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관련

세월호 참사 '7대 원인' 정리해보면

道雨 2014. 4. 23. 18:36

 


 

 

      세월호 참사 '7대 원인' 정리해보면

 

데미안 (teri****)

 

 

 가슴이 답답할 때 우리는 바다를 찾아간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답답한 일상을 잊게 되는 이유다. 얼마 전까지 진도 앞 바다도 그러한 바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그 바다는 통곡과 눈물의 바다로 변질돼 우리에게 절망과 아픔만을 선사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일주일 동안 습관처럼 바라보게 된 텔레비젼 오른쪽 한 켠에는 구조자 174명이란 숫자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날이 지날수록 실종자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그 숫자에 정비례해 사망자의 숫자만 늘어나고 있다. 


'한 사람을 잃는 것은 한 세상을 잃는 것'이라고  하는데 지난 일주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상을 잃어버린 것일까. 참담할 따름이다. 절망의 바다를 다시 희망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 단 하나의  세상이라도 지상에서 다시 꽃 피우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어둠 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그들을 지상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하고 후속조처를 취하는 것도 소홀히 다룰 일은 아니다. 다시는 우리에게 이러한 아픔과 고통의 시간이 찾아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오늘은 다른 어떠한 것보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지금까지 밝혀진 원인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번 참사를 불러온 원인을 크게 7가지로 나누어 정리해봤다. 이 중 실체적 진실로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바 이들 모두는 대체로 설득력이 있는  사고 발생의 원인들이다.



문제1. 세월호는 침몰 전에도 숱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청해진 해운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뉴스타파>에 출연한 세월호 전 선원의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는 이번 사건 전부터 고장이 잦았다. 거의 한달에 한번 이상으로 고장이 났고, 엔진이나 스크류가 멈추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된 조처를 하지 않았고 땜질식 보수만을 반복했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과정에서 엔진이 멈추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으로 세월호의 조타수는 '조타기가 유난히 빨리 돌았다'며, 조타기 고장이 세월호 침몰의 주요 원인으로 보이는 급선회의 이유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만약, <뉴스타파>에 출연한 선원의 말이 진실이라면, 세월호 참사는 애초에 잦은 고장이 일어난 세월호를 제대로 수리하지 않은 청해진 해운에 의해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2. 청해진 해운은 안전 교육에 소홀했다. 그리고 한국선급은 지난 2월 세월호에 안전 적합 판정을 내렸다.

지난해, 청해진 해운은 접대비로 6057만원, 광고비로 2억 3000만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하지만 안전 교육에 사용한 예산은 고작 54만 1000원이다. 이 금액을 직원 숫자로 나누면 4610원이 나온다. 즉, 직원 1인에게 안전 교육을 하기 위해 1년 간 커피 한잔 값만을 사용한 것이다.

이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선원들이 안전 규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라는 말이 나온다. 이번 사고 전에도 선장을 위시한 선원들이 승객에게 해야 할 안전교육을 하지 않은 걸로 봐선, 그 동안 회사 자체의 안전교육이 부실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선급은 잦은 고장이 있었다는 세월호 전 선원의 주장과 다르게, 지난 2월 세월호에 안전 적합 판정을 내렸다. 조사를 해봐야 확실한 것은 알 수 있겠지만, 청해진 해운의 소홀한 안전 교육과 한국선급의 잘못된 판정이 이번 참사를 불러왔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문제3. 세월호는 출발 전 인가된 화물 적재량 이상의 화물을 실었다.

청해진 해운은 세월호를 일본에서 구입한 뒤 증설을 했고, 한국선급에 의해 준공 전 검사를 받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선급은 증축공사에 따른 구조변경 승인 조건으로 실시한 선박 복원성 계산 결과, 화물량은 2437톤에서 987톤으로, 여객은 88톤에서 83톤으로 축소를 지시했다. 선박 복원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평형수는 1023톤에서 2030톤으로 증가돼야 함을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 세월호는 2000톤이 넘는 화물을 적재해, 한국선급이 제시한 987톤에 비해 2배가 넘는 화물을 실었다. 평형수도 권고에 따라 증가시키진 않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맹골수도에서 선박이 급회전한 뒤, 복원력을 잃고 한 쪽으로 기울어진 채 침몰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문제4. 세월호는 각 지역의 VTS(해상교통관제센터)와 통신을 유지하지 않았다.

한국의 연안을 오가는 선박들은 구역별로 나뉘어진 VTS에 따라 각각 다른 주파수를 사용해, 그들과 연락을 취한다.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한 경우 VTS와 상황을 공유하고 빠른 구조에 나서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고가 난 진도VTS 관할 구역에 진입할 당시 세월호는 진도 VTS와 통신을 위해 주파수를 바꾸지 않았다. 관할 구역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통보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경우 진도 VTS에서 먼저 선박에 연락을 시도해야 하지만, 진도VTS도 역시도 사고가 나기 전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고 발생 후 세월호는 주파수가 맞춰져 있던 제주 VTS에 연락을 취했고, 다시 제주 VTS의 연락을 받은 진도 VTS가 세월호와 연락해, 상황을 판단하는데 11분이라는 시간이 낭비됐다.

이 11분이라는 시간이 선박 전복 시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5.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은 승객의 안전은 생각치 않은 채 사고 직후 도주했다.

선박이 좌초할 경우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 보호의 의무를 가진다. 하지만, 이번 사고가 발생한 후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만 아는 루트를 통해 탈출을 시도해, 승객보다 먼저 탈출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탈출의 과정에서 승객들에겐 제자리를 지키라는 방송을 거듭했다. 만약, 사고 발생 직후 승객들에게 구명동의를 제공하는 등의 안전조치와 함께 신속한 탈출을 이끌었다면, 이처럼 큰 참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6. 정부는 구조 첫날인 16일과 셋째 날인 18일 확보한 잠수 인력을 구조 활동에 제대로 투입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 관계자들은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구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입수한 해수부 보고서와 해경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16일 정부는 182명의 잠수부를 확보했지만, 3차례에 걸쳐 각 6명, 6명, 4명이 잠수를 시도하는 것에 그쳤다. 해상의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확보된 잠수 인력의 고작 9%만을 구조 활동에 활용했다는 점은 정부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문제7. 정부는 각종 구조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았다.

