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북한과 미국, 여유 부릴 시간 없다 

道雨 2019. 4. 25. 12:10




북한과 미국, 여유 부릴 시간 없다 




북한과 미국 모두, ‘장기전’을 선택했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무산 이후 양쪽이 내놓은 새로운 방침이다.

둘 다 대화의 문은 열어놓겠다고 했지만, ‘상대방이 먼저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면’이라는 조건이 달려 있다. ‘판을 먼저 깼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수사처럼 들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 둘째 날 시정연설에서 “나라의 모든 힘을 경제건설에 집중”하자면서도 “자력갱생”을 방법론으로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서두르지 않는다”며 제재 효과를 기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장기전이 양쪽의 실제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상대방이 더 급하다’는 판단에 기댄 압박 카드인지, 아니면 상대방의 협상 칩을 무력화하기 위해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 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어느 한쪽이 쉽게 먼저 양보하지 않으리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의도와 상관없이 현재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다.


장기전이 되면 양쪽은 맷집 싸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득보다는 실이 많다.

잔매에 골병이 들어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먼저, 북한의 자력갱생은 1960년대 내놓은 방식이다.

일제가 만주 공격의 배후 군수기지로 활용했던, 당시만 해도 최신이었던 북쪽 지역의 산업시설을 물려받았기에 가능했다. 경제규모도 작았기 때문에 수력발전만으로 산업을 가동하기에 충분했다. 정권 수립 초반, 북한 지도부들의 자신감과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는 인민들의 자부심이 ‘대중 동원’을 가능하게 했다. 노동력 집중 투입으로 짧은 시간 안에 목표 생산량을 넘어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제의 산업 유산은 낡게 되고,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지나치게 전력에 의존했던 산업구조는 갈수록 부담이 됐다. 새 국가 건설의 열기가 사라지면서 대중 동원만으로 성과를 내기엔 힘이 부쳤다. 북한의 자본 축적 위기는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아니어도 이미 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외부 자본의 수혈 없이는 북한 경제가 질적 도약을 하기 어렵다. 북한이 제재 해제에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다.

‘자력갱생’으로 단기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장기화되면 축적의 위기가 회생하고 있는 인민들 생활을 시나브로 파고들 것이다.


미국도 장기전을 하겠다고 큰소리칠 형편은 못 된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지 않는다고 안보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는 전언이 끊이지 않는다.

북한이 선의를 배반했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핵물질 생산을 중지할 수 있는, 어떤 구속력 있는 합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협상의 문제다.


북한의 핵무기가 늘어날수록 미국은 더욱 까다로운 북한과 만나야 한다.

미국 워싱턴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의 로버트 리트웍 국제안보연구 부문장은 2년 전 인터뷰에서 “북한 핵무기가 15개에서 100개로 가는 것은 미국 입장에선 (판을 바꾸게 되는) ‘게임 체인저’”이고, “중국 입장에서도 그에 따른 대가를 지고 살아야 하므로 ‘게임 체인저’”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물질 생산이 늘수록, 핵무기 폐기 혹은 포기 협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핵을 줄이는 ‘군축 협상’의 모습을 띠게 된다. 협상의 성격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설령 핵무기 포기 협상을 하더라도 이에 따른 비용이 급증할 것이다. 핵프로그램의 잠재적 확산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결국 장기전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비난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와 똑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전략적 인내는 북한이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방치였고, 방치는 결국 북한의 핵능력을 고도화시켰다.

장기전은 두 정상의 결단으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톱다운 방식’이 희미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게다가 장외에선 날 선 공방전이 이어지면서, 어렵게 쌓은 그나마의 신뢰도 훼손되고 있다.

북-미 양쪽이 실무급 대화라도 시작해야 한다. 멱살을 잡더라도 무대 위에서 해야 한다.




이용인
한반도국제 에디터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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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91325.html?_fr=mt0#csidxeb650dd4ccfa25886922410fdf6c901