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잡으려다 사람 잡는다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17> 우리는 왜 가습기살균제를 썼나
인간과 세균과의 전쟁 역사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그 시작은 비위생과 감염병(전염병)과의 싸움을 볼 수 있다.
페니실린을 비롯한 각종 항생제의 등장과 화학산업의 발달로 살균소독제가 값싸게 시장에 나옴에 따라 항생·항균제와 살균·소독제는 이제 의사나 방역당국 고유의 무기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곁에 두고 언제든지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특히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들어와서도 여전히 에이즈와 이로 인한 결핵의 재만연, 사스와 신종플루, 조류독감과 같은 신종 감염병 출현 등의 사태가 발생한다. 또 한때 수그러들었다 다시 유행을 보이곤 하는 홍역 등 재출현 감염병 등은, 방역당국을 긴장케 하는 것은 물론 지구촌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한국 언론도 이런 전통을 오랫동안 보여 왔다. 이런 보도 행태는 일반인들이 미생물을 극소수 병원미생물과 대다수 무해미생물로 구별해 대처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은 '세균·바이러스=무조건적인 적'이라는 공식을 구구단처럼 머리에 달달 외어 세균 없는 세상, 세균 없는 환경을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피부에 병을 일으키는 균은 피부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또 소화기 계통에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입으로, 호흡기 계통에 문제를 일으키는 미생물은 호흡기로 침투해야만 한다.
그 반대가 될 경우 또는 엉뚱한 곳에 들어가거나 붙을 경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프레시안(남빛나라)
이들 가운데 어린이가 있거나 병에 민감한 사람들은 한 달에 수십만 원의 비용을 들여, 온 집안과 집안 내 각종 용품에 살균제를 마구 뿌려댄다.
언론의 세균 공포 부추기는 언론이 할 필요가 없는, 아니 해서는 안 되는 비정상적 역할이다.
우리 손과 발, 몸, 옷, 입안, 장내(腸內)에는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난 수의 미생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바보처럼 잊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세균 죽이기 열풍은 너무나 지나쳐, 마침내 그 독화살은 사람의 생명을 한꺼번에 빼앗은 재앙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뒤늦게라도 세균 죽이기 열풍을 식혀야 하는데, 한번 달아오른 열풍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언제 다시 살균·소독제의 재앙이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악마가 되어 우리를 덮칠지 모른다.
세균을 죽이기 위해 가습기에 넣은 살균제는, 세균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산모 등 수많은 목숨과 건강을 빼앗았다.
특히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즉 사스의 위력은 대단했다.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처음 환자가 발생해 홍콩을 거쳐 2003년 3월 전 세계로 삽시간에 번졌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베트남, 한국 등 세계 곳곳을 강타했다. 그해 7월까지 세계 32개국에서 8096명의 감염자가 발생하고 774명이 사망했다.
한국은 첫 환자 발생을 두고 논란이 일었으나, 방역당국이 환자가 아닌 감염자라고 해 더는 논란이 확산되지 않았다.

▲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앞에 인천공항 검역소 직원들이 중국 청도지역 항공기를 통해 입국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열 감지기를 작동시켜 감염 의심환자를 가려내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2003년 12월 17일) ⓒ연합뉴스
1918년과 1919년 전 세계인을 최고 5000만 명까지 숨지게 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독감이 재현될 수 있다는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의 위험 증폭 겁주기와 맞물려, 방역당국은 텔레비전 등을 통해 손씻기의 생활화와 손 소독의 중요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공공기관과 사무실, 다중이용시설, 호텔 등에서는 층별로 액체 살균소독제를 비치해 직원과 손님 등이 수시로 손을 소독하도록 했다. 가정에서도 소독제를 따로 사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부 소독제 회사는 신종 감염병 때문에 한때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과학자들은 지구 최초의 원시 생명체가 세균일 것으로 보는데다 이 세균이 죽은 동식물을 분해해 각종 원소로 되돌려놓는, 그리하여 생태계가 온전히 순환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본다. 미생물이 없는 생태계, 즉 지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는 탄생과 더불어 세균과 함께 한 몸을 이루고 살아왔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피부와 몸에 세균을 지닌 채로 세상으로 나온다. 인간은 세균과 한 덩어리가 돼 평생을 같이 산다.