2012년 9월 진수된 해군의 수상구조함인 통영함은 지난해 10월 해군에 인도돼 실전 배치될 예정이었지만, 성능상의 문제로 지금까지 점검을 거듭하고 있다. 진수된 지 1년 7개월이 지난 기간 동안 성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에서 이러한 정부의 조처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지난 18일 에 출연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다이빙벨이라는 자신의 발명품을 소개하며, 구조 과정에서 이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장비를 사용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종인 대표가 장비를 싣고 사고 현장을 찾아갔지만, 안전상의 이유라며 장비를 수용하지도 않았다. 생때같은 아이들의 목숨을 구조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러한 대응을 하는 정부의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다. 


이 7가지의 원인 외에도 이번 참사를 불러온 원인은 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사고의 원인은 대체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적당주의' 그리고 '무책임'에 있다. 민간 부문만이 아니라 정부 부문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사고 발생 후 일주일이 넘은 이 시점에도 아직 많은 수의 실종자들이 깜깜한 바다 속에 갇혀 있다. 그들이 아직까지 생존해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부디 그러하길 바란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그 동안 성수대교 붕괴 사건,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 등 많은 대형사고가 발생했지만, 우리는 이 사고들 이후에 적합한 대안을 마련해 조처하지 못했고, 이는 또 다른 대형 사고의 발생을 불러왔다. 

정부는 이번 세월호 참사의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이와 같은 일들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후속조처를 취하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구조 작업의 과정에서는 단 한 사람의 생존자라도 발견돼, 통곡과 절망의 바다에 한 줌 희망의 싹이 피어날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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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화물 선적 미스터리, 추적해보니

[분석] '장삿속'에 희생된 원리원칙... 무분별한 규제완화가 화 불러

 

 

 

 

 

세월호 침몰사고가 9일째로 접어들면서 사고의 근본 원인을 놓고 다양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월호 운행사인 청해진해운은 폐선 직전의 배를 들여와 무리한 증축을 거쳐 운행했고, 정부의 안전관리 시스템에는 전반적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고 초기에는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배를 떠난 선장에게 책임이 쏠리는 분위기였지만, 점차 정부당국과 선박 업체의 실책에 무게가 실리는 양상이다.

영업이익 극대화 위해 '과다화물' 실어 

청해진해운은 이번에 침몰한 세월호를 운영하는 선박업체다. 지난 1992년에 사업을 시작해 2003년에 인천-제주항로에 6000톤급 여객선을 띄웠다. 현재는 이 항로를 독점하고 있지만 인천-백령도, 여수-거문도 등 다른 항로의 경쟁이 치열해 부채비율이 400%가 넘을 정도로 경영 성적은 썩 좋지 않다.

세월호가 이 회사 소유가 된 것은 지난 2012년 10월.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18년 동안 여객선으로 운행됐던 세월호를 116억 원에 수입해 객실을 증설하는 등 배 구조를 고쳤다. 804명의 여객을 태울 수 있었던 배는 증설 후 탑승인원이 921명으로 늘었고 무게는 230톤 이상 증가했다.

건조 당시의 설계와 배 구조가 상당부분 달라지면서 배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졌다.

우선 배의 무게중심이 11.27m에서 11.78m로 51cm 높아졌고 적재 가능한 화물 무게도 구조변경 전 2437톤에서 987톤으로 급감했다.

배의 복원성을 유지하기 위해 넣어야 하는 '평형수'는 기존 1023톤에서 2배 가량 증가한 2030톤이 필요하게 됐다. 복원성은 배가 기울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능력을 말한다.

세월호 구조변경 심사를 맡았던 한국선급은 복원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화물을 987톤 이상 실으면 안된다고 진단했지만, 사고 당시 세월호에 실린 화물 총 무게는 그 세 배 이상인 3608톤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배는 복원성을 잃으면 좌우로 전복되기 쉽다. 선장의 통솔 문제를 떠나 애당초 과다 화물이라는 '폭탄'이 배에 탑재돼 있었다는 얘기다.

청해진해운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과도한 화물을 실으면서도 인건비는 비정규직 선원 채용 등을 활용해 알뜰하게 줄이는 경영을 했다. 세월호 승무원 29명 중 15명이 6개월에서 1년짜리 계약직이었고, 월급도 다른 선박회사에 비해 60~70% 수준으로 낮았다.

허술한 운항관리...배경은 해수부 '낙하산'

어떻게 규정보다 3배 이상 과도한 화물이 배에 실렸는데도 세월호는 출항할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세월호가 화물을 더 싣는 대신 복원력 유지에 필요한 평형수를 제거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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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승객에 대한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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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대형 선박의 외벽에는 선체가 수중에 잠길 수 있는 최대 깊이를 나타내는 '만재흘수선'이라는 기준이 그어져 있는데 이 선보다 선박이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출항 자체가 불가능하다. 세월호는 이 선을 맞추기 위해 늘린 화물만큼의 평형수를 뺐을 거라는 분석이다.

이같은 운항이 가능했던 이유로는 허술한 선박 운항관리가 원인으로 꼽힌다.

원래는 해운조합에서 현장검사를 통해 배의 화물 적재량, 선원 수, 승객 수 등을 점검하도록 되어 있다. 이번 세월호의 경우 이아무개 선장이 그같은 사항들을 허위로 적어서 제출했지만, 해운조합이 현장점검 없이 출항 승인을 내 준 것으로 확인됐다.

전반적인 감독 해이의 배경으로는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가 지목된다.

한국선급과 해운조합에 대한 관리감독권은 해양수산부에 있지만, 이들 민간업체들은 해양수산부 출신 퇴직 간부가 재취업하는 곳이라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23일부터 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을 압수수색하고 관계자들을 소환조사 중이다.

폐선급 선박, 여객선으로 둔갑시킨 MB정부 규제완화

정부의 규제완화도 도마 위에 올랐다.

원래는 최대 20년이던 여객선 운행가능 선령을 정부가 최대 30년으로 늘려주면서, 폐선되어야 할 세월호가 버젓이 국내에서 영업선으로 둔갑했다는 지적이다.

MB정부는 지난 2009년 해운법 시행규칙을 이같이 개정했다.

세월호의 선령(배 나이)을 보면 이런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통상 여객선의 퇴역시점은 건조 후 20년 정도. 세월호는 선령이 18년일 때 국내로 도입됐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해주지 않았다면 이같은 영업은 불가능했을 거라는 계산이다.

청해진해운이 금감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이 업체는 이 배를 10년 이상 더 쓸 계산으로 객실을 늘리는 등 대대적인 증설공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해양수산부의 '규제개혁 추진자료'에 따르면, 국내 연안지역을 운행하는 선박에 대한 정부의 안전관리 규제는 앞으로 더 느슨해질 전망이다.

원래는 선장에게 배의 안전관리체제를 검사해 보고서를 작성할 의무를 지웠었지만, 지난해 6월부터는 관련 규제가 폐지됐다.

현재는 선박회사가 임명한 안전관리책임자가 한 달에 한 번 배를 방문해 점검하는 것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선박회사가 배를 구입했을 때 받는 최초 인증심사 절차도 축소됐다.

선장이 휴식할 때 1등 항해사 등 다른 선원들이 선장 업무를 대행하는 것도 내년 1월부터는 전면 허용된다. 이번 세월호 사고 당시 이아무개 선장은 출항 후 12시간 중 7시간 이상을 경력 4개월의 3등 항해사에게 맡겨두고, 침실에서 보낸 것으로 밝혀져 비판을 샀다.  

 

[ 김동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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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부실검사' 한국선급, '대한민국 창조경제대상' 수상

  선박안전기술공단도 무더기 수상

 

 

세월호 부실 안전검사 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한국선급이 지난해 박근혜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창조경제 최고경영자(CEO) 기술혁신 대상’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문화일보>에 따르면 지난 2월 세월호의 설비 및 장비에 대한 안전검사를 실시한 뒤 ‘적합’ 판정을 내려 ‘봐주기 부실검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국선급은,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동반성장위원회 등이 공동 주최한 ‘2013년도 대한민국 창조경제 CEO 기술혁신 대상’(7월)과 ‘국가생산성 대상 인재개발 부문 산업부 장관 표창’(9월) 등을 잇따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한국선급과 함께 정부의 선박검사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선박안전기술공단은, 지난해 안전행정부의 ‘재난관리 유공 국무총리 단체 표창’, 국민권익위원회의 ‘반부패경쟁력평가 우수기관’, 해양수산부의 ‘공공기관 공직복무관리평가 매우 우수 기관’, 고용노동부의 ‘일터혁신 우수사업 대상’, 기획재정부의 ‘5년 연속 고객만족도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무려 6개 정부 기관으로부터 상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이들은 선박 안전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검찰이 한국선급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하는 등, 비리수사가 진행중이다.

 

이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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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의 뻔뻔한 거짓 해명, ‘먹통’ 경보시스템은 세월호 탓?


해경이 구축한 ‘지능형 해상교통관리 시스템’이 세월호의 이상 징후를 감지하지 못한 이유가 세월호에 시스템 단말기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해경 측의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또 위험 경보가 각 지방해경청 등에 자동으로 전파되지 않은 이유가 실제로는 시스템 부실 때문이었으나 해경은 그 책임을 세월호 탓으로 돌리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해경은 지난 2012년 3월, 인천에 있는 해경본청에 ‘지능형 해상교통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모든 해상 선박의 위치와 운항 정보를 기초로 사고 위험을 사전에 예측해 해당 선박은 물론 지방 해경청과 구조기관, 정부와 지자체에까지 위험 경보를 자동 전파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당시 해경 보도자료에 따르면 선박 간 충돌 뿐만 아니라 항로 이탈과 ‘갈지자 항해’까지 실시간으로 감지해 위험 경보를 보내줄 수 있는 것으로 돼 있다. 


해경은 현재도 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세월호가 급선회하며 항로를 이탈했던 16일 오전 8시 48분 무렵, 해경본청에서 지방청과 구조기관 등으로 위험 경보가 자동으로 전파돼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해경은 세월호가 150만 원 짜리 단말기를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던 바 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이 해명은 거짓말로 확인됐다. 이 시스템 입찰에 참여했던 한 업체 관계자는 해경이 말한 단말기는 시스템이 파악한 위험 정보를 해당 선박이 수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을 할 뿐, 유관 기관에 자동 경보를 전파하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도 항로 이탈에 따른 위험 상황은 AIS, 즉 선박자동식별장치만으로 감지할 수 있으며, 세월호에 단말기가 없었다 해도 해경본청에서 각 지방 해경청과 구조기관, 지자체 등으로 일제히 위험 경보가 자동 전파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해경이 세월호의 단말기를 문제삼은 것은, 지능형 관제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된 책임을 세월호 탓으로 돌리려 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 당시 해경본청의 지능형 시스템이 자동 경보를 보내지 않은 이유는 시스템 자체의 부실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황이 제기되고 있다.





해경은 2012년 이 시스템을 구축한 직후부터 실효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것으로 전해졌다.


항로를 약간 벗어나거나 악천후의 영향으로 조금씩 흔들리는 것도 위험 상황으로 인식해 자동 경보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경보가 울렸지만 알고 보니 별 문제가 없는 이른바 ‘양치기 경보’들이 대부분이다보니 웬만한 경보들은 무시하게 됐고, 아예 자동경보 기능을 꺼놓는 일이 잦았다는 제보도 있었다. 그래서 해경 직원들 사이에선 지능형이 아니라 ‘저능형’ 시스템이라는 농담도 흔하게 오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타파는 이번 세월호 사고 당시 지능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뭔지 확인을 요구했지만, 해경은 계속해서 대답을 피했다. 


무려 22억 원을 들인 해경의 지능형 관리시스템이 본래 설계대로 가동됐다면 세월호의 초기 구조 시간을 20분 가까이 앞당길 수도 있었던 만큼, 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됐는지 여부에 대해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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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앙의 씨앗...선령 규제 완화

 

 

 

 

 

세월호 참사는 이명박 정부때 충분한 검토와 보완 대책 없이 시행된 규제개혁에서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취임 초기부터 몰아부친 규제완화 정책 중에는 해운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연안여객선의 사용가능 기간 연장, 즉 선령 규제 완화가 포함돼 있었다.


해운사들이 선령 규제를 풀어 달라는 민원을 제기하자, 청와대와 국민권익위 등은 이를 곧바로 담당부처인 국토해양부에 보내 개선책 마련을 지시했고, 불과 6개월만에 국토해양부는 시행규칙을 바꿔 최대 25년이었던 선령 제한을 30년까지 늘려 줬다.


선령제한으로 해운사들이 주장한 업계 손실은 연간 200억 원이다. 결국 국민들의 편익과 전혀 관계가 없는 해운사들만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일사천리로 풀린 규제가 결국 여객선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청해진해운의 세월호의 수입은 선령 제한 완화가 중요한 동기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장부가 126억 원을 들여 2012년 수입 된 세월호는 일본에서 건조된 지 18년이나 된 노후선박이었지만, 선령제한 완화로 12년을 더 운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령제한 완화는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국내 연안여객선의 노후화를 더욱 심화시켜 안전성에 위협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만 하더라도 선령이 15년 이상된 연안여객선은 전체의 30%였다. 그러나 선령제한이 30년으로 완화된 현재 15년 이상된 선박의 비중은 전체 선박의 63%로 5년 만에 두 배 넘게 뛰었다.


선령제한의 완화는 어떻게 진행돼 왔을까?





2006년 10월

해운조합은 서울대 해양시스템 연구소에 의뢰해 '현행 여객선 선령제한의 적정성 판단 및 개선방안 연구'.라는 보고서를 만든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관리기관이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안전성만 확보한다면 여객선의 선령을 굳이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당시 경영난을 이유로 선령제한 완화를 요구하던 해운조합의 이해와 맞아 떨어진 것이다.


2008년 5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선진인류국가를 향한 국민권익 증진 실천계획'을 골자로 업무를 보고한다. 민원 제기가 많은 법령을 찾아 규제를 정비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고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주관으로 행정규칙 개선을 위한 TF팀이 구성된다.


이때 선령제한 완화도 검토 대상으로 국토해양부에 전달된다.





2008년 8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국토해양부는 규제를 풀어야 할 개선과제 94건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여객선의 선령 완화 등 선령 제한 제도의 합리적 개선'이란 과제도 포함됐다. 현행 20년 (20년 이후 정기 점검을 통해 5년을 더 운항할 수 있음)년에서 30년으로 선령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으며, 이럴 경우 연간 200억원대의 기업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보고한다.


2008년 9월

선령제한 완화를 위한 최종 연구보고서가 나온 시점이다. 국토해양부는 대통령 보고 후 곧바로 산하기관인 '한국해양수산연수원 부설 선박운항기술연구소'에 연구 용역을 발주한다. 이 연구보고서도 역시 선령제한은 개선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국책연구기관도 아닌 국토부 산하 기관의 부설 연구소가 당시 정부의 분위기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다만 선박검사 제도를 보완해 노후 선박에 대해 엄격한 검사 지침을 적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09년 1월

국토해양부령 제 91호 해운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이 고시된다. 이에 따라 여객선은 최대 30년까지 운항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된다.


이로부터 5년이 흐른 지난 4월 16일. 승객과 선원 476명을 태운 대형 여객선 세월호는 총체적 부실을 안은 채 침몰한다. 정부와 연구보고서가 강조했던 안전 강화는 현실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2008년 작성된 최종 연구에서 선박검사 등 안전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은 선령 완화가 연안여객선의 노후화를 심화시킬 것으로 예견했다. 여객선 사고는 많은 인명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200억원대의 경제적 이익은 단 1척의 사고만 발생해도 물거품이 되고 사회적 비난도 우려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일사천리로 진행된 MB식 규제 개혁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월호 재앙의 씨앗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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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침몰원인] 진실에 입다문 정부와 KBS 왜?
진실이 궁금하다, 세월호의 침몰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장유근 | 2014-04-30 09:44: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의 진실이 궁금하다
-진실에 입다문 정부와 KBS 왜?-

 

 

세월호의 침몰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사진 한 장을 앞에 두고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묻고 있다. 언제인가 이런 날이 오고 말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 눈 앞에 닥치자 마치 꿈을 꾸는 듯 하다. 뭐가 진실이며 거짓인지, 진실이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거짓이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사실이 처음으로 알려지자, 공영방송의 이름을 걸고 내 보낸 KBS의 트위터 글 속에는 “세월호가 07시 20분부터 침몰이 시작됐고, 수중탐색이 재개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가 내 보낸 침몰시간(8시 58분) 보다 무려 1시간 38분 정도의 차이가 난다. 누군가 장난을 쳤다는 말인가. 그것도 타이틀을 내걸고…?

세월호 참사가 열나흘째를 맞이하면서 필자부터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터넷 포털에 올라온 표정들을 살펴보면 적지않은 우리 국민들이 패닉현상을 겪으며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같은 분노의 원인은 여럿 있을 수 있겠지만, 사고 초기부터 세월호의 침몰소식을 전하고 있었던 언론이 주범(?)이 아니었나 싶은 것. 특히 세월호 침몰 직후 방송 3사가 보여준 ‘대국민 기망쇼’는 가뜩에나 실의에 빠진 유가족과 국민들의 의혹을 증폭시켰을 뿐만 아니라 분노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이 소설을 쓰고 있었다고나 할까. 사실이 왜곡.호도된 내용이 전국에 방송되면서 세월호 침몰사고는 점점 더 사건으로 변질되고 비화되기 시작한 것.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 과정을 놓고 정부를 심히 불신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세월호 침몰시간 그 중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트위터를 통해 전파된 세월호 침몰시간을 참조하면 정부가 내 보낸 침몰시간(8시 58분) 보다 무려 1시간 38분정도의 차이가 나는 데, 이 같은 시간차는 정부 당국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강한 의혹을 낳기에 충분한 내용이다. 따라서 <연합뉴스>에서는 세월호 선원의 증언을 통해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시점이 오전 7시 40분께이며, 어민들이 배가 멈춰 있었다고 증언한 시점인 오전 8시라서 이전 위치 보고 교신 시각과 내용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쇄기를 박고 있는 것.
<출처: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4/25/0200000000AKR20140425180600056.HTML?input=1179m> 정부의 발표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세월호는 침몰 직전에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었을까.

 

 

 

세월호의 침몰원인에는 여러 가설이 있었다. 사고 초기에는 암초충돌설과 구조결함설 및 구조변경설,변침설(헝로변경설) 심지어 내부 폭발설은 물론 복합원인설과 느슨한 결박설, 과적 및 선체결함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 원인들은 주로 세월호의 항적 중 일부분(침몰 전의 상황)을 생략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 바 침몰원인 가설 중에는 <선체결함설>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세월호의 선체결함설은 최초로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으로부터 제기 됐는 데, 세월호가 어떤 이유 등으로 선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발라스트 탱크(평형수)에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것. 그 문제는 특정 지역에서 암초 등에 스쳐 선저에 파공이 생기면서 침수가 발생한 경우의 수가 있었다. 신 전 위원은 항해학을 전공한 항해사 출신이자 선박을 건조한 경험이 있는 선박전문가였다. 따라서 신 위원의 추론이 탄력을 받으려면 선체가 인양되기 전에 세월호 관계자들로부터 사실 여부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 예상은 적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월호에 승선한 적 있는 전 기관사들의 증언이 있었다.

“물이 한쪽으로 실리는 경향이 있어요. 한 번 물을 딱 맞춰 놓으면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

세월호는 발라스트 탱크에 문제가 있다는 것. 이같은 증언은 JTBC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아울러 세월호는 평형수 시설이 2월에 수리를 하고 안전점검까지 받아 통과했지만, 그 이후에도 ‘선원들은 전혀 고쳐진 바가 없다’는 말을 언급한 것이다. 따라서 인천발 제주행 세월호가 순항을 하며 진도 앞 바다 맹골수도 해역에 도착할 때 쯤 선체의 균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닐까. 그 때 시각이 대략 오전 7시 20분부터 였으며 침몰되기 1시간 전인 7시 40분경부터 이미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게 KBS와 연합뉴스에 드러난 보도사실이었다. 경악할 일 아닌가.

다년간 눈에 익은 항로로 항해한 선장과 승무원은 자신은 물론 승무원들과 승객들의 안전사고를 대비해 조난신호를 보내 구조를 요청하는 건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었다. 따라서 SNS에서는 이러한 상식적인 판단과 후속조치(구조)에 대해 사실을 전달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뭉기적 거리거나 회피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무한 떠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아니 ‘의혹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으면 관계 당국은 8시 55분 이전에 세월호와 교신한 내용 전부를 공개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켜야 마땅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열사나흘동안 세월호 참사 현장을 생중계 해 온 친정부 방송과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며 소설 쓰듯 현장의 상황을 마음껏 부풀리거나 왜곡 하는 등 수법으로 국민적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팽목항 현지에서는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연합뉴스 홍창진 기자에게 퍼부은 욕설이 국민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거짓 보도를 일삼은 홍 기자와 연합뉴스에 대해 분노를 폭발 시킨 게 국민적 이슈로 떠오른 것. 그렇다면 친정부 언론과 정부는 왜 진실을 덮으려고 한 것일까.

 

*자료사진은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방송을 켑쳐해 둔 것.

 

 

주지하다시피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는 사고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인 대응 단계는 물론 예방, 대비, 복구 단계에서도 ‘위기관리에 관한 정보와 상황을 종합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돼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맨 먼저 가동돼야 할 곳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예컨데 세월호가 사고해역에서 맨 먼저 선박의 이상징후를 발견한 즉시,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이 사실을 즉각 위기관리센터로 보고하고, 국가안보실은 사태의 심각성 등을 고려하여 군.경은 물론 민간인까지 총출동해 구조에 임했어야 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첫날,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은 ‘위기관리센터에서 구조현황을 파악’하는 것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 길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직무를 유기하고 사고를 방치한 중대한 범죄와 다름없는 일을 청와대에서 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 국민들이 청와대 홈피 등을 통해 정부는 물론 대통령의 존재가 국민들에게 백해무익함을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인터넷에 로그인 하는 순간부터 혹은 TV를 켜는 순간부터, 진실을 알고자 하는 노력이 얼마나 힘든 지 실감하고 있는 사회라면 그건 비정상이다. 특정 사건에 대해 합리적 의혹을 가지는 것부터 통제하거나 통제되는 사회가 '자유민주주의국가'라면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나라에서 어떤 희망을 안고 살아갈까. 세월호 침몰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씻어내지 못하는 한 그 누구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며칠 전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의 외침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넌 내 후배였으면 죽었어… 연합뉴스 기자 개XX, 니가 기자야 개XX…”

이 같은 일이 연합뉴스에 국한된 게 참 미안한 일이기도 할 것. 대한민국의 언론사 내지 기자들이 정부의 나팔수가 된 지 꽤 오래되었다면, 그건 언론인들의 해묵은 관행 혹은 관습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연합뉴스가 사과한 이상호 기자를 '고소하겠다'는 겁박질까지 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언론의 헛발질 등에 대해 ‘사과 안 하는 언론’은 반드시 퇴출 시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 일을 애국 네티즌들이 앞장 서 주길 바란다. 세월호 침몰원인을 밝히는 노력에 앞서 수렁에 빠진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매우 귀중한 일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5&table=dream_jang&uid=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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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세월호 의구심, 천안함 보다 심각하다
SNS 유언비어 단속하겠다 겁주는 자체부터 수상했다
SURPRISE | 등록:2014-04-30 10:47:16 | 최종:2014-04-30 11:32:5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의구심, 천안함 보다 심각하다


(WWW.SURPRISE.OR.KR / 두루객 / 2014-04-29)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것이 아무리 4개월 경력의 항해사라지만 그 정도의 상식도 모르고 항해사 자격을 가졌을까?

선장에게 모든 책임으로 몰고가려는 정부와 언론의 태도도 수상하다.

생존자 증언이나 kbs 뉴스 보도를 7시 20분경에 봤다는 사람들, 뉴스타파 입수의 상황보고서를 보나 사고발생 시각을 조작하는 정부의 태도가 수상하다.

