 “권력기관 직원들이 윗선의 불법적 지시를 잠자코 수행하면 보호하겠다는 암묵적 메시지를 담은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장정욱 참여연대 시민감시팀장은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조직폭력배와 공무원이 다를 바 없어진다. 제2의 원세훈·김용판(전 서울경찰청장)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의 국정원 직원 기소유예 처분에 불복해 민주당은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을 냈고 민변은 서울고검에 항고했다.

 

민간인 사찰 총리실 말단 직원에겐 실형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서 증거인멸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장진수(40) 주무관(7급 공무원)이 말한다. “나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가장 말단 직원에 불과했다. 윗선의 지시에 따라 증거를 인멸했지만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받았다. 국정원 직원도 실형을 받을 경우 나처럼 양심고백을 할지도 모른다. 사건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검찰이 고려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