그리고 사람은 결국 죽지만 미생물은 살아 인간을 우주의 여러 원소로 돌려놓는다.
어떤 이들은 은나노 살균제가 화학살균제와는 완전 다를 것으로 보고, 즉 안전할 것으로 보고 가습기에 사용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살균력을 지닌 천연물질 농축액을 가습기 물에 타서 사용하고 있었다.
세균에 대한 두려움을 원초적 본능처럼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다.
하지만 청소를 매일 하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귀찮다. 또 가습기 물통은 청소를 효과적으로 하는데 쉽지 않은 구조로 돼 있다. 맞벌이로 인한 시간적 여유 부족과 편리함을 좇은 나머지 알약 하나를 넣거나 살균제 액을 약간 넣으면 되는 살균제는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에서만 가습기 살균제가 시민들의 필수 생활용품처럼 돼 널리 사용됐을까?
아무래도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세균에 대한 지나친 공포 문화, 특히 언론의 일그러진 세균 공포 심어주기가 그 원인이라는 대답이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가습기 살균제 재앙은 우리에게 세균을 올바로 바라보는 문화를 가꿔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한 교훈으로 남겼다.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 "쌍둥이 생명을 앗아간 '악마의 물질', 분탕질은 아직도…"
● 사망자만 144명, 가습기살균제가 갈라놓은 부부는…
● 아내와 아이 잃고 3번 자살 시도, 비극의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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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의료비·장례비 지원
◀ 앵커 ▶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지원기간은 5년이며 갱신도 가능합니다.
김정환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의료비 등을 지원하기 위해 절차와 방법 마련에 나섰습니다.
환경부는 '환경유해인자로 인한 건강피해 인정 및 지원 기준 등에 관한 고시' 제정안을 내일 입안 예고하고 6개월 동안 피해 인정 신청을 받기로 했습니다.
환경부는 신청자들을 상대로 건강 피해 여부를 조사해 심의를 거쳐 최종 지원 대상자를 결정합니다.
지원 대상자에게는 올 상반기 안에 의료비와 장례비가 지원됩니다.
의료비에는 검진과 치료에 쓰인 건강보험의 본인부담금 외에도 호흡보조기 임대비와 상급병실 차액 등 일부 비급여 항목도 포함됩니다.
지원 기간은 5년이지만, 건강 피해가 기간 내에 회복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신청을 통해 유효 기간을 갱신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결정했으며 올해 111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MBC뉴스 김정환입니다.
(김정환 기자 kjhwan1975@han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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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폐질환 원인..판매 중단 이후 환자 0명"
◀ANC▶
지난 2011년 10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것으로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최근 의약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판매가 중지된 이후 한 명의 어린이 피해자도 발견되지 않아서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일 가능성이 더 커졌습니다.
나윤숙 의학전문기자가 보도합니다.
◀VCR▶
11살 현성이 목에는 아직도 치료받은 자국이 선명합니다.
◀INT▶ 심명희/신현성 군 어머니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것을 2011년도에 알게 되었어요. 알고서 많이 힘들었었는데요. 죄책감도 컸었고.."
현성이의 폐기능은 한 때 100%까지 회복됐다가 커가면서 70%대로 떨어졌습니다.
이미 굳어버린 폐를 새로 자라난 폐조직이 대신해왔는데, 성장하면서 이마저도 부족해진 겁니다.
◀INT▶ 신현성
"다시는 입원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죽음까지 몰고갔던 당시 폐질환에서 살아남았지만, 이런 식으로 다시 증세가 악화되고 있는 어린이 환자들은 점점 더 늘고 있습니다.
6집 중 한집은 살균제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어떤 이유로 특정 환자에게 더 심한 증상이 나타났는지는 아직도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INT▶ 홍수종/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이 되었지만 아프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노출이 되고서 가볍게 지나간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대한 문제들은 앞으로 조사가 더 필요할 것 같고요."
그러나 의학계는 가습기 살균제의 판매가 중지된 이후 단한명의 어린이 환자도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의 원인일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밝혔습니다.
또 연구결과 어린이 환자 138명 중 58%가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는 어떤 질병보다 높은 치사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MBC뉴스 나윤숙입니다.
(나윤숙 기자 28chr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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