7시 15분에서 8시 55분까지 정부는 무엇을 하려고 숨겼을까? 왜 진도가 아니고 제주도로 교신을 하려 했을까? 과연 선장 스스로의 결정으로 나홀로 탈출한 것일까?

조타실 통제는 과연 누가 했을까? 여객선 탑승수는 왜 오락가락 하다못해 불투명한가?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정부 측 기관이 세월호를 뒤로하고 다른 위치에서 무엇인가를 조사했다고 한다. 무엇이었을까? 왜 민간 잠수부의 투입을 거부했을까?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강병규 안행부 장관이 처음부터 SNS 유언비어를 단속하겠다고 겁주는 자체부터 수상했다.

남재준은 지금 웃고 있겠지요?

[한겨레] 생존자 “7시45분에 쿵소리” 증언…8시 전에 사고 발생?

어민 “7시~7시30분 배 정지 목격” 최초 신고시간보다 1시간여 일러

세월호 사고 생존자들은 세월호가 ‘쿵’ 소리와 함께 기울기 시작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부 생존자는 이 ‘쿵’ 소리를 정상 운항 시간으로 알려진 16일 오전 8시 이전에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어 사고 발생 시각에 대한 논란을 키우고 있다.

구조된 정아무개(16)양은 “여객선 2층 방 안에 있었는데 ‘쿵’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배가 기울기 시작했고, 밖에 나와 보니 나를 비롯해 아이들이 중심을 못 잡고 휘청휘청하다가 넘어졌다”고 증언했다. 세월호 승무원 전아무개씨는 “당직 교대를 위해 기관일지를 쓰던 오전 7시45분께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쿵’ 소리는 세월호가 화물과 차량이 한쪽으로 쏠릴 만큼 급격한 회전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 선체 복원력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실제 해양·조선 전문가들은 세월호의 침몰 원인으로 변침(선박이 진행 방향을 트는 것) 구간에서의 미숙한 운항과 이로 인한 적재 화물의 쏠림을 지목하고 있다.

​합동수사본부 역시 뱃머리를 급히 틀다 적재한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균형을 잃은 것을 유력한 사고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 알려진 ‘정상 운항’ 시간인 오전 8시 이전에 ‘쿵’ 소리가 나고 배가 크게 흔들렸다는 증언도 일부 나오고 있어, 실제로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신고 시각(오전 8시55분)보다 훨씬 앞설 것이라는 추정이 이어진다.

​최초 신고가 접수된 오전 8시55분보다 크게 앞선 시점에 세월호가 사고 해역 부근에 멈춰 서 있었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사고 해역 인근인 관매도에 살고 구조에도 나선 한 어민은 언론 인터뷰에서 “바다로 미역을 따러 나가는 시간이 아침 6시30분이니 내가 바다에서 그 배를 본 것이 아마 7시에서 7시30분쯤이었을 것이다. 하얀 배가 가만히 있기에 왜 그러나 싶고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 외에 별다른 특이점이 안 보여 그냥 마을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 박기용

뉴스타파, 세월호 침몰 상황보고서 입수... 발생일시 20여 분 일러

세월호의 사고 발생이 목포해경에 신고된 것보다 30분 이상 앞섰다고 기록된 상황보고서를 뉴스타파가 입수했다.

진도군청 상황실이 작성해 전라남도 상황실에 보낸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보고서를 보면 사건 발생일시가 지난 16일 오전 8시25분이라고 기록돼 있다. 목포해경에 구조신호가 접수된 오전 8시 58분보다 33분 빠른 시각이다

​또 해양수산부가 AIS, 즉 선박자동식별장치분석을 통해 세월호에 문제가 생기면서 급선회했다고 추정한 오전 8시 48분보다도 23분 빠른 것이다.



이 보고서는 안전행정부를 거쳐 중앙재난대책본부에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진도군청의 공무원은 당시에 워낙 많은 곳에 문의를 해 어디로부터 얻은 정보인지 기억할 순 없지만 들은 사실대로 사고발생 일시를 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적힌 발생 일시가 사실이라면 사건 발생 시점과 실제 신고가 접수된 시각 사이엔 무려 33분의 차이가 나고 초기대응이 그만큼 늦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뉴스타파 취재결과 정부는 민간 잠수부들을 투입했다가 사고가 날 경우 뒷감당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민간 잠수부의 투입을 꺼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해수부와 해경이 또다른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하는데 따르는 부담 때문에 민간 잠수부의 투입을 자제시켰다고 취재진에 밝혔다.

​진도군의 상황보고서를 보면 민간 잠수부는 사고 발행 후 만 하루가 지난 17일 오전 8시 반 경에야 처음으로 투입된 것으로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잠수부 5백 명이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고 강조해 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은채 민간인 잠수부의 투입까지 막아 구조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난을 실종자 가족으로부터 들어왔다.

지난 사흘간의 실종자 수색과 구조 과정을 보면 사고 초기에 정부가 활용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신속하게 투입했는 지에 대해서 여전히 아쉬움이 남고 있다.

​ⓒ 뉴스타파 (http://www.newstapa.org/)

☞ 위 두 기사에서 보도한 사고발생 시각이 서로 다르나 동시에 일맥상통한다. 7시 10분 경 무엇인가에 부딪혀 쿵하는 소리에 배가 1시간 동안에 머물렀으며 사고 발생 1시간 후의 침몰 징후로 선장이 배의 사고를 알리는 교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또한 정부발표의 사고시각보다 30분 빠르다.

​그러나 '쿵소리' 이후 머문 1시간 동안, 선장은 왜 신고를 하지 않았고, 선장이 과연 신고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의문도 있다. 그 시간에 선장이 받은 상부의 지시가 무엇이며 교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직면할때, 비워진 시간의 교신내용을 왜 공개하지 않느냐는 의문과 맞닿아 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정부 조사기관이 세월호를 뒤로하고 다른 위치에서 무언가를 조사하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이었을까?

[아고라] 선장이 7시20분에 이미 구조요청을 했다고?

​저는 제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이 말은 꼭 해야겠습니다. 제가 선장의 가족이나 지인 아니냐구요? 천만에.....!! 세월호 선장과는 일면식도 없는 그저 남해상에 사는 촌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제 아침 7시 20분경 TV 뉴스에서 분명히 "인천에서 출항, 제주도로 가는 배가 진도 해상에서 주변 어선과 해경에 '구조 신호'를보내왔다."라는 요지의 앵커의 말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나오는 배 사진을 보고 이미 해경이 도착한 것으로 판단, 날이 밝았고 해경도 도착했으니 아무 문제 없겠구나 생각하고 한 점 의구심도 없이 제 볼 일 보러 집을 나섰습니다. 제가 집을 나선 시간이 정확히 아침 7시 30분이었습니다.

그 때 뉴스에서 "세월호"라는 배이름은 제가 흘려들었는지 정확히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라는 말은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 인천에서도 제주도로 가는 배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제가 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남쪽에서는 남해 제주간 항로 때문에 서로들 다툼이 심하기 때문에 인천에서도 제주도로 여객선이 다닌다는 말은 제가 흘려들을 수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아침 7시 30분 집을 나서서 TV를 전혀 못 보다가 점심 때인 12시 30분경, 볼일 보러 들른 가게의 TV에서 아직도 구조중이라는 뉴스를 보고 굉장히 의아했습니다.

구조요청을 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도 구조중이라니... 내가 몇 시쯤에 "구조요청" 뉴스를 봤는지 생각을 안 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집을 나선 후, 오전중에는 TV를 전혀 볼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TV를 볼 수 있었던 곳은 집 뿐인데 그렇다면 시간은? 분명히 내가 집을 나서기 전, 7시 30분 이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젯밤에 아침 7시 TV 뉴스들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군데 볼 수 없는 곳이 있더군요. KBS2 TV 아침 7시에서 8시까지 하는 "굿모닝 대한민국(2부)" 딱 이 뉴스만 "저작권 관계로 다시보기가 중단" 되었답니다.

왜 그럴까요? "세월호 선장은 아침 7시 20분 이전에 관매도(병풍도)로 피항하면서 "구조요청"을 보냈다." 라고 말하는 나를 '병신'으로 만들어 놓겠다 이런 얘기겠지요.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세월호의 원래 항로는 관매도 훨씬 바깥 쪽입니다.

​​그러나 세월호 선장은 관매도쪽으로 배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아침 7시 20분경 이미 주변배와 해경에 "구조신호"를 보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배는 정상항로를 운행 중 이미 어떤 문제가 발생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항구가 있는 섬쪽, 관매도 쪽으로 피항한 것이지요.

그리고 세월호 선장과 승객들(잠이 드신 분들은 빼고)은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증거라고 할까요? 어제 올라 온 뉴스 중에 달린 댓글입니다.

<사고 나서 거의 한시간 반정도 되는 시간 동안 배 한 척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 라고 구조되신분이 JTBC에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사고선박 아침 8시 전부터 해상에 서 있었다"라는 연합뉴스 입니다.

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4/04/16/0701000000AKR20140416154700054.HTML?template=2085

​구조 헬기가 도착하자마자 두번째도 아니고 세번째도 아니고 제일 먼저 선장부터 낚아채서 구조해 간 이유는.....?

선장과 승무원들이 정말로 구조요청을 아침 8시 58분에서야 하고 구조헬기가 도착하자마자 자신들만 살겠다고 제일 먼저 도망간 것일까요? 심지어 학생들의 휴대폰을 모두 뺏어버렸다는 SNS 글도 올라오더군요.

그런데 오늘 아침 다음 메인을 장식한 글은 "입단속, 손가락 단속 좀 하자." 는 글이로군요. 그리고 또 해경 순시선이 얼마나 큰 지 보신 분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 큰 배는 어디 두고 헬기 두어 대....? 어선 두어 척...???

오늘 댓글 중 또 다른 증언. - "여성시대" 8시 4분경 구조요청이라고 하시네요

다음은 트라움님 댓글 - <신빙성이 가는군요. 저도 비슷하게 흐려들은듯 한데....아침방송이었는데 케비에스2에서 하는 방송이었을 듯.....전날밤 강호동나오는 프로보고 끈것 같은데..>

*아고라 - jinmo

진도관제구역 진입뒤 보고안해…‘110여분간 교신 공백’ 왜?

사고 신고 전 ‘의문의 행적’
오전 7시6분 첫 진입..8시55분 제주VTS로 사고 신고
이 사이에 진도VTS와 교신안해 ..배 이름·항행계획 보고했어야
생존자 “7시45분 쿵소리” 증언..사고 신고전 문제발생 가능성도

세월호가 사고 당일 아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 관할구역 안에 들어온 뒤 1시간50여분간 진도 관제센터와 교신한 기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나, 사고 발생 시각으로 추정되는 오전 8시48분 이전 세월호의 행적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세월호의 항적지도를 보면, 세월호는 16일 오전 7시6분 무렵 전암 신안군 도초도와 흑산도 사이의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 관할구역(북위 34도39분48초, 동경 125도56분18초)에 진입했다. 연안해상교통관제 운영·관리규칙에 따라, 선박이 관제센터 구역에 들어가면 반드시 배 이름, 호출부호, 항행 계획, 목적지, 적재 화물 등을 관제센터에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진도관제센터가 20일 공개한 교신기록을 보면, 세월호가 진입한 7시6분부터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에 사고 신고를 한 8시55분까지 진도관제센터와 교신한 기록이 전혀 없다. 진도 관제센터 해역을 지나는 다른 선박들과는 교신한 기록이 수두룩한데 유독 세월호만 없는 것이다. 다만, 진도 관제센터가 7시7분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한 선박과 교신한 기록은 나온다.

관제구역 내 모든 선박은 구역 내에서 이동 시 초단파무선통신(VHF)을 청취해야 한다. 진도 관제센터 구역에서는 호출 응답용 주파수인 채널16과, 통신용 주파수인 채널67을 항상 듣고 있어야 한다. 인천~제주 항로를 운항하는 한 항해사(27)는 “진도센터 관할 해역에 있는 모든 선박은 67번을 청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는 16일 오전 8시48분 병풍도 오른쪽 지점에서 항로를 오른쪽으로 110도가량 급선회한다. 곧 이어 8시55분 세월호는 제주 관제센터에 “해경에 연락해주십시오. 본선이 위험합니다. 배 넘어갑니다”라고 첫 신고를 한다. 사고 해역이 진도 관제센터 구역이고, 진도 관제센터는 해경 직속 기관인데 굳이 해양수산부 소속인 제주 관제센터에 연락한 것이다. 제주 관제센터와만 교신하며 진주 관제센터로부터 호출을 받아 교신이 이뤄지기까지의 시간을 낭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세월호 승무원들이 위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는 법을 모른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사고 신고 시각인 8시55분 훨씬 전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난 정황은 많다. 세월호에 수학여행단을 태운 경기 안산 단원고가 지난 16일 학부모들에게 밝힌 ‘사고 및 대응 현황판’을 보면, 단원고는 이날 오전 8시10분 제주해경으로부터 ‘배와 연락이 안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어 8시50분께 세월호에 타고 있던 단원고 강민규(53·사망) 교감은 학교에 전화를 걸어 “배에 침수가 발생했다”고 알렸다. 신고 전 세월호가 해경과 연락이 안 될 정도로 급박했던 상황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제주해경은 “우리가 여객선과 직접 연락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전화 통화 사실을 부인했다.

세월호 사고 생존자들은 세월호가 ‘쿵’ 소리와 함께 기울기 시작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부 생존자는 이 ‘쿵’ 소리를 정상 운항 시간으로 알려진 16일 오전 8시 이전에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구조된 정아무개(16)양은 “여객선 2층 방 안에 있었는데 ‘쿵’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배가 기울기 시작했고, 밖에 나와 보니 나를 비롯해 아이들이 중심을 못 잡고 휘청휘청하다가 넘어졌다”고 말했다. 세월호 승무원 전아무개씨는 “당직 교대를 위해 기관일지를 쓰던 오전 7시45분께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선장 등 항해사들의 해명도 이런 의문을 뒷받침한다. 박아무개 3등 항해사는 조사 과정에서 당시 급선회에 대해 “정상 속도에서 꺾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아무개 조타수도 19일 “실수도 있었지만 타가 너무 많이 돌아갔다”고 말했다. 적어도 급변침 과정에서 어선 충돌이나 암초 등 긴급한 상황은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사본부는 세월호가 사고 당시 급회전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급회전을 했다는 8시48분 이전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 사고 발생 시각이 최초 신고 시점으로 알려진 16일 오전 8시55분보다 앞선 것으로 나오는 정부기관 기록도 나오고 있다. 20일 국립해양조사원 누리집을 보면, 국립해양조사원은 사고 당일인 16일 ‘진도군 관매도 부근 여객선 침몰 조난 협조’라는 제목의 항행경보(제14-155호)를 발령했다. 16일 진도군청 상황실이 전라남도 상황실에 보낸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보고’에는 사고 발생 시간이 오전 8시25분으로, 목포해경이 신고를 접수한 시각이 8시58분으로 적혀 있다. 이에 대해 두 기관은 “언론 보도를 보고 기록했다”, “실수다”라고 해명했다.

- 이경미 김기성 박기용

[한겨레] 안이한 현장 대처·지휘 체계 혼선…‘어이없는 정부’

여객선 침몰 대참사
해경, 사고 초기 탈출 지시 못하고 선실 진입 주저
안행부, 근거없는 낙관에 청와대 적극 대응 못해
해난사고 전문 해수부는 역할 정리 안돼 ‘어정쩡’

​300명에 가까운 승객이 숨지거나 실종된 전남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는 현장 공무원들의 안이한 초동 대처와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 등 재난관리 지휘 체계의 혼선 등이 겹쳐 화를 키우고 사태 수습을 어렵게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17일 해양수산부가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세월호의 한 승무원은 사고가 난 16일 오전 8시55분 해수부 산하 제주해양관리단 해상교통관제센터 쪽과의 교신에서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가 많이 넘어갔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컨테이너도 넘어가고, 사람들 이동이 힘듭니다”라며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고명석 해양경찰청 장비기술국장은 17일 배경 설명 브리핑에서 “(사고 당일) 오전 9시30분에 헬기와 함정이 도착했는데 그때 벌써 (배가) 50~60도 기울어진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한쪽으로 물건이 쏟아지고, 사람도 한쪽으로 쌓이게 된다. 거기를 벗어나 창문으로 탈출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희생자가 많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고 국장의 설명이다.

교신 기록과 초기 상황 보고 등을 통해 사고 초기부터 선박 침몰을 앞둔 심각한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해경이나 안행부, 해수부 등 정부 부처 어느 곳에서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주고 선박에서 빨리 탈출시켜라’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사고 수습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오전 내내 ‘승객 대부분이 구조됐다’고 낙관하며 상황을 오판했다. 청와대도 사고 초기 정확한 상황을 보고받지 못한 탓에 좀더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장 구조팀은 선실 진입은 물론 탑승객의 3분의 1도 구조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탑승객 대부분이 구조됐다는 보고 때문에 ‘선실에 남은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없게 하라’고 16일 오전 해경에 지시했다. 16일 낮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는 상황 보고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배가 전복된 뒤에야 구조선박과 헬기 등 구조장비를 2배로 늘렸다. 오전 10시 해경·군·소방방재청 등에서 헬기 16대, 선박 24대가 출동했다가 오후 3시에 헬기 31대, 선박 60척이 출동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10시31분 이미 선박은 뒤집혀 선체가 물 밑으로 가라앉은 상태였다.

아직 생사 확인이 안 된 상당수 승객이 여객선이 전복되기 직전까지 배 안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사태 초기 잠수훈련을 받은 해경특공대를 투입해 선체 내부에서 구조 활동을 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을 지시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와 달리 정부 부처 간 지휘 협조 체계의 혼선도 드러났다. 16일 내내 해양경찰청을 관할하고 해난 사고 전문가가 많은 해수부와 재난관리 주무 부서인 안행부의 임무와 역할이 정리가 안 돼 혼선을 빚었다.

- 목포/안관옥, 음성원 석진환 권혁철 ⓒ 한겨레 ( 